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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4년 6월 24일 |
황해도 은율군 이도면 | |
사망 | 1928년 4월 9일 (향년 33세) |
황해도 사리원시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
학력 |
경신학교 (졸업 / 7회) 숭실전문학교 (수료) 연희전문학교 (졸업 / 1회)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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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2. 생애
1894년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나 1912년 서울 경신학교를 7회로 졸업하고 숭실전문학교에서 1년간 수학하다가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졸업한다.이후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하여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할 때 학생대표로서 따로 독립선언을 하며 남대문 방면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3월 5일 아침, 남대문역 광장에서 시위가 다시 일어나자 대한독립만세라는 깃발을 들면서 학생 및 군중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무력을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쇄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였고 서대문형무소에 2년간 투옥되었다.
출소 후 잡지 《신생활》과 신문 《시대일보》 창간에 큰 공헌을 하고 언론인으로 근무를 하였으나 1928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향년 3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민족대표 48인으로 평가받으며 3.1 운동을 주도한 공훈을 바탕으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