이 배역의 실존인물에 대한 내용은 걸걸중상 문서 참고하십시오.
[clearfix]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대조영>의 등장인물. 배우는 임혁.[1]2. 특징
고구려의 장군이자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으로 알려져 있는 양반이지만 대조영과 성을 맞추기 위해 대중상으로 개명당했다.[2]스스로가 칭하는 이명은 고구려 최후의 무장. 양만춘 장군의 심복 부장이었다보니 그에 걸맞게 무술 실력도 최상급.[3][4] 고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들 모두를 압도하는 정말 무시무시한 무술 실력을 가졌다. [5]
격을 따질 때 북방의 또다른 메이저 세력들인 당나라의 설인귀, 거란의 이진충에 대응되는 원로격 인물이다. 같은 세대인 이진충과 설인귀가 노환으로 골골대는 중반부를 넘어가서도 혼자 팔팔하다.
3. 극중 행적
고구려의 활은 무쇠를 꿰뚫고 바위를 깨부순다!
안시성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에는 안시성 성주
양만춘 휘하에서 활약했던 용맹하면서도 문무를 겸비한 장수였으나 대조영이 제왕지운을 타고났다는 모함 때문에 큰 공을 세우고도 역도로 몰려 처형당할뻔 했으며 양만춘 덕에 도주에는 성공했지만 본인은 칼에 맞아 쓰러지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연개소문은 대중상을 죽이지 않는 대신 멀리 고려성으로 보내버린다.수십년 후 2차 고구려-당전쟁때 고려성으로 찾아온 대조영과 재회하게 되며[6] 이후 다시 안시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양만춘이 살해당하자 안시성을 떠맡게 되며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부흥운동을 전개하나 고안승이 신라로 튀어서 고구려국이 박살나고 설인귀의 안동도호부가 미처 점령못한 요동 일대를 마저 정리하려 하자 적당히 피해를 입히다 모조리 도주하여 설인귀에게 빅엿을 먹인다.
이후 한성 부근에서 비밀리에 병력을 모으고 대조영의 동명천제단에 합류시켜 요동성의 안동도호부를 몰아내려 하나 실패하면서 붙잡혀 당나라로 압송된다. 도중에 대조영의 습격으로 탈출에 성공하나 정작 대조영이 붙잡히는 바람에 아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대조영이 살아남아 당나라를 탈출하자 뒤이어 탈출해 합류한다.
당나라에서 탈출한 이후 동모산에서 조용히 대조영이 말갈세력들을 규합하는동안 고구려촌에서 유민들을 돌보며지내다 거란국을 돕게되면서 설인귀와 재회하게 된다. 이후 거란국이 세워지고 이진충에 부탁으로 대조영이 당분간 영주에 머물게되면서 동모산에는 대중상 혼자만 돌아가는줄알았으나 당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키워왔던 병사3만을 데리고와 대조영을 지원해준다. 이후 당나라와 전쟁이 끝이나고 거란이 동맹을 맺자 거란국에 머무르면서 훗날을 대비하기위한 군사들을 훈련시켜양병하거나 현지의 고구려 유민들을 통솔하고 현지의 정보를 접수해 대조영에게 보내주며 고구려 유민세력의 대표 노릇을 했다.[7] 그와 동시에 대조영이 요동 정벌에 나서자 소수 병력을 육성하여 영주의 고구려 유민들을 지키면서 거란 내부의 정세를 주시했다.[8] 그러던 도중.[9] 손만영의 반란을 눈치챈 초린의 지원을 받자[10] 한동안 쉬고 있던 것이 무색하게 가볍게 손만영의 반란을 진압해버리는 위엄을 보여준다.[11]
