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늪지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깊은 숲 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왕국, 아름다운 요정들만 살고 있다는 그곳을 찾는 남자는 그들의 노예가 되어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으나 아무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양악평의 소행에 의해 마물들이 들끓으면서 그 미지의 왕국이 드러나게 되어 그곳을 찾은 여행자들에 의해 녹림도성이라는 신비로운 여성들의 왕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말라붙은늪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이 구덩이는 바닥은 커녕 구덩이 벽이 있는지 조차 모르게 칠흑의 어둠으로 뒤덮여 있고 그 안에서는 가슴 깊은 곳에서 끄집어 낸 듯한 괴이한 비명소리가 들려 마치 지옥이 구덩이 속에 자리잡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마치 소인국의 사람이 거인국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이 숲은 아직 인간들의 손이 닿지 않은 듯 사방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신기한 식물들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이곳에선 동물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거대한 곤충들만이 먹이사슬을 알려 주듯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광경만이 보인다. 기괴하리만치 거대한 나무들 중에는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것들도 보이며 집과 동굴을 연상시키게 하는 기이한 형태의 나무들도 간혹 보이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공포감을 더해준다.

진득한 액체가 곳곳에 고여 있는 이 말라붙어버린 늪은 흡사 악귀들의 거대한 전쟁이 훑고 지나간 장소처럼 거칠고 기괴한 암벽들로 뒤덮여 있고 곳곳에서 늪에 빠져 죽은 사체들이 살아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말라붙은 늪 바닥을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여인부족들의 도시인 녹림성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녹림성이 세워지기 전의 과거에 노루담왕국이라는 고대의 도시가 있었으며, 그 곳의 남성들은 오직 여신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며, 여성들이 모든 노동을 부담하는 남존여비의 사상으로 가득한 불평등한 왕국이었다고 한다. 남성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여성들을 무시하고 차별했으며, 급기야 그들이 모시던 여신마저 우습게 여기게 되자 분노한 여신의 저주를 받아 도시는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여성들만 살아남아 녹림성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녹림성은 남성을 배척하고 여성들만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 다른 문명과의 접촉을 단절하기로 결정하고 왕국시절부터 교통로로 이용되던 노루담의 굴을 완전히 봉인하게 된다. 결국 현재 노루담의 굴은 고대 남성들의 원혼과 지하의 벌레 따위가 득실대는 끔찍한 동굴로 변질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