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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늑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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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2006년 11월 26일
창립자 성재기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활동
3.1. 남성연대 시기3.2. 양성평등연대 시기3.3. 푸른늑대회 시기
4. 사건 사고
4.1. 신 남성연대 대표와의 대립
5. 역대 대표6. 주요 인물7. 남성연대 갤러리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시민단체이자 안티페미니즘 단체. 옛 이름은 남성연대. 현재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로 일부 회원들에 의해 커뮤니티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2006년 11월 26일 성재기에 의해 창립되었다.

한국에서 남성 인권운동과 남성에 대한 성차별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선 선구자적인 단체였으며 2010년대 초반 당시에도 이미 한국 사회의 남성차별과 페미니즘의 부조리함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던 일부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공감을 받고 방송이나 인터넷 상으로도 적지 않은 화제를 일으켰으나 재정난에 허덕였고 2013년 성재기의 사망 이후에는 단체는 존속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활동은 없다. 당시 재정난을 겪었던 이유는 성재기가 남성연대를 여성부 산하에 등록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성평등과 관련된 시민단체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여성부에 등록하여 여성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야하는데, 여성부와 싸우는 남성연대가 여성부 밑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 거부 이유였다.

2. 역사

2006년부터 여성부 폐지운동본부 라는 모임을 만들고 그해 11월 2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사무실을 열고 그뒤 영등포구 여의도동으로 이주했다.

2008년 1월에는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활동했고 비영리 단체로 승인받았다.

2010년 이전에는 과거에 있었던 남성가족부와 비슷한 안티 페미니즘 홈페이지에 지나지 않았으나, 2010년부터 언론을 간간히 타면서 이름을 알렸다.

본래의 상임대표는 성재기였지만 성재기 한강 투신사건 이후 혼란기를 겪으며 대표가 여러차례 바뀌었으며, 그에 따라 단체의 이름도 양성평등연대로 바뀌었다.

양성평등연대는 여성가족부 극단적 페미니즘을 가장 우선적으로, 전력을 다해 싸워야할 대상이라고 적시하고 있으며, 목표는 여성부 폐지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푸른늑대회는 가뜩이나 줄었던 세가 더 줄어 현재는 관리자와 몇몇 회원들이 성재기와 남성연대 시절의 기록을 보존하며 안티페미니즘과 신 남성연대 등을 지지하였으나 현재는 신 남성연대의 행적으로 인해 남성연대 갤러리와 더불어 신남연에 반감을 갖고 있는 회원도 늘어나고 있다.

3. 활동

3.1. 남성연대 시기

초기에는 지하철에 국제결혼을 주선하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하거나, “페미니즘 멸살”과 같은 다소 과격한 구호를 내걸었다가 삭제한 바 있다.

영화 < 너는 펫>(2011)이 남성을 하인으로 묘사한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거나, 네이버 해피빈 사이트에서 여성은 '그녀'인데 비해 남성은 '그'가 아닌 '그놈'이라고 지칭한 성차별적 행위의 시정을 요구한 일이 있다. 거기에 2012년 5월에는 백지영의 노래 '굿 보이'에 음원유통금지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대체적인 사유는 '너는 펫'때와 거의 똑같다.

'너는 펫' 가처분 신청의 결과는 법원에서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시켰다. 백지영의 노래에 대한 가처분 신청도 당시엔 큰 공감을 얻지 못하고 묻혔고 남성연대 측에서도 결국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다. 그러나 해피빈의 경우엔 '그놈'을 '그'라고 수정하면서 일단락되었다.

2012년 1월에는 여성가족부의 명칭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인 남성을 위한 활동이 없으므로 '가족'을 빼야 한다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을 옹호하는 글을 대표 명의로 발표한 적이 있다. 해당 발언은 말실수니까 그냥 사과를 하면 될 일이었다는 논지였는데, 이 일로 인해 강용석 의원을 비호한다고 비난을 받았으나 실제로도 해당 사건은 사건 특성상 사과 말고는 해야할 것이 없는 사건이었다. 실제 강용석도 해당 사건에 대하여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남성 역차별 문제, 남성성에 대한 몰이해, 여성 이기주의에 대한 자정이 없는 여성계 내부의 부조리, 남성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외면, 여성에 대해서 존재하던 전통적 역할을 없애는 것에는 적극적이면서 여전히 남성에 대해서는 부조리한 역할과 의무를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압박 등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공론화 시키고 이슈화 시켰다.