이진충 사후 거란과 관계가 심각해져서 안시성에서 머무르던 중 직접 거란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아우 고돌발과 영주로 왔다가 이해고와 신홍의 간계에 속아서 붙잡히고 이해고의 지시에 의해서 그대로 설계두와 도협에 의해서 아우와 함께 정말 허망하게 죽을 뻔 하는데[12][13] 검이의 도움덕분에 구사일생하나 구출된 뒤 피신하던 도중 도협에게 중상을 입는다. 그로 인해서 한동안 검이가 알려준 은신처에서 치료를 받아서 몸을 회복하며[14] 몸을 회복하던 도중 검이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걸사비우와 금란에게 인계된다. 하지만 대중상은 죽음의 대위기에도 불구하고 안시성으로 돌아가지않았는데 그 이유는 돌궐이 영주를 침공해왔다보니 유민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졌기 때문. 그렇다보니 아우 고돌발과 자신을 찾았었던 걸사비우,금란,장산해,무염등과 함께 유민들을 데리고 나갈 방도를 찾았고 고민 끝에 침공의 와중을 이용하기로 한다. 이 도중 하필 손만영에게 막히지만 검이가 손만영을 설득했고[15] 이미 거란은 멸망했다보니 백성들만이라도 지키려고 한 손만영이 허락한 덕분에 영주를 무사히 빠져나오며[16] 손만영의 마지막 부탁을 받은 초린과 검이역시 대중상 일행과 동행한다.[17]
안시성으로 드디어 돌아온 뒤에는 영주에서 워낙 고생했다보니 한동안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안시성에서 재정비를 가지며[18] 발해 건국의 대업을 위해 동모산으로 마지막 대여정을 떠나기 전 상관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양만춘 장군의 사당에 가서[19] 그에게 마지막으로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그후 발해 건국 직전의 최후의 전투로 나오는 천문령 전투에서 결국 사로잡혀[20] 스스로 죽음을 맞는다.[21] 이는 아군을 분기탱천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동귀어진으로 설인귀가 직접 설명해준다.[22] 군영의 존경을 받는 총사령관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대중상이었던 만큼 그의 죽음[23]에 눈이 제대로 뒤집힌 고구려군은 당나라군 20만을 물리친다. 이해고에게 죽임을 당하는 구도는 과거 자신이 이해고의 아버지 부지광을 죽였을 때와 똑같은 구도였다. 자신도 상대를 찌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끝을 돌려 자신만 찔렸다.[24] 그 의미 역시 공유하고 있는데, 부지광은 자신의 죽음으로 고구려의 안위를 지켰고 대중상은 자신의 죽음으로 발해의 건국을 지켰다. 이러한 뜻과 진실을 모른 채 마지막까지 대중상을 두고 "저승에 가서 내 아버님께 사죄하라."라고 했던 이해고는 결국 거란과 처자식, 본인을 따르던 병사, 심지어 자신까지도 지키지 못했다.[25][26]
아래는 대중상이 마지막 대혈투를 벌이기 전의 명대사
[27]
나는 대고구려의 장수 대중상이다. 일찍이 안시성에서 양만춘장군을 도와서 당나라 황제 이세민의 백만대군을 물리쳤으며
연개소문 장군과 함께 요서를 휘저으며 만리장성을 넘어 서토의 심장을 위협을 했다!
" 고구려의 장졸들은 내 마지막을 똑똑히 보아두거라! 우리가 이 싸움에서 패한다면 살아서도 꿈을 잃을 것이나 승리를 한다면 우리는 죽어서도 지킬 나라가 생길것이다!
나 대중상은 이제 마지막 칼을 뽑아 부끄럽지 않은 생을 마치려 한다!
살아서 꿈을 잃느니 죽어서도 이 천문령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리라!!!"
연개소문 장군과 함께 요서를 휘저으며 만리장성을 넘어 서토의 심장을 위협을 했다!
" 고구려의 장졸들은 내 마지막을 똑똑히 보아두거라! 우리가 이 싸움에서 패한다면 살아서도 꿈을 잃을 것이나 승리를 한다면 우리는 죽어서도 지킬 나라가 생길것이다!
나 대중상은 이제 마지막 칼을 뽑아 부끄럽지 않은 생을 마치려 한다!
살아서 꿈을 잃느니 죽어서도 이 천문령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리라!!!"
