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끌어당김의 법칙(The law of attraction)은 일부 자기개발서[1]나 자기개발 유튜버[2]들이 주로 주장하는 법칙이다.2. 상세
이 끌어당김의 법칙은 공통적으로 우주나 지구에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파장이란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하며,[3] 본인이 어떤 생각을 함에 따라서 그 에너지가 반드시 본인에게 찾아온다고 주장한다. 즉,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당기며,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를 끌어당김에 따라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논리다.또한 원하는 것을 끌어당길 때 바람이 들어있는 말을 하지 말고 현재완료형으로 말해야 하는 점도 특징이다.(예 - 돈을 많이 벌고 싶다.(×)→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잠재의식의 개방이라고 부르며 억지로라도 긍정의 말을 주장하여 이를 끌어들인다면 사람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3. 비판
겉보기에는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칙은 정의도 명확하지 않고, 반례도 무수히 많으며, 관련 인물들이 내놓는 주장들은 전부 현대 학문과 충돌한다. 실제로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는, 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들어본적도 없다고 한다. 또한 라디오 방송인 과학하고 앉아있네에서 사이비 시크릿 다큐멘터리인 what the bleep do we know[4]를 대차게 깐적이 있다. 또한 근거없는 낙관주의는 상황 변화에 별 도움이 안되거나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에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즉 단순하게 동기부여 정도만 하고 끝났다면 이 정도로 비판의 화살을 받지는 않았을테지만, 정말로 큰 문제는 인류 사회의 본질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특유의 해괴망측한 사고방식이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의 비판점인 것이다.[5]
3.1. 개연성 없는 정의
끌어당김의 법칙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언어의 정의부터가 엉망이란 점에 있다.[6] 원래 생각이란 건 뇌파로 측정되는 것인데 물리적으로 기록이 가능한 그래프에 긍정적이니, 부정적이니 하는 당위적 가치를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자연과학을 부정하는 것이다.[7] 애초에 생각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타인의 생각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말이다.[8]이러한 법칙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서적이 바로 론다 번이 집필한 더 시크릿과 바딤 젤란드의 리얼리티 트랜서핑,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학, 종교, 심리학, 철학 그 무엇도 전공하지 않았으면서 양자물리학이나 뇌과학 등을 무분별하게 인용한다는 점이다. 바딤 젤란드는 구소련에서 양자역학을 연구했다고 하나 그가 어느 대학에서 어떤 학위(학사, 석사, 박사 등)를 취득했고 어떤 연구기관에서 일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어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9] 한마디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3.2. 과학적인 근거 전무
더욱이 끌어당김의 법칙은 과학적인 근거나 학계에서의 연구가 전혀 없다.[10] 끌어당김의 법칙을 주장하는 자들은 양자역학을 엉뚱하게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물리학 전공자들이 보면 뒷목 잡을 내용들뿐이다. 즉 유사과학과 사이비 신비주의, 경제적 성공에의 열망이 만들어 낸 법칙이다. 대다수의 언중이 사용하는 '양자역학' 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정의를 왜곡시키는걸로 악명이 높다.그래도 일단 본인들은 그럴싸하게 설명을 하긴 하는데, 대부분이 양자역학의 원리를 오용한 설명에 지나지않는다. 대중이 이해하는 양자역학이라는 용어와, 자기개발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양자역학은 그냥 뜻자체가 완전히 다르다.[11] 이들이 주장하는 양자역학은 한마디로 '마음에 숨겨진 신비로운 힘'이라는 뉘앙스인 경우가 많다. 자기들이 왜 비판받는지 악을쓰고 무시한다는건 함정. 양자역학 문서에 유사과학적 오용이라는 설명이 자세히 기술되어있다.
자연철학의 측면에서는 현대과학을 통째로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맞는다면 인간은 문명을 진화시킬 이유도, 학문을 연구할 필요도 없다. 방법조차 끌어당기면 그만이니까.[12]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아직 불완전한 인간의 기술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 때문에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소나 대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은 개인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자신의 뇌 속의 영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규모 참사로 일어난 죽음 역시 그들 자신의 잠재의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잠재의식이라는 단어는 무의식과는 달리 정식적으로 학계에서 인정받는 단어조차도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잠재의식이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자신들도 모른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 고생할 필요도 없다. 그냥 생각으로 끌어당기면 되니까. 끌어당김의 법칙이 맞는다면 교육도 필요가 없다. 끌어당김의 법칙만을 최소한의 배경지식으로 누리과정(=유초등과정)에 배치하고, 공교육의 역할은 그냥 없는 것이다.
