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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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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MVP |
2005 KBO 퓨처스 남부리그 다승왕 |
해태/
KIA 타이거즈 등번호 6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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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경 (1998~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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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철 (2001~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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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2006~2009) |
KIA 타이거즈 등번호 48번 | ||||
이호신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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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철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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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남 (2009.4.20.~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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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철 | |
출생 | 1982년 5월 5일 ([age(1982-05-05)]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충암초 - 성남중 - 성남고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01년 2차 1라운드 (전체 6번, 해태) |
소속팀 | 해태- KIA 타이거즈 (2001~2008) |
병역 |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5.11.21.~2007.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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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성남고 시절. (출처 : 포토로) |
성남고 시절에는 당시 엄청난 우완 파이어볼러였다. 당시 최고투수 대구상고의 이정호와 200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맞대결에서 9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다.[1][2] 그 청룡기 대회에서는 무려 혼자 5승이나 따냈다. 새가슴류도 아닌 엄청난 유망주.
청룡기 당시 김주철의 투구성적이다.
구분 | 상대팀 | 스코어 | 김주철 투구성적 |
1회전 | 성인고 | 3-2 | 7 2/3이닝 5안타 2실점(선발승) |
2회전 | 대전고 | 10-3 | |
8강전 | 휘문고 | 8-3 | |
준결승전 | 공주고 | 9-1 | 6 2/3이닝 4안타 1실점(선발승) |
결승전 | 대구상고 | 8-1 | 9이닝 3안타 1실점(비자책)(완투승) |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도 국가대표로 참여했고, 당시에 같이 뛰었던 선수들은 추신수, 이대호, 정근우, 김태균, 이동현, 정상호 등 고교 무대를 내로라 하던 선수들. 물론 그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결승전에서 접전끝에 미국을 상대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성남고 시절 엄청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장래성에 의구심을 받아서 이동현(경기고, LG 지명) - 황규택(휘문고, 두산 지명)에 밀려 서울권 1차 지명을 받지 못했고, 2차 1라운드로 해태 타이거즈에 해태 역대 팀 내 고졸 최고액인 2억원[3]의 ‘귀한 몸’으로 입단하게 된다.
2.2. KIA 타이거즈 시절
프로에 입단한 김주철은 데뷔 첫 해 개막전 2차전 선발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과도한 부담감 때문인지 데뷔 첫 경기를 망쳤고, 결국 그렇게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첫 승리를 두 번째 경기인 4월 12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기록했으나[4] 그것이 시즌 유일한 승리였다.140 후반대를 가볍게 던진다는 포텐셜로 코칭스태프와 많은 타이거즈 팬들이 기대했으나, 성남고 시절과는 다르게 프로에 와서는 빠른 볼을 제구하지 못하는 새가슴을 보이면서 실패했다.
결국 2005 시즌 이후 1군 경기에 등판하지 못했고, 2008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면서[5] 선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3. 은퇴 후
기아에서 같이 뛰었던 김민철과 술집을 차렸다가 접었고, 현재는 사회인야구 지도와 유소년 야구 지도를 맡고 있다.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WHIP |
2001 | 해태- KIA | 13 | 33 | 1 | 5 | 0 | 0 | 8.73 | 45 | 11 | 24 | 18 | 2.00 |
2002 | KIA 타이거즈 | 12 | 18⅓ | 0 | 0 | 0 | 0 | 4.42 | 17 | 1 | 6 | 16 | 1.20 |
2003 | 3 | 4 | 0 | 0 | 0 | 0 | 6.75 | 7 | 1 | 0 | 3 | 1.75 | |
2004 | 10 | 20 | 1 | 1 | 0 | 0 | 6.30 | 25 | 5 | 18 | 11 | 2.05 | |
2005 | 3 | 5⅓ | 0 | 0 | 0 | 0 | 10.13 | 6 | 2 | 6 | 4 | 2.25 | |
2006 | 1군 기록 없음 | ||||||||||||
2007 | |||||||||||||
2008 | |||||||||||||
KBO 통산(5시즌) | 41 | 80⅔ | 2 | 6 | 0 | 0 | 7.14 | 100 | 20 | 54 | 52 | 1.84 |
5. 관련 문서
[1]
바로 전년도 대회에서 대구상고는
장준관과 이정호의 활약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대회 2연패를 대다수가 예상했다.
[2]
2000년 청룡기 우승 전
성남고의 마지막 우승은 1970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였다.
[3]
계약금 1억 8,000만 원, 연봉 2,000만원. 당시 해태가
1997년 외환 위기로 망해가서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기 직전이라 돈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정도 돈을 투자한 것으로 보아 엄청난 유망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같은 해 해태의 1차 지명을 받았던 투수
정원(7,000만원)보다도 두 배나 더 많은 계약금을 받았다. 사실 이렇게 된 것은 이 당시 광주, 전남 팜에 눈에 띄는 선수가 딱히 나오지 않았던 것도 있다. 2라운더 김경언은 1억원을 받았다. 김주철, 김경언에게
고려대에서 스카우팅 제의가 왔으나, 뿌리치고 입단했다고 한다.
[4]
2001년에 입단한 신인 중 가장 먼저 승리투수가 됐다.
[5]
이 해를 끝으로 김주철과 같은 해 입단을 한 1차 지명 출신
정원도
임의탈퇴 공시되며 2001년 1차 지명, 2차 1번 지명으로 입단한 선수 둘이 나란히 옷을 벗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