4. 기타
첫 등장부터 중견 배우인 임혁이 연기했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자면 양만춘 또는 연개소문과 동 세대 인물처럼 보인다.[28] 그러나 안시성 전투 시점의 대중상은 많아봤자 20대의 청년 장수로서, 이미 고구려의 중견 정치인이자 지휘관인 양만춘, 연개소문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날 것이다. 약 57년 후인 천문령 전투 시점의 대중상은 7~80대의 노인이 된다. 어찌됐든 드라마 내적으로만 보면 상당한 고령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노익장을 제대로 과시하는 무서운 강자. 천문령 전투 때 자신의 나이를 걱정하는 아들 대조영에게 한 말로 자신의 실력이 굳건함을 증명하며, 실제로 최후에도 본인이 의도적으로 칼을 빼지 않았다면 이해고에게 최소한 중상을 입혔을 수준으로 연출된다.[29] 젊었을 때는 1화 요동성 전투 때 활을 쏴서 적병의 방패를 꿰뚫고 한방에 원샷원킬을 하는 괴력을 선보인다.설인귀와는 라이벌이자 애증의 관계인데, 안시성 전투 당시 처음 만난 이후로 거의 일평생을 숙적으로 지내면서도 서로의 무예와 지략을 존경하는 수준에 이르었다. 때문에 적대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목숨을 구원해준 적이 여러 번 있다. 죽어라 싸우면서도 한쪽이 죽을 위기에 처하거나 자존심이 무너지는 꼴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워할 정도이니 거의 브로맨스 수준.[30] 진중한 덕장인데다, 활을 잘쏘며, 무엇보다 이덕화가 연기한 캐릭터와 애증의 관계라는 점에서 임혁이 전작 무인시대에서 연기한 두경승과 비슷하다. 물론 설인귀 역시 이의민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실제 역사속에서는 걸걸중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대조영과 실제로 부자지간인지도 의심을 받고 있다. 일단 대중상이 대조영의 아버지가 맞다고 보는 측에서는 '걸걸'이 당시 고구려어 혹은 말갈어로 '크다'라는 뜻이었다고 해석한다. '큰' 중상, '큰' 조영인데 아버지는 음차로, 아들은 뜻으로 표기했다는 것. 일단 말갈 유민을 이끈 걸사비우와 비교되어서 고구려 유민을 이끌어서 고구려 계통으로 보기는 한다. 고구려에서의 행적은 전혀 알 수 없는 인물로, 지금은 위서로 밝혀진 협계태씨족보에서는 중급군관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대조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장군감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삼국기나 연개소문 등에서도 장군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지만 영주라는 땅의 의미를 고려하면 절대로 지금으로 따져서 장군급은 될 수 없는 인물이다. 영주 탈출과정에서는 초기에 사망. 사실은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록에 없다. 분명한 것은 당나라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명목상 대조영 휘하 고구려측의 총사령관이지만, 직접 부대를 지휘하기 보다는 대외 활동 등이 많다보니 아들 대조영이 실질적 총사령관을 담당하고 있고 대중상은 뒤에서 조력하는 편이 상당하다.[31] 그래서 드라마 행적은 대부분 각색일지언정 대조영 아버지 + 엄청난 무력 + 고구려 내 상징성에 비하면 극 중 영향력을 나름대로 제한시켜 둬서 임팩트 있는 조연으로만 남을 수 있었다.
극중 최후반부에 이르면 위상도 대단히 높아진다. 설인귀가 당의 대장군으로서 이진충, 묵철 등 타국의 왕이라도 함부로 극존칭을 쓰지 않는데, 마찬가지로 대중상도 거란국의 황제인 이진충에게 극존칭을 쓰지 않고 서로 대등한 호칭을 쓸 정도. 작중 나라들의 위상을 비교하면 당나라=고구려>>>>>>>나머지 국가들 정도 되니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1]
<
용의 눈물>의
하륜, <
무인시대>의
두경승, <
명성황후>에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 <
징비록>에서는 홍의장군
곽재우 역을 맡았다. <
삼국기>에서는
양만춘 역을 맡아 대조영에게 고구려를 다시 세우란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2]
이 작품 때문인지 걸걸중상을 대중상으로 표현하는 일이 늘었다. 한술 더 떠서 대걸걸중상이라는 표기도 보인다. 다만 신오대사리는 기록엔 그를 '대걸걸중상'이라 표기된 부분이 있다.
