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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유사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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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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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1.1. 서울 지하철 7호선 방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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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산역 방화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5년 1월 3일, 서울 지하철 7호선 가리봉역(현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온수행 7017열차에 승차한 강모씨가 철산역 접근 중에 미리 준비한 신문지와 석유로 불을 질렀다. 이때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아직 내장재가 교체되지 않은 차량이 많아[1] 하마터면 제2의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할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초동 조치가 빨라 광명사거리역에서 소화기로 진화한 뒤 차량기지로 들어가기 위해 운행을 계속했는데 문제는 불을 대충 끄고 운행을 재개해 버려서 결국 다시 불이 붙어 온수역에서 차량 3량이 전소되었다. 그나마 해당 구간이 당시 7호선의 종착역이었던 온수역과 가까웠던 데다 승객들이 빠르게 대피해서 큰 인명피해는 없었고 1명이 화상을 입은 수준에 그쳤다. 방화범은 주식 투자에 실패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흔적도 없이 죽으려고 방화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 때 전소된 전동차 752편성 3량은 제적되었으며 한 량은 열차운행 체험실로 리모델링되었고 한 량은 사고를 기리는 의미에서 도봉차량사업소에 보존되어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고철로 매각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멀쩡한 5량에는 8호선 전동차 822편성의 3량(8122, 8222, 8722호)을 떼다 붙여 영업 운전 중이다.

1.2. 서울 지하철 4호선 방화 미수 사건

2005년 10월 24일 오후 7시 54분 무렵에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 당고개행 4198열차에 탄 임모씨가 신문지에 불을 붙이고 끄는 행동을 반복하자 주변 승객들이 피하는 가운데 여성 승객 김모씨가 지하철 상황실에 신고한 다음 동작역에 도착하자마자 열차가 정지하였고 역무원 조모씨와 사회복무요원 2명 등 4명이 출동하여 임모씨를 제압하고 경찰에 넘겨서 큰 피해는 없었으나 열차 운행이 1분 30초 가량 중단되었다.

임모씨는 강도상해죄와 특수강도죄로 실형을 산 경력이 있는 전과자로 무직이었던 데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범행 당시 만취한 상태였다. 경찰에서 방세도 못 내고 휴대전화도 끊기는 등 생활고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지하철 방화를 저지르려 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1.3. 대구 지하철 2호선 방화 미수 사건

2005년 11월 19일, 개통한 지 1달밖에 안 된 대구 지하철 2호선 경대병원역에서 김모씨가 유사 사건을 벌이려다가 학생들의 제지로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19일 오후 김모씨는 인화성 물질이 든 살충제 스프레이를 들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분사하며 "다 죽여버리겠다"고 외치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하였다.

대구 시내에서 영화를 보고 귀가하던 영남공고 3학년 학생 김형석, 최고영, 주세별군 3인은 옆 칸에서 벌어진 사건을 목격하고 신속하게 김모씨에게 달려들어 인화성 물질과 라이터를 빼앗고 팔을 꺾어 제압하였다. 또 경북 경산 소방서 진량 파출소에 근무하던 박수덕 소방위는 이때 가족들과 나들이를 다녀오던 중이었는데 화재가 발생한 것을 보자 소화기를 꺼내서 김모씨가 붙인 불을 끄고 학생들과 함께 김모씨를 제압하고, 완전히 제압한 것을 확인한 뒤 현장을 떠났다. 21일에 3명의 학생들은 대구지하철공사에서 감사장과 100만원씩 포상금을 받았으며, 대구지방경찰청에서 용감한 시민상과 50만원씩 포상금을 받았다. 박수덕 소방위도 표창과 30만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1.4. 도곡역 열차 방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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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유류 소지 탑승 시도 사건

2018년 2월 3일[2] 수성못역에서 한 남성이 휘발유 통을 들고 탑승하려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에게 제지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이 남성은 "차량용 기름을 들고 간다", "차도 집도 없다"는 등 횡설수설해서 수상하게 여긴 역무원이 신고했다. 경찰은 이 남성을 역사 밖으로 데리고 나온 뒤 귀가할 때까지 따라갔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2. 해외

1989년 6월 4일 소련에서 가스 폭발로 우파 철도 참사가 일어나 585명이 사망하였다. 이는 철도 화재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으며 역대 2번째로 사망자를 낸 철도 사고다. 다만 이 사고는 가스 폭발로 일어난 참사다.

1995년 10월 28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지하철에서 화재가 나 289명이 숨졌다. 다만 이 사고 역시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방화로 인해 일어난 것은 아니고 전기 오작동으로 인해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바쿠 지하철 화재 참고.

2004년 1월 5일 홍콩 MTR 췬완선 열차가 애드미럴티역 진입 도중 유사한 화재가 났으나 불길은 10여분 만에 꺼지고 부상자 14명을 빼곤 인명피해가 없었다. 과거 대구 지하철과 달리 1973년 개통 시기부터 차체를 일찍이 불연/난연재로 한 덕이라 피해가 적었다.

2020년 3월 27일, 뉴욕 지하철 110가-센트럴 파크 노스 역에서 방화로 인해 기관사가 사망하고 열차 5량이 반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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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이 시점에 불연재로 교체된 차량은 고작 20%대였다. [2]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 15주기 15일 전이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6일 전이었다. 하마터면 지구촌 대축제를 앞두고 대형 화재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여기에 박근혜가 파면당하지 않았다면 노무현 대통령 취임 1주일 전 발생했던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또 다시 대통령 취임 직전 대형 방화사건 징크스( 대구 지하철 참사, 숭례문 방화 사건, 인사동 식당밀집지역 화재)가 이어질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