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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原昌也
1. 개요
일본의 뮤지션, 소설가, 영화 평론가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유명 그림화가이자 일러스트 작가였던 나카하라 슈이치의 아들이다.
2. 음악 활동
어릴 때부터 인디 음악과 아방가르드 문학, 컬트 영화에 심취했다. 18세가 되던 1988년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해, 재패노이즈 신에 이름을 알렸다.그의 프로젝트인 폭력 온천 게이샤(Violent Onsen Geisha)는 초창기엔 80년대 유행했던 극단적인 노이즈 사운드를 선보였지만, 90년대로 접어들자 서로 관련이 없는 잡다한 음악 장르를 접목한, 독특하고 전례 없는 사운드로 진화한다. 이에 마침 일본의 실험적 음악 신과 교류가 있던 벡과 소닉 유스의 흥미를 끌게 되었고 [1] 이들의 지원으로 1995년에 미국 투어를 진행했다. 이 시절 발매한 Nation of Rhythm Slaves [2]는 롤링 스톤 재팬 선정 100대 명반 63위에 올랐다.
1997년, 코무로 테츠야의 방송에 나간 것을 계기로[3] 활동 명의를 Hair Stylistics로 변경해 현재까지도 꾸준히 라이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앨범 발매는 2012년이 마지막이라 전반적인 활동 영역을 문필 쪽으로 옮긴 상태.
한편 영화계와도 관련이 깊기 때문에 영화음악 작곡도 꽤 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제58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진출한,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이다. 이 작품에서는 배우로도 출연한다.
3. 소설가 활동
90년대 중반부터 문예지에 발표한 소설들을 모아 단편집 <마리&피피의 학살 송북>으로 소설가로 데뷔한다. 2001년 작품 <모든 장소에 꽃다발이...>로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 2006년엔 <이름 없는 고아들의 무덤>으로 노마 신인 문예상을 수상, 작중의 단편 <점멸...>으로 아쿠타가와상후보에 오르기도 한다. 여러모로 INU라는 펑크록 밴드 리더였다가 소설과 영화로 영역을 확장한 마치다 코우와 유사한 루트를 밟은 셈. [4]소설가 나카하라 마사야의 작풍은, 일반적인 소설의 작법이나 기승전결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며,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짧은 분량 내에 그려내는 방식이다. 때문에 새롭고 급진적인 것을 선호하는 문학 비평지와 젊은 독자들에겐 컬트적인 인기들을 얻었지만, 다소 보수적인 아쿠타가와상 등의 문단 주류로부턴 외면당하기도 했다.
4. 영화 평론가 활동
오야마다 케이고와의 친분으로 음악 잡지에 칼럼을 쓰며 저널리스트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후 마치야마 토모히로가 창간한 영화지 <영화비보>에 참가해 본격적으로 영화 평론을 쓰기 시작한다. 여담으로 영화 평론가로 한창 활동하던 이 시기, 키네마 준보에 실린 나카하라 마사야의 글에 대해 마치야마가 사실관계 지적을 하자, 키네마 준보 부편집장이 격분했고, 열받은 마치야마가 골탕먹일 생각으로 키네마 준보 편집실에 찾아가 파이를 던졌는데, 이로 인해 법적 분쟁으로 번질 조짐이 일자 마치야마는 퇴직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사건이 있었다.[5]이후에는 영화비평집도 여러 편 출간하고, 주로 영화감독 아오야마 신지, 아쿠타가와상 수상 소설가 아베 카즈시게 [6]와 함께 어울려 다니며 강연과 이벤트를 개최했다. [7]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향을 받아 미국 고전영화와 유럽 예술영화를 선호하는 취향이다. 나카하라는 여기에 더해 컬트영화에도 해박하여, 구로사와 기요시와 공동으로 공포영화에 대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감독은 아니지만 아오야마나 구로사와 기요시 등 하스미 라인 감독들과 친하기 때문에, 하스미 라인에 속하는 평론가로 꼽힌다.
5. 기타
- 2023년 뇌졸중[8] 진단을 받은 이후로는 건강이 많이 나빠져 대외 활동을 줄이고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원래 트위터도 자주 했지만, 진단받은 후 가족이 대신 올려주는 형식으로 뜸해진 편. 코멘트에 따르면 복귀를 위해 재활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 좋아하는 한국 영화로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를 꼽았으며, 윤키의 일본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 내에서 인지도는 낮은 편. 일본에서도 메이저라 할 수 없는 노선인데다 음악이나 문필 작업, 영화 모두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다.
[1]
훗날 소닉 유스에도 잠시 참여한
짐 오루크하고도 연이 닿았는지 오루크의 All Kinds of People: Love Burt Bacharach에 참여했다.
[2]
여담으로
앨범 커버가 워낙 샤방한 복고풍 일러스트였다 보니 낚였다가 후회한 케이스도 있었다고 한다.
[3]
폭력 온천 게이샤라는 이름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4]
INU 역시
롤링 스톤 재팬 선정 100대 명반 리스트에 올랐다.
[5]
훗날 밝히길 나카하라 본인은 사건의 당사자들과는 누구와도 친분 관계가 없고, 원고료를 줘서 글을 실었을 뿐이라고 한다.
[6]
아베도 동시대 작가로서 아오야마를 의식한다고 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7]
아테네 프랑스 문화원 등 일본
시네마테크 시네토크 단골 손님이기도 했다.
[8]
당뇨병 합병증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