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김석진 金碩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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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안동 김씨 |
출생 | 1928년 9월 |
충청남도
논산군 (現 충청남도 논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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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23년 2월 15일 (향년 94세)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분당제생병원 | |
학력 | 심상소학교 (졸업) |
직업 | 주역가, 한학자 |
호 | 대산(大山) |
약력 |
홍륜학교 한문 강사 양정학원 원장 홍역학회 회장, 상임고문 동방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동방문화진흥회 회장 |
가족 | 3남 김한성, 김한명, 김한기, 1녀 김한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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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주역가, 한학자.2. 생애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한학자인 조부 청하 김병철에게 한학[1]을 배운 뒤 19살 때 대둔산 석천암에 머물던 야산 이달(李達)을 찾아가 주역을 배우며 문하생이 되었다. 이후 13년 동안 이달에게 <주역> <서경> <시경>을 혹독하게 배웠으며, 공부를 하던 도중 굶주리고 소금 밥을 먹다 보니 몸은 비쩍 마르고, 39살 때는 피를 토하며 혼절해 폐병 3기 진단을 받고 죽을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이후 서양 학문이 들어와 서당이 폐쇄되다시피 하고 동양 학문의 설 자리가 거의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술사의 길로 빠지지 않고 독학으로 주역 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처자를 먹여 살리기는 해야 했기에 무허가 한약방을 차려 전전하였고 56세 때는 중병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때 서울에서 주역을 배우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왔고 몸이 아팠지만 평소 주역을 전하는 것이 소원이었기에 가르치다가 죽겠다는 심정으로 수락하였다. 그렇게 1985년 57살에 이르러서야 서울 함장사와 흥사단에서 주역을 본격적으로 강의하기 시작했고, 홍역학회를 이은 동방문화진흥회를 이끌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80대 후반까지도 전국을 누비며 주역 강의를 이어나갔고 30년 넘게 전국을 돌면서 주역을 가르친 제자만 무려 1만 명이 넘게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대전에서 거처하였으나 부인과 사별한 이후로는 2019년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큰아들 집으로 옮겨 지냈다. 또한 코로나 사태로 대면 강의를 쉬는 대신 한국홍역학연합회(후에 한국홍역학회로 개칭) 유튜브에서 ‘대산 주역 강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서울에 거처하게된 그는 서울에서 인문학 강좌를 열기도 했으며 90살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오전과 오후 30분씩 몽촌토성 일대를 빠르게 경쾌한 걸음으로 걷고는 했다.3. 사망
2023년 2월 15일(음력 1월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장지는 세종시 대전공원묘원이다.2024년 3월 3일 1주기 추모식이 한국홍역학회 주최로 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묘역에서 거행되었다.
4. 저서
- 대산 주역강의
- 주역전의대전역해
- 스승의 길 주역의 길
- 대산석과
- 주역과 세계
- 주역전의대전역해
- 새로 쓴 대산주역강의
- 대산 주역강해
- 미래를 여는 주역
- 대산 대학 강의
- 대산 중용 강의
- 易과 人
- 대산의 천부경
- 대산 천자문 강의
- 가정의례와 생활역학
- 명(名)과 호송(號頌)
- 대산주역점해
-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
- 주역으로 본 도덕경
- 한국의 전통예절
- 호송집
- 신인합발(神人合發)
- 천자문 강의
- 천부경 : 하늘 땅 사람 이야기
- 우리의 미래
- 대산 계몽 명심보감 강설 외 다수
[1]
천자문, 사자소학, 논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