2011년 12월 9일에 한국의 20~35세 여성 10명 중 3명(약 189만 명)이 성매매로 살아가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을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였다. 이 발표 내용은 몇몇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었으나, 그다지 큰 반향을 얻지는 못하였다.[1]

남성에게만 부과된 병역의무에 대해서도 길거리에서 소규모 시위를 하기도 하였고 성폭력 무고 피해자, 여성에게 구타당한 남성 피해자 등의 소송비용과 변호비용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각종 방송사의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여성할당제, 여성 전용 주차장 등과 관련하여 여성단체 사람들과 설전을 벌였다.

2012년 6월에는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의 피의자 중 한 명인 배준우의 무죄를 주장해 2차 가해 논란이 있었다. # #.

포르노, 애니 등과 같은 것들이 남성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게 만든다는 주장을 하는 여성계와의 토론회에서 남성연대 측에서도 참석하여 '여성들의 과도한 노출은 성범죄의 원인이 아니라면서 포르노나 애니가 남성들의 성범죄를 일으키게 한다는게 말이 되느냐.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지 말자는게 아니라 바바리맨을 잡아야지 바바리를 못입게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일갈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박근혜를 지지한 이유는 민주당은 여성부를 설립한 당인 데다가 문재인 캠프의 대변인 중 1명이 여성부를 옹호한 발언을 한 것에 비해 박근혜는 의원 시절 여성부를 부정적으로 보아 여성부를 축소하자는 법안을 제안했다는 게 지지 사유. 그리고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자 박근혜가 당선된 오늘은 남성연대에 있어 역사적인 날이 될 거라며 성재기 대표를 비롯한 남성연대 일원들이 회식을 가졌으며 로복(정지복)과의 토크쇼를 진행한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역사적인 날이 되어버렸다

2013년 7월 26일, 성재기 대표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자세한 것은 남성연대 대표 한강 투신사건 항목 참고.

2014년 8월에 남성연대는 양성평등연대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특유의 성향 때문인지 박근혜 게이트사건 이후 남성인권연대, 안티페미협회보다도 밀리고 있다. 남성단체의 선구자적 위치였던 초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

3.2. 양성평등연대 시기

2014년 군인권법에 반대하는 성명서[2]를 발표했다.

몇몇 소속인이 자유대학생연합과 겹치며, 2015년 성희롱 고발이 있기도 했다.

박근혜 게이트 이후 2016년 6월을 마지막으로 페이스북도 갱신이 정지되었으며, 네이버 카페만 남아있는 상태. 메갈리아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으로 세가 불려나가고있으며, 이 단체는 스스로를 진정한 양성평등 주의자들의 집합소라 주장한다.

성재기 사후 세력이 위축되다 2021년 들어 극우 유튜버 왕자가 이끄는 신 남성연대와 연대하기 시작했다. 신 남성연대와 통합하지는 않고 그냥 서로 협력하기로만 했다.

하지만, 왕자에 따르면, 양성평등연대에서 신 남성연대가 남성연대를 이어받을 정통성을 인정해주고 무운을 빌었다고 했고, 양성평등연대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니 통합이라 보긴 어려워도 사실상 기존의 남성연대는 신 남성연대가 이어가게되는 모양새가 되었으나, 후술한 사건 사고 문서에서, 신 남성연대 대표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3.3. 푸른늑대회 시기

양성평등연대가 활동을 중단한 상태에서 과거 성재기 시절 남성연대에서 활동하던 스탭중 한 명이 남성연대 사이트를 2021년 2월에 다시 오픈해 운영하고 있었지만, 신남성연대와의 혼선을 우려해 사이트 이름을 '푸른늑대회'로 변경했다. 과거 성재기 대표 시절 남성연대의 다양한 자료들이 보존되어 있기에, 남성연대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다.[3]

9월 19일, 푸른늑대회가 유튜브를 시작함을 알리는 영상을 올렸다.