[3]
상관인 양만춘과 연개소문, 친구 부지광, 유일한 적수 설인귀를 제외하면 그와 맞먹는 강자가 하나도 없다. 최후의 혈투에서 당나라 대군(이해고, 이문 등 포함)을 압도했다보니[32] 보다못한 이해고가 비겁하게 단검을 던져서 치명상을 입히고, 거기에 이문, 우면, 수봉, 설계두, 도협 등 내로라 하는 당나라 측 무장들이 협공해서 상처를 입히고도 쩔쩔매서 자신의 아들과 동급의 무력을 가진 이해고가 마무리를 넣었을 정도다 심지어 그 이해고도 대중상이 검을 거꾸로 쥔 상태에서 이해고와 마지막 합을 겨뤄 사실상 일부러 자살했기에, 제대로 쥐고 마지막 합을 겨루었으면 이해고 또한 어찌될지는 아무도 몰랐다..[33] 거기다 대중상은 혼자서 다수의 적과 싸워 몸도 지친 상태에다 그 과정에서 상처까지 입었던 상태에서 이해고와 합을 겨루었다.
[4]
작 중에 나오는 모습을 볼 때 전성기 었다면 아들인 대조영이나 이해고가 한꺼번에 덤볐어도 별 문제 없이 제압 했을 것으로 보이는 세계관 최강자임을 알 수 있다.
[5]
이에 걸맞게 초창기 전성기 시절엔 언월도로 보이는 무기를 주로 사용했고 나이가 좀 든 뒤부터는 검으로 고정이지만 그 검술 실력마저도 상술했듯이 설인귀가 아닌 이상 그에게 당해낼 적수가 없다.
[6]
이때 대중상은 자기 친아들을 당나라 첩자로 오해하고 죽일 뻔한 걸 마침 타이밍 좋게 찾아온 걸사비우가 해명해준 덕분에 살릴 수 있었다. 다만 아들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한참 후이다. 17회에서 검모잠과 재회 이전까지는 아들인 것을 전혀 모른다.
[7]
측천무후가 도망친 대조영을 다시 회유할 때 대중상에게 벼슬을 내리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8]
원래는 대중상도 요동으로 같이갈 예정이였나 이해고와 신홍의 계략에 의해 영주에 발이 묶이게되나 대중상도 영주에 남아있는 유민들이 마음에 걸려 그냥 영주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 대신 미모사도 검이를 요동탈환에 데리고간다.
[9]
이해고역시 당나라와 전쟁을 하러갔다보니 거란에 남은 건 이진충과 초린/손만영,신홍/대중상이 유일했다.
[10]
초린의 지원이 있기 전에 이미 정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자신이 직접 나설 계획이긴 했다.
[11]
손만영을 꼬드긴 신홍이 대중상을 너무 무시하긴 한 거도 있지만 설인귀만이 유일한 적수인 대중상에게 손만영은 따위다.
[12]
아무래도 검이에게 구출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보니 그 대중상이 너무 무력하게 나온다.
[13]
대중상과 고돌발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은 대조영은 영주로 걸사비우와 금란을 특파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14]
이 중상을 치료받은 덕분에 안 그래도 강인한 몸에 어느정도 내성까지 생긴 것으로 보이며 그 내성덕분에 마지막 순간에 정말 무시무시한 저력을 선보인다.
[15]
검이의 설득에 앞서서 장산해가 거란 백성들도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인파에 속해있다면서 손만영을 설득하기도 한다.
[16]
손만영이 최후까지 묵철을 막았다. 그 덕분에 대중상 일행은 묵철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
[17]
이 동행 과정에서 걸사비우와 초린이 조용히 만나는 걸 보고 검이가 대조영의 아들임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걸사비우에게 끝까지 함구하라고 지시하며 이에 따라서 이후 걸사비우는 대중상에게 검이와 관한 사안을 보고하며 지시받는다.
[18]
대조영이 돌궐을 막기 위해 출전했을때도 잔류하며 숙영과 함께 향후 대응방안 및 이해고와 거란에 관해서 긴히 논의하고 그들을 지속적으로 철저히 경계한다.
