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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룽청현, 안신현, 슝현 및 주변 지역은 실질적으로 국가급 신구인
슝안신구의 관리를 받고 있다. [3] 런추시 내부의
화베이유전지구는 허베이성의 지급행정구 대우를 받으며, 허베이성 인민정부와
중국 석유 천연가스 공사 양자의 관리를 받는다.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background-color: rgba(255, 0, 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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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大名县영어 Daming county
허베이성 한단시에 속한 현. 북쪽의 관타오현 ( 관도), 남쪽의 푸양시 (복양), 서쪽의 린장현 ( 업성) 등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다. 시가지는 북쪽의 장허와 남쪽의 웨이허 사이에 펼쳐진 평야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75만명으로, 현 치고는 큰 편이다.
북송대의 3대 배도 (陪都) 중 하나인 북경대명부(北京大名府)였고, 약 천년간 일대의 중심지로 번영한 화려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내에는 명대에 세워진 대명부성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어 과거의 영광을 증명하고 있다.
2. 역사
진한대 기주 위군 소속 원성현 (元城縣)이 설치되었는데, 지명은 과거 위무후의 아들 공자 원의 식읍이 있던 것에서 기원하였다. 서쪽의 위현 (魏縣)은 위군 도위의 치소였다. 위진대 사주 (司州 ) 양평군 (阳平郡)에 속하였고, 해당 군의 치소였다. 동위 시기 동북쪽에 관도현에서 분리된 귀향현이 설치되었다. 북제 시기 원성현과 귀향현 모두 사주 청도윤 (清都尹) 소속이었다. 수나라 대에 일대에는 무양군 (武阳郡)이 설치되어 원성현, 귀향현을 포괄하였고 후자에 군의 치소가 있었다. 당대에 무양군은 위주 (魏州)로 편성되었다.
당나라 대에 위주는 천하육웅 (天下六雄) 중 하나였고, 원성과 귀향현은 이따금씩 서로를 병합하기도 하였다. 안사의 난 후 763년 일대는 위박절도사 (魏博节度使)령에 소속되었다. 779년 부친으로부터 절도사 직을 세습한 2대 위박절도사 전열 (田悦)은 781년 치청절도사 이납의 권유에 당 조정에 반기를 들고 위왕을 칭한 후 위주를 대명부로 개칭하였다. 다만 784년 사촌 전서 (田绪)가 그를 살해, 조정에 귀순한 후 위박절도사로 봉해졌다. 동시에 대명부는 위주로 환원되었다. 후당 시기 원성현은 흥당현 (兴唐縣), 귀향현은 광진현 (广晋縣), 그리고 위주는 흥당부 (兴唐府)로 개칭되었다.
후한대 흥당현은 다시 원성현이 되었다가 후진대에 대명현으로 명명되었고, 다시 흥당부는 대명부로 개칭되었다. 923년 이존욱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기에 대명부는 후당이 공식적으로 세워진 곳이었다. 북송 대에 대명부에는 북경 (北京)이 설치되어 중시되었고, 1073-96년간 과거의 지명인 원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비록 3경 ( 동경개봉부, 서경하남부, 남경응천부)에 들지는 못했지만 북송의 3대 배도 중 하나로, 북경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북송 시기 북경대명부는 하북동로의 치소이자 하북 지역의 최대 도시로, 연운 16주와 가까워 요나라에 대한 군사 거점이었다.
대명부 내에 있던 대명현은 1116년 남악진 (南樂鎮)[1]으로 이전되었고, 원성현과 공존하였다. 금나라 대에 일대는 대명부로 소속 대명부였고, 원나라 대에도 대명로에 속하였다. 명대에 대명부의 부성, 즉 시가지는 대가향 (大街乡)에서 (현 위치인) 원성현으로 이전되었다. 동시에 대명현 역시 원성현에 합쳐졌다. 신해혁명 후 대명부가 폐지되었고, 민국 초기 대명현은 직예성 대명도에 소속되었다. 20세기 초에도 여전히 하북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고, 거대한 성당이 세워졌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는 한단전구, 한단지구이 이어 한단시에 배속되어 현재에 이른다.
3. 볼거리
근대 시기의 성모 성당 (宠爱之母主教座堂) | 대명부성 위성사진 |
3.1. 대명부성
명대 성벽
3.2. 성모 성당
성내의 근대 시기 성당 (宠爱之母主教座堂). 1918-21년 프랑스 가톨릭 교회의 주도로 세워졌고, 42m 높이의 첨탑을 지니고 있다.
[1]
현 푸양시 난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