요약하자면, 성재기 대표의 생전 기록을 기반으로 페미니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시사킬러, 남성연대의 알려지지 않은 활동 영상, 허위사실이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팩트체크 이 세 종류의 영상을 통해, 기존의 남성연대 모습을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10월 2일, 푸른늑대회 단체소식으로 첫 영상에 대한 예고를 올렸다. 내용은, 시사킬러 첫 번째 영상,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한국 여성계' 를 적어도 다음 주 평일 내에 올리겠다고 한다.[4]

11월 28일, 푸른늑대회 유튜브 채널에, 성재기의 시사킬러 - 한국 여성계 (예고편) 영상을 올렸다. 다음 날인 11월 29일, 성재기의 시사킬러 - 이데올로기적 페미니즘 영상을 올렸다.

12월 8일, 디도스 공격으로 인해, 홈페이지가 불안정할 수 있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이후, 언제부터인지 접속이 길어지자 접속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디도스 공격의 영향때문인지는 의문이다.

4.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1. 신 남성연대 대표와의 대립

푸른늑대회의 이름이 변경될 당시, 푸른늑대회 관리자는 새로운 남성인권 단체의 출범을 과거의 본인들이 막을 이유가 없다며 신 남성연대의 지지를 표명했다. #

그러나, 8월 21일, 신 남성연대 대표의 행위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써, 푸른늑대회 측의 신 남성연대를 향한 지지를 사실상 철회하였다. #[5]

동성애자들도 포용하는 남성연대와 다르게 신 남성연대는 동성애자들을 포용하지 않는다. 이때문에 구 남성연대를 지지하는 동성애자와 신 남성연대에 동성애 차별 지지자들이 대립하기도 한다. 남성연대의 대표 성재기는 동성애자 포용을 주장하지만 신 남성연대는 7월 16일 대규모 집회에서 동성애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냈다[6]

이에 대해, 신 남성연대 대표 배인규는 9월 5일 아프리카 방송을 통해 "비판을 수용해라? 무슨 조선시대 사대부 얘기하냐" "자신들이 페미와 싸우는 동안 뭐 했느냐, 자신에게 후원이나 했느냐", "성재기의 활동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맞기는 하느냐", "성재기 죽고 나서 한 것이라곤 멘탈 털려서 뻗어있었던 것밖에 없지 않느냐"고 조롱과 항의를 했으며, 더 나아가 , 신 남성연대가 잘 나가니 배알 꼴려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거나,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푸른늑대회를 개박살낼 수 있다'''며 협박 섞인 비난을 가했다.

특히, 푸른늑대회 대표가 지적한 '본인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페미니스트들이 다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전혀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그가 푸른늑대회 대표를 4월 21일에 만나며 페이스북에 "(자신은) 적어도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말한 것은 거짓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신 남성연대 대표는 성재기를 단지 자신의 유명세를 떨치고,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할 뿐, 진정으로 성재기의 신념을 계승할 생각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이 날의, 방송을 기점으로 매우 적은 인원이지만 신 남성연대에 반감을 느껴 푸른늑대회에 합류하는 회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신남연과 분명 뜻이 맞는 부분(보수, 안티페미니즘)도 있으나 푸른늑대회(구 남성연대)는 성재기 대표의 겸손과 잘못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있는 반면 신 남성연대는 잘못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업체를 불러서까지 은폐하려 하거나[7] 과격함을 일삼는 행위로 혐오를 돈벌이[8]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대립이 커졌다.

앞 문단에서 언급한 9월 19일에 올라온 영상 0:31에서[9], 푸른늑대회를 지지하는 의견과 활동에 대해 염려하는 의견, 그리고 신 남성연대 지지자(또는 배인규 지지자나 추종자)로 추정되는 분탕이 섞였다.