3.3. 노력 부정과 신비주의
더 시크릿 문서의 비판점에도 나오지만, 간절히 바라라고만 말할뿐이지 노력하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않는다.[13][14]이게 사회적으로 상당한 병폐를 일으키는 것이, 자신이 이미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실제로 노력을 하지않게 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동기부여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망상에 빠져서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할 힘을 갖고 있다고 광신에 가까울 정도로 믿는 경우가 많다.
변화된 마음가짐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때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음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15] 그러나 끌어당김의 법칙이 문제인 이유는 그 안에 영혼과 물질세계 간의 관계에 대한 근거 없는 신비주의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원효 스님의 해골물 일화에서 알 수 있듯 불교에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일수사견(一水四見) 사상이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세상만사는 그대로지만 그걸 마음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각자의 몫이리는 의미일 뿐이다.[16] 현실 자체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이런 사상이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을 달다고 여길지, 역겹다고 여길지는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진취적인 사상 또한 내포한다고 일각에서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썩은 물은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더러운 물을 먹은 대가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물을 마셨다면 물의 맛을 자평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다.[17] 마찬가지로 자신이 엄연히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스스로 돈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렇게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자의 대표적인 예시가 아Q로, 매 사 부정적인 일을 당함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하지만 이게 오히려 아Q 자신의 파멸을 불러온다. 부정적인 상황을 겪고 있음에도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꿈을 꾸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꿈을 거창하게 꾸면서 그 꿈에 대응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손가락질받고 도태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마음을 먹으면[18] 무슨 주파수가 나오거나[19] 영적인 작용 혹은 양자역학적 파장이 생겨서 자신과 세상을 신비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식의 신비주의가 절대 아니다.
3.4. 망상에 가까운 현실왜곡
인간이 뇌를 가진 동물인 이상 확증 편향의 늪에 빠지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때마다 현실과 뇌 내 생각의 조율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이 조율에 실패해서 현실에 맞게 자기 생각을 교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에 맞게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다.우주의 만물을 '의식이나 생각'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일 뿐이며, 이들은 반지성주의자들이 맞다.
또한 개인의 삶의 궤도에서 벌어지는 빛과 어둠을 모두 개인이 끌어안아야만 한다는 사고방식도 문제다. 불가항력이라는 표현은 괜히 선조들이 써온 게 아니다. 현실세계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항을, 아니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밥 먹듯이 일어난다. 이러한 인생의 절망적인 상황조차도 다 너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의지를 강조하는 의지드립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인류문명의 발전을 저해한다.[20]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복지학도들은 모두 바보들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불균등하게 사회에 퍼져있기 때문에 사회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현대의 복지국가가 생겨난 것인데 이들은 그런 개념조차도 없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정말로 자기개발을 넘어 부의 획득에 도움이 되었다면 각국의 정부가 앞장서서 복지학의 하위분야로 깊이 있게 연구했을 것이다. 당연히 교육학자들도 앞장서서 연구했을 것이다.[21]
3.5. 종교에서의 끌어당김의 법칙
불교나 기독교 등의 종교조차 양자물리학을 오용한 사례가 있어서 비판받았다. 당장 불교에서도 BTN이나 BBS 불교방송에서 양자물리학 교수가 등장하거나[22] 이에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는 방송이 있으며, 기독교나 천주교에서도 끌어당김의 법칙을 소재로 목사 신부, 수녀등이 집필한 책들이 돌아다니고 있다.종교에서의 끌어당김의 법칙에는 긍정적인 주파수의 영역에 믿음이나 깨달음 같은 것을 집어넣고, 부정적인 주파수의 영역에 의심이나 불신 등을 집어넣어서 그럴듯하게 법칙을 재조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역시도 100% 거짓말이라 보면 된다.
4. 기타
- 사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아니라, 과학의 물리학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 바로 인력(引力)이다. 또한 특정 제품의 실용성, 명품 브랜드에 대한 열망등, 우리가 기업, 단체, 특정 지역, 이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나, 집단의 매력을 설명하는 요소로서 사용될 수는 있다. 배우나 아이돌을 보고 마음이 이끌리게 되어 팬질을 하거나, 특정 TV시리즈나 영화, 음악 등 다방면으로 서로의 호감을 유발하면서 단순 밀기(Push)가 아닌 당기기(Pull) 전략을 사용하기는 한다.
