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름 |
<colbgcolor=#fff,#191919>닉 링 (Nick Ring) |
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출생지 | 캘거리, 앨버타 |
생년월일 | 1979년 2월 10일 ([age(1979-02-10)]세) |
권투 경력 | 6전 5승 1패 (2KO) |
종합격투기 전적 | 18전 14승 4패 |
승 | 2KO, 6SUB, 6판정 |
패 | 4판정 |
체격 | 183cm / 84kg / 188cm |
링네임 | The Promise |
SNS |
[clearfix]
1. 개요
전 UFC 미들급 종합격투기 선수.2. 전적
- 주요 승: 빌 마후드, 와이어트 루이스, 알렉스 개슨, 케빈 돌런, 키모 볼펠, 마이크 맬론, 무라타 류이치, 이시드로 곤살레스, 체스터 포스트, 야닉 갈리피우, 후쿠다 리키, 제임스 헤드, 코트 맥기, 제이슨 젠트그라프
3. 커리어
종합격투기를 시작하기 전 아마추어 킥복서였으며 대략 30전의 전적이 있었다. 종합격투기는 2002년부터 시작했으며 4승 무패를 기록했다. 2년을 쉬고 2005년부터 3연승을 거뒀지만 무릎부상으로 인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중단해야만 했다. 무릎 재활 중 2007년 복싱선수로 데뷔해 4승 1패의 전적을 거둔다. 복귀 후 Bellator MMA에서 1승을 거두고 2승을 더 거두며 10승 무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2010년 3월 TUF 11에 출전해 첫 경기에서 우디 웨더비를 상대로 1라운드 TKO승을 거두고 티토 오티즈팀에 배정받았다. 8강전에서 코트 맥기를 상대로 머저리티 판정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4강전에서 맥기와 리매치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ACL부상으로 인해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자로 제임스 해머트리가 들어갔다. 수술, 재활일정으로 인해 TUF 11 Finale는 결장할 수밖에 없었다. 5개월 후 재활이 완료되고 나서 조르주 생 피에르, 로리 맥도널드가 있는 트라이스타 짐으로 소속을 옮겼다.
2011년 2월 27일에 열리는 UFC 127에서 후쿠다 리키와 맞붙었다. 1, 2라운드를 근소하게 가져갔으나 3라운드때 후쿠다가 링을 테이크다운시키고 상위에 오랫동안 점거해 라운드를 가져갔지만 29-28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편파판정이라는 평이 많았으며 데이나 화이트도 후쿠다의 승리였다며 저지들을 비판했다.
UFC 131에서 제임스 헤드와 맞붙어 3라운드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승리를 거뒀다.
UFC 135에서 팀 보우치와 맞붙었다. 1라운드부터 움직임을 차단당하고 타격전에서 밀렸으며 2라운드 보우치의 오버핸드에 넉다운을 허용했다. 3라운드엔 타격과 테이크다운을 허용했고 크루시픽스까지 빼앗겨 전 라운드를 내줬고 만장일치 판정패로 커리어 첫 패를 당했다.
UFC 149에서 TUF 시절 붙었던 적이 있었던 코트 맥기와 맞붙었다. 링이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뒀으나 판정에 논란이 많았다. 유효타에서 2, 3라운드는 맥기가 횟수가 많았다. 맥기도 인터뷰에서 내가 더 때리고 압박하고, 컨트롤하고 3라운드엔 서브미션시도까지 했는데 왜 내가 졌는지 이해할수 없다며 저지들을 비판했다.
UFC 154에서 코스타 필리푸와 맞붙을 예정이였으나 링이 계체량당일 질병으로 인해 이탈하며 경기가 취소되었다.
UFC 158에서 크리스 카모지와 맞붙어 스플릿 판정패당했다.
UFC Fight Night 26에서 유라이어 홀과 맞붙을 예정이였으나 링이 거부했고 조쉬 새먼이 대타로 들어왔으나 존 하워드로 교체되었다.
UFC Fight Night 33에서 카이오 마갈레스와 맞붙었으나 만장일치 판정패당했고 이 경기 이후로 UFC에서 방출되었다.
이후 종합격투기 2경기 복싱 1경기를 뛰고 2015년이후로 경기를 갖고 있지않다.
4. 파이팅 스타일
킥복싱베이스의 타격가다. 사우스포 스탠스에서 앞손 앞발 레그킥으로 견제하다가 상대가 들어오면 왼손으로 받아친다. 킥복서 출신이지만 그래플링에서도 괜찮은 모습을 보이는데 적극적으로 테이크다운시도하며 그라운드에서의 움직임이 나쁘진 않았다.단점은 넉아웃 파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소극적인 운영으로 인해 판정으로 가는 경우가 잦았다. 압박이 강한 선수들에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경기를 말아 먹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