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년 음력 12월 6일, 대연정은
여진족[1]을 이끌고
요나라와 교전을 벌이면서
고려에 사신을 파견해 구원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현종(고려)은 대연정의 원조 요청을 거절하였다.[2]
대연정의 요청 이후에도 흥료국은 몇 차례 고려에 구원 요청을 했으나 고려는 거부했고, 흥료국은 1030년 9월에 멸망하고 말았다.
[1]
원문은 동북여진(東北女眞)으로 되어 있다.
[2]
고려사 최사위 열전에 의하면 흥료국이 건국된 이후 고려는 형부상서 곽원의 건의로 압록강 동쪽 기슭을 차지하려 했다가 실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대연정의 요청에 왕과 여러 재상들이 논의를 했는데, 거란과 흥료국 간 전쟁에 최사위가 개입하지 말자는 주장을 해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