[19]
대조영과 고돌발만이 양만춘의 사당에 동행한다.
[20]
거란의 배신으로 대위기에 처했을때 아들과 본영,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 동료 노장들과 남아서 맞섰으나 워낙 압도적인 수이다보니 무염이라도 보내고 그대신 고돌발과 함께 붙잡힌다.
[21]
이 즈음에서야 드디어 이해고가 자신의 오래전 친구 부지광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며 이해고에게 부지광의 진심을 밝히며 충고+경고했고 이해고한테 죽을 때에도 자신이 부지광을 죽일 때랑 똑같은 패턴[34] 을 재현한다.
[22]
더군다나 그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인의 전투력에 대해 느끼고 그 이후로도 지긋지긋하게 느꼈기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
[23]
이해고에게 치명상 단검을 맞은 뒤에도 이해고, 이문 등을 상대로 혈투하다가 여러 번 베이고 결정적으로 이해고에게 위와 선술한 대로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는 않았다. 그 엄청난 무술 실력에 걸맞은 위상인 셈. 아들 대조영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긴 뒤에 사망한다.
[24]
그러한 모습을 본 이해고의 심경이 복잡함을 표정으로 알 수 있다.
[25]
본래 대중상은 스스로 죽을 생각까지는 없었으나 불리한 전세에도 불구하고 동모산 일대에 사는 말갈의 지원군[35] 이 끝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사자로 온 미모사에게 전해듣고 상당히 낙담한다.[비록] 마지막 희망이었던 말갈의 지원군까지 없어지자 크게 낙담한 대중상은[37] 최후의 비책을 고민하게 되고 그 최후의 비책이 바로 자신의 죽음으로서 전세를 뒤집는 것. 이를 위해서 대중상은 죽음을 각오하게 된다.
[26]
칼에 맞고 대조영 품에서 죽어가면서 하는 내용도 인상적이다. 고구려의 무장으로 그의 품에 안기다가, 대조영의 아버지이자 달기의 지아비로 아들과 부하의 품에서 죽는다.
[27]
사진은 명대사이후 대혈투를 벌이다가 이해고에게 단검을 맞았을 때의 모습.
[28]
실제로 양만춘을 연기한 임동진은 1944년 생, 대중상을 연기한 임혁은 1949년 생이다.
[29]
반면 같은 연령대인 설인귀의 경우 노인이 된 뒤로는 몸이 약해져서 직접 전장에 나서진 못했고, 한 번은 몸살이 나서 고생할 정도로 몸이 약해진다. 그래도 완전 늙기 전에는 대중상과의 대련에서도 밀리지 않는 등 여전히 훌륭한 무사.
[30]
고구려 멸망 이후에 설인귀는 대중상한테 고구려는 부흥 운동은 그만하고 당나라의 장수가 되라고 제안했지만 당연히 대중상은 거절했고 설인귀는 정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벗으로써의 제안 뿐만 아니라 분명히 능력이 있는 대중상을 장수로 부리고 싶은 사령관으로써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31]
보통은 아들과 미모사의 말을 따르나, 완강하게 나갈 때는 절대로 뜻을 굽히지 않고 밀어붙이기도 한다. 다만 그런 경우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정말 드물다.
[32]
포로 교환 중에 당나라 병사의 검을 빼앗은 뒤 대혈투를 벌였다. 본래 자신의 검도 아닌 일개 병사의 검에 불과한데 20만을 혼자서 압도했으니 진짜 무시무시한 전투력이다.
[33]
만약 대중상이 오래전 부지광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스스로 죽지 않았다면 이해고는 대중상에게 치명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34]
아주 오래전 친구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것으로 보인다.
[35]
대중상의 언급에 의하면 약 2만정도라고 한다.
[비록]
늦긴 했지만 말갈족장은 결국 지원군과 함께 직접 지원에 나섰고[38] 그 결과 대중상의 최후의 비책과 함께 최후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37]
대중상은 상관 양만춘 장군의 영향으로 상당히 진중한 성격인데 그런 대중상이 마지막 희망이 꺼졌다고 말할정도로 크게 낙담한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