- 인문•철학적 관점에서도 비판받는데, 플라톤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인류사의 위인들이 마음속에 품어왔던 게 오직 '부'였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부는 분명 행복의 중요한 변인이지만 전부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진지하게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학문에의 열정과 호기심,[23]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인데도 끌어당김의 법칙은 이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해괴망측한 논리를 펼친다. 이 모든 게 양자물리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헛소리는 덤이다.[24]
- 이런 끌어당김의 법칙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년층에 있다. 기본적으로 이를 비판하는 서적이나 인터넷 정보(예시 - 사망여우같은 유튜버나 유사과학 탐구영역같은 웹툰 등)를 검색하거나 찾는 젊은 층에 비하면 노년층은 이런것을 찾는 정보력 등이 비교적 떨어다보니 이런 사기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 때문에 젊은 층이 이거 거짓말이라 주장해도 전문자들이 직접 알아냈으니 신빙성이 높은데 왜 거짓말로 판단하느냐며 무시로 일관하기도 한다. 괜히 묻지마 관광에 쉽게 당하는게 아니다.
- 끌어당김의 법칙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책이 더시크릿인데, 개정판인 위대한 시크릿에서는, 모든 인류의 의식이 보이지않는 거대한 흐름에 놓여서 유기체처럼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는 뉘앙스의 서술이 많다. 굳이 물리적으로 그 '일명 에너지 파장' 이라고 강조하는 그것을 정의하자면 우주 배경복사가 있기는 하다. 우주배경복사 역시 우주 탄생이후 전 우주에서 관측 가능하며 오랜시간동안 존재조차 알려지지않았다가 우연히 관측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뇌속의 생각이 공기중의 우주배경복사를 타고 흘러가서(...) 전 세계의 현실을 미세하게 세부조정하는 식으로 끌어당김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 책이 바로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다. 참고로 트랜서핑은 초월을 뜻하는 트랜스와 파도를 타는 서핑의 합성어이다. 물론 이정도의 "만물이 이어져있다." 와 같은 전형적인 원자론은 더시크릿 등장 이전의 인류의 우주관과 별로 다를게 없다는게 가장 큰 함정이다.(...) 한마디로 무용한 긍정주의만을 설파했다는게 가장 큰 약점.
5. 관련 문서
- 더 시크릿
- 리얼리티 트랜서핑
- 사이비 과학
- 이지성 - 끌어당김의 법칙을 조목조목 비판한 《노 시크릿》(2008. 절판)을 출간했는데, 정작 본인이 대표작 《꿈꾸는 다락방》에서 주장한 'R=VD'도 결국 끌어당김의 법칙의 일종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25]
-
용찬우- 직간접적으로 끌어당김의 법칙을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본인의 주장이 빈약하며 또한 행동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어그로만 잔뜩 끌어오는 탓에 다른 의미로 끌어당김의 법칙을 실현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있다. - 하와이 대저택
[1]
더 시크릿이 가장 유명하다.
[2]
한국에서는 하와이 대저택이 가장 악명높다.
[3]
애초에 이러한 대전제를 반증불가능한 진리로 규정한 다음에 모든 논리를 전개하기때문에, 과학적으로 따지는게 별 의미가 없는경우가 많다.(...)
[4]
bleep은 삐소리 라는 뜻의 영단어로, 주로 욕을 검열할때 쓰인다. 이 맥락에서는 fuck을 대체한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번역은 "우리는 x발 x도 아는게 없단 말이야!!!" 라는 식의 불가지론이라고 보는게 맞다. 당연히 양자역학을 인문학적으로 오용한 엉터리 해석에 해당한다. 양자역학은 수식의 차원에서는 오류없이 기능하고 있으며, 그것이 인류가 이해할수 있는 단어로 치환되지 않을 뿐이다.
[5]
쉽게 말하자면 반지성주의인것이다. 조금이라도 논리적인 반박이 들어오면, 불가지론을 앞세워서 배째라 모드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6]
이부분이 가장 본질적인 오류를 만들어내는데, 양자역학이라는 미시과학을 뜻하는 단어를 마음의 초능력으로 치환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는 언어의 사회성을 어기는 오류에 해당한다. 양자역학의 양자라는 단어는 계단형의 정수배 그래프를 뜻하는 어원이기 때문이다. 저명한 양자물리학자들에게 끌어당김의 법칙을 아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게 뭐냐고 되묻는다. 애초에 과학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7]
물론 이 모든 긍정/부정의 가치판단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거라고 합리화하면 대충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즉 뇌에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단어는 부정적이고, 도파민을 유도하는 단어는 긍정적이라고 퉁쳐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조건적인 긍정주의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시뮬레이션해보는 게 불안 감소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스토아 학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양법인데, 스토아학파는 요동치는 정념을 잠재우고 이성을 논리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보았다.
[8]
그러나 끌어당김의 법칙 혹은 시크릿은,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만이 절대선이며, 돈을 나쁘게 바라보는 것 자체가 자기합리화이며 패배주의인 양 가르친다. 이는 인간의 가축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더 질적인 쾌락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던 존 스튜어트 밀의 질적 공리주의에도 위반된다.