11월 29일, 푸른늑대회 측에서는, 후속 기고문을 통해 신 남성연대의 행보와 성재기 대표의 방향성은 전혀 다르다고 선을 긋는 동시에 푸른늑대회가 명칭을 바꾸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밝히며 신 남성연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 특히 "앞으로도 신남성연대의 활동을 보고도 푸른늑대회에게 변경요청이 많아진다면 남성연대라는 이름을 돌려받을 것이다" 라고 밝히며 신 남성연대로부터 남성연대라는 이름까지 자신들이 되찾아올 수 있음을 밝혔다.

자세한 것은, 신 남성연대/논란 및 사건 사고 참조.

5. 역대 대표

  1. 성재기 2006년 11월 26일 ~ 2013년 7월 26일
    • 대행, 한승오 2013년 7월 27일 ~ 2013년 7월 29일,
  2. 한승오 2013년 7월 29일 ~ 2013년 8월 29일
    • 비상대책위원장, 황장수 2013년 8월 17일 ~ 2013년 9월 15일
    • 대행, 김인석 2013년 9월 16일 ~ 2013년 11월 12일
  3. 김인석, 김동근 2013년 11월 12일 ~ 2014년 3월 11일
    • 김인석, 김동근 2014년 3월 11일 사퇴
  4. 박형준 2014년 3월 12일 ~

6. 주요 인물

7. 남성연대 갤러리

성재기가 사망한 후 디시인사이드에는 2013년 말에 남성연대 갤러리가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남성인권 및 성재기에 대해 논할 목적으로 쓰였으나, 메르스 갤러리 무한도전 갤러리에 이어 메갈리아의 난입으로 2015년에 갤러리가 초토화되었고, 현재는 활동이 거의 없는 상태. 만약 반페미니즘과 관련된 갤러리를 찾는다면 반페미니즘 마이너 갤러리로 가면 된다.

최근에는 신 남성연대의 대표가, 신 남성연대의 대표 및 부대표를 비판하는 글, 비난하는 글 뿐만 아니라 불리한 자료 조차도 "당신의 삭제"라는 디지털 장의사를 통해 없애는 바람에, 남성연대 갤러리에서 신 남성연대에 반발이 심해졌다. 자세한 내용은, 신 남성연대/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현재는 가끔 올라오는 글 빼곤 조용한 상태다.


[1] 참고로 여성가족부에서 서울대학교에 용역을 줘서 만든 성매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성매매 업소에서 종사하는 여성은 약 14만 2000명 정도로 추정하였으나 이후 성매매 실태조사 모두가 조사과정에서의 신뢰성 문제로 국가승인통계에서 철회됐다 [2] 현재는 삭제돼서 확인이 불가능하다. [3] 2013년 5월 26일, 남성연대의 시위 집회 영상이 올라온 적이 있다. 이때는, 아직 푸른늑대회가 아닌 시절에 올린 영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4] 컴퓨터 사양이 좋지 않아서 편집이 어렵다는 점, 페이지 공사 중이라는 점으로 보아, 운영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푸른늑대회 측 공식 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5] 다만 이전에도 푸른늑대회 측은 신남연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6] 집회 당시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근거는 성관계와 에이즈 밖에 없었다. 또한 남성 동성애자들만 집중적으로 발언한 것을 보면 구 남성연대와 신 남성연대의 대립이 당연해 보인다. 구 남성연대는 모든 남자를 포용하지만 신 남성연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7] 특히 이 부분이 푸른늑대회 대표 푸른늑대가 성재기 대표와 비교하며 비난한 부분이다. [8] 비록 유튜브가 성장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신남연과 다르게 남성연대는 성재기 한강 투신사건까지 나올 정도로 당시 수익은 거의 없었다. [9] "과격함보단 팩트로써" 라는 부분은 배인규의 방식에 대해 비판인지,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인지, 혹은 둘 모두에 대해서인지는 공식적인 의견이 없는 이상, 알 수 없을 것 같다. [10] 당시 양성평등연대 [11] 당시 남성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