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명칭 | 주식회사 내일신문 |
영문명칭 | The Naeil News Co., Ltd. |
창간일 | 1993년 6월 21일 |
설립일 | 1993년 6월 21일 |
업종명 | 신문 발행업 |
상장유무 | 상장기업 |
상장시장 | K-OTC (2014년 ~ 현재) |
종목코드 | 079180 |
기업규모 | 중소기업 |
본사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3길 3 ( 신문로1가)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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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중소 석간 일간 신문.2. 사시
내일의 희망을 전하는 정치, 경제 일간지.
3. 특징
1993년 주간 내일신문으로 창간했다. 신문의 주인이 처음부터 사원에게 있는 사원주주 시스템을 도입했다.[1] 그렇게 6년을 보내다가 1999년 10월 9일 일간으로 전환해 석간 내일신문으로 발행했다.사원 주주 체계이기 때문에 비교적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다.[2] 흥미로운 것은 경영 능력인데, 창간 이후 지금까지 적자를 본 적이 없다. 그 매서웠던 IMF 외환위기의 한파 속에서도 적자를 보지 않았던 것. 발행부수가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여타 언론사들에 비해서 훨씬 경영이 양호한 편이다. 물론, 자매지 격인 미즈내일이 나름대로 잘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지역 정보지인 지역 내일신문에 수입도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 (지역내일신문은 석간 내일신문에서 분리, 매각돼 다른 회사에서 발행중)시사저널의 각 신문사 연봉 비교에 따르면 기자들 연봉이 조선일보, 중앙일보에 이어 3위 였다. 4위인 동아일보와는 2,000만원 가량 차이가 난다. 어지간히 경영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인건비를 이런데 못 쓴다. 신문경영비의 60%가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창간 후, 듣보잡으로 묻힐 뻔한 위기를 대박 특종으로 일거에 만회했다. 바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기성 언론사와 검찰이 제기한 선장 생존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 침몰한 배의 선장이 살아있다고 모든 언론들이 떠들면서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때, 내일신문만 선장이 배와 함께 운명을 맞았으며[3], 언론에서 선장으로 착각한 사람은 위도 지서장[4]임을 밝혀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밝혀낸대로 선장이 배와 함께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성 언론사들이 모두 사죄 사설을 싣고 있을 때, 오직 내일신문만이 진실을 보도한 것으로 주가를 높였다.
사시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 내 일을 하며 내일을 지향한다"로 중도성향을 지향하고 있고, 다소 진보적인 성격을 띠고는 있지만, 경향신문과 비슷한 성향의 온건함을 드러낸다. 다만 18대 대선 들어 내일 신문이 "새 정치"등의 구호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안철수 후보에 우호적인 보도를 많이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통합당에 부정적인 이유도 그 이유. 이점에서 경향, 한겨레와 많은 차이를 띄었으며, 실제로 19대 대선때엔 안철수에게 유리한 지지율을 가지고 여론조사를 내어 이를 인용한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대표를 고초에 겪게 만들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사설 대신 대표 칼럼을 싣는 방식이라는 점. 정치와 경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스포츠와 문화 면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아울러 지하철 가판대에서 거의 팔지 않는다. 대신 무리한 부수 확장보다는 차분하게 내실을 다지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발행인 장명국은 민주화운동 이론가, 노동운동가 겸 출판인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 자신이 경영하던 '석탑'출판사를 통해서 '노동법 해설' 등 노동운동, 민주화 관련 서적을 출판하였다. 이런 활동들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도 있을 정도. 노동운동가로서 사무직노동자, 금융노조를 매우 중시하였으며, 한국노총개조론을 설파하였다.[5] 특히 월간잡지 '새벽'을 통해 '현대이론'이라는 민주화운동노선[6]을 제시하면서 한때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하지만 1992년 13대 대선에서 장명국이 지지하던 김대중이 패배하고, 민주노조운동의 대세가 독자적인 민주노총 건설로 넘어가면서 장명국은 운동권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였다.[7] 이후 내일신문, 대학내일 창간으로 제도권 언론사업에 뛰어들면서 운동권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YTN사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본지인 내일신문 외에도 전국 20여 개 지역에 지역별 내일신문을 발행하고 있다.[8] 각 지역에 1~3만 부 가량 배포하며, 무료 주간 신문이다.
(전국의 모든 지역 내일신문이 2018년부터는 내일신문과 분리돼 (주)지역내일이라는 출자회사에서 운영하다 2018년 12월 내일엘엠씨라는,
2013년 11월 19일부터 인터넷 신문 전면 유료화에 들어갔다. 네이버 등에도 더이상 기사가 올라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사를 로그인해 가입한 회원만 볼 수 있다. 만평정도만이 무료라고 했는데 현재는 일부 정치기사와 오피니언 정도만이 유료기사인 것으로 보아 전면 유료화는 한계에 부딪친 것으로 보인다.
K-OTC를 통해 내일신문의 주식매매가 가능하다. 장명국-최영희 부부가 최대주주이긴 하나 지분율은 13.26%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소액주주한테 주식이 있는 형태라 K-OTC 시장 개설 이후 소액주주들의 물량이 거래되는 형식으로 내일신문의 주식매매가 가능해진 것. 코스닥시장 기업공개( IPO)를 통해 상장기업이 될 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재 무신경한 거 봐서는 상장사가 될 마음은 없는지도 모른다.
당연하지만 강철수의 만화 내일뉴스하고 혼동하면 안된다.
4. 역대 사장
- 최영희 (1993~2002)
- 장명국 (2002~ )
[1]
현재도 주식의 62%를 사원들이 보유하고 있다.
[2]
이러한 사원주주 방식은
1998년
경향신문이
한화그룹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따라서 채택한다.
한겨레신문도 유사한 시스템이다.
[3]
선장의 생존설을 반박한 언론은 이곳과 더불어
중앙일보 정도밖에 없었다.
[4]
그런데 외모가 정말 닮았다. 당시 언론에 선장이 살아있다고 제보한 사람은 지서장이 바뀐 줄 몰랐고, 그래서 착각했다고 한다.
[5]
당시 한국노동운동에서 사무직노조, 특히 금융노조를 중시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6]
현대이론은 북한의
주체사상에서 수령론을 제거하고 몇몇 용어를 남한에 맞게 현지화한 내용이였다. 이때문에 장명국의 현대이론을 추종하던 학생운동권의 "새벽"그룹은 범NL계로 분류되었다. 이들은 매달 장명국이 발간하는 잡지 새벽을 보면서 학습한다고 해서 "새벽"이란 이름이 붙었다.
[7]
현대이론을 추종하던 새벽그룹은 장명국이 1993년을 기점으로 잡지 새벽 발간을 중단하자, 갈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세력이 급속히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1996년 연세대 사태, 1997년 한총련 출범식 사태가 벌어지자 대대적인 한총련 혁신을 주장하였고,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공개적으로 한총련을 탈퇴하면서 주체사상과 친북노선을 과감하게 폐기하였다. 이후에는 참여연대와 비슷한 현실개혁주의 성향을 띄면서 "참대학"이라는 학생운동단체를 만들었으나 뚜렷한 활동없이 2000년 즈음에 망해서 사라졌다. 이곳에 참여했던 운동가들은 이후 시민운동,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등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8]
충남 천안시와 아산시의 경우,2017년 정도부터 천안아산신문으로 변경되었다.근데 신문 디자인은 바뀐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