[9]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과학자인 김상욱은 학석박 전부 물리학을 전공하였으며, 지금은 대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학벌의 권위가 절대적인 양 찬양해서도 안되겠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끌어당김 팔이보다는 정식으로 학석박 학위를 받은 교수를 믿을 것이다.
[10]
이 없다는 것은 임나일본부나 대륙백제설처럼 학계에서 무시당한다는 정도가 아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게 뭔지 존재를 모른다는것이다. 이에 끌어당김 팔이 유튜버들은 이 끌어당김의 법칙이야말로,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않는 변혁적인 정보라고 과하게 찬양을 한다. 학교교육이 인생에 쓸모가 없다는 반지성주의는 덤이다.
[11]
물론 의자를 시계라고 부르거나, 낙타를 곤충이라고 부르는 등, 자기마음대로 대상의 명칭을 바꿔부르는게 엄밀한 의미의 '범법'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사회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태는 사회에서 지탄받아 마땅한 악질적인 행위라는걸 이들은 이를 악물고 무시한다. 최악의 경우, 내면의 개념상이 붕괴하여 타인과 아무런 소통이 통하지않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12]
예를들어 끌어당김의 법칙이 사실이라면, 길거리에 있는 아무 돌이나 주워다가 "이 돌에서 빛이 난다"라고 하면 돌에서 빛이 나게 될 것이다. 그런게 가능했다면 애당초 '전구'나 '조명'같은 것이 발명되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13]
물론 끌어당김의 법칙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고, 노력하라는 말이 없다고 해서 노력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14]
재회주파수를 올려대는 유튜버들은 유일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재회 주파수는 단지 자신의 힘으로 돌아오지 않는 상대방의 마음을 메꿔주는 기능을 할 뿐이라 백날 들어봤자 노력하지 않으면 연인관계 성사는 불가하다고 당부하는 경우가 많다.
[15]
물론 약간의 회의주의적 서술을 덧붙이자면, 마음가짐이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는게 너무 늦었을경우, 이미 현실을 바꿀수없을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져버리는 경우 또한없다고는 할수없다.
[16]
또한 그렇기때문에 인류사의 이러한 위대한 사상들이 주체성과 카리스마로 의의를 갖는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슬픔에 가득차도 포기하지않고 몇번이나 다시 일어나 슬픔을 직시해야만, 기쁨도 비로소 영혼을 채우는것이다. 이러한 인문학적 고등종교조차 끌어당김 팔이들은 무분별하게 악용하는 중이다.
[17]
비슷한 이유로 해골물 설화 또한 실재한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18]
애초에 이들은 마음을 먹는다는 게 물리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도 조작적으로 정의하지 않는 애매어의 오류를 남발하고 있다. 마음을 먹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마음속으로 발음을 떠올린다는 말인가? 아니면 상을 생각한다는 말인가? 이들은 오리무중일 뿐이다. 한마디로 '유사과학'.
[19]
주파수를 측정하려면 기계로 측정하는 게 제일이다. 마음의 주파수라고 주장하니 뇌파를 측정하면 될 텐데, 뇌파가 육체는 움직일 수 있을지언정 현실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20]
대표적으로 현대의 사회복지 국가와 합리적인 행정부의 개혁을 가로막는다. 아무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니까.
[21]
지나치게 심취한자들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각국의 정부가 은폐하고 있다고도 믿는다. 이러한 신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책이 바로 그 악명높은 '시크릿' 이다.
[22]
김상욱 교수도 이점에서는 비판받을 수 있다. 불교가 주장하는 '공'의 사상과 원자 대부분이 빈공간이라는 유물론은 일절 상관이 없는데도, 대중이 오해하기 쉬운 강연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강의를 대중이 자기 입맛대로 곡해한 것까지도 김상욱 교수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23]
이 호기심이 바로 '사람' 과 '짐승' 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진리를 향한 끝없는 탐구정신이야말로 권장되어 마땅한 사고방식이기때문이다.
[24]
더 시크릿의 저자 중 한 명인 자칭 양자물리학자는 양자물리학에 근거했을 때 정신이 있어야 현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설파하지만, 현존하는 어떤 양자역학이론도 정신이 빅뱅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이들에게 페르미온이나 보손의 개념을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데꿀멍으로 일관한다.
[25]
시크릿 단행본에서는 비밀을 활용하는 두가지의 강력한(...) 도구로써 그림그리기와 감사하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즉 꿈꾸는 다락방에서 말하는 R=VD 자체가 시크릿의 일부라는것이다. 이점에서 꿈꾸는 다락방은 더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한데, 그나마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시크릿과는 달리, 감사하라는 말이 단 한마디도 없기때문이다. 애초에 작가인 이지성자체가 억하심정이 심하고, 아득바득 꿈을 이뤄온 사람인것과 무관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