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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5 10:49:32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제/등장인물


1. 역대 군주2. 공/왕족 전(田)씨3. 기타 이름있는 자4. 기타 이름없는 자

1. 역대 군주

2. 공/왕족 전(田)씨

3. 기타 이름있는 자

4. 기타 이름없는 자


[1] 본래 역사의 시호로 불리는 경향이 강했던 다른 극초기 군주들(위문후/위무후 모녀, 한경후, 조무후/조열후 2대, 노목공, 제강공 등)과는 달리 거의 유일하게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강제의 시조 강태공의 존재 때문. [2] 자식을 보는 것을 금지당했지만 인질로 잡혀온 노나라 공자와 교류할 정도로 감시가 느슨했다. [3] 사후 조카인 전인제는 추기의 "그 사람이 특정 대상을 진심으로 미워하는 것, 나는 본 적이 없으니까."라고 밝혔다.아, 눈물 좀 닦고 [4] 특히 송나라의 경우는 아예 속국으로 삼아버렸다. [5] 더군다나 다이스가 잘나오던 제나라가 전오 시절부터 꾸준히 고다이스 행진을 밟아서 얄미울 정도로 스레민들이 짜놓은 판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망쳐놓는지라 제나라와 전오를 덮어놓고 싫어하는 스레민들도 있었다. [6] 원 역사에서도 신의라 불리던 진월인을 믿지 못해서 사망했다. [7] 이를 두고 아들 전인제는 "빼앗은 사람은 병으로 고통스럽게 죽었는데, 정작 빼앗긴 사람은 천수를 누리고 편하게 죽었나."라고 평했다. [8] 사후 추기는 '현실은 착한 본성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에 제나라의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며 제나라 바깥의 사람에게 죽임당할지도 모르는 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추측했다. 전섬이 아이를 낳는 것을 금지한 것은 누군가가 전섬이 낳은 아이를 내세워 반역을 일으킨다면 결국 전섬까지 죽일 수밖에 없기에 그럴 가능성을 방지한 것이라고 해석했고. [9] 강제의 제환공 소백이 회맹을 열어 첫번째 패자로 공인받은 장소. 사실 맨 처음 회맹을 연 곳은 견(甄)이지만 천자에게 정식으로 인정받은 때는 규구 회맹. [10] 게다가 340년의 회맹에서 파나라가 회맹에는 주최자인 패자 외에도 인정자인 주나라의 사자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점을 지적하자, 추기가 '천자께서 패자에게 재량권을 부여했으니 개최자인 동시에 인정자이다'라고 수습은 했지만 막후에서는 '파나라를 초대하자던 놈이 누구냐'고 구체적으로 AA의 문자 6개가 깨지면서 분노했다. [11] 참고로 천자한테 종놈자식이라 욕한건 원역사에서도 그런걸로 추정된다(...) [12] 죽기 전에 추기의 유품이던 그 거문고를 켜려고 했지만 줄이 끊어지자 거문고를 같이 묻어달라고 하고 사람들을 물렸다. [13] 조선은 중원에서도 법가의 나라로 이름이 알려져 있어 조선 내 법가세력들의 공격으로 맹자를 깎아내려 그의 학파를 약체화시킬 의도였다. [14] 이것도 맹상군이 총대 매고 원래는 그냥 극현을 가져갈 생각이었던 것을 어떻게든 태산 장성 동부와 교환하는 것으로 완화한 것이다. 여러 이유로 정세 변화를 제하고도 조선 입장에서도 장성지대 절반보다는 극현의 가치가 컸다. [15] 다만 원 역사의 본인 재위 기간과는 너무나도 다른 처참한 현실 속에서 왕이 된 반대급부인지 재위 내내 본인과 국가의 역량을 과신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쏟아붓는 행보를 보였고, 결정적으로 끝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기 직전, 또는 이미 들고 일어난 상황 속에서 합종대전에서 잔존한 군사적 역량이 그 칼끝을 백성에게 향하게 하는 것만은 직접 막았다. [16] 굉장히 중요한 회맹이었지만, 전지가 기설에 대한 두려움으로 본인참석을 거부하고 대신 대부 왕촉을 상방에 임명하여 대리 참석시켜서 기설의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 [17] 이때문에 본래 제를 도와야할 초왕 웅횡도 긴가민가하여 제나라를 벌주는 의제에는 동의하였다. [18] 조선이 태자에게 무슨 수작을 부릴 지 염려하였던 전지가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멀리 떨어뜨려놓는 것도 겸해서 붙인 것이다. [19] 왕촉의 대책에 응하여 연종 각국들이 벌보다는 상에 시선을 맞추게 할 생각이였지만, 회맹 과정에서 원래 합동으로 의견을 내기로 했던 한나라와 위나라가 형세상의 이유로 도리어 제나라를 공격하면서부터 경험 부족이 겹쳐 침착함을 잃었다. [20] 조선제국의 군은, 열국의 공과 같은 지위이다. [21] 참고로 전투는 잘하지만 정보통제능력이 개판이라 사전에 새어나갔다(...) [22] 원역사에서부터 자기 아들인 맹상군이 문설주만큼 자라거든 자신을 죽이게 된다는 예언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결정적인 오판을 저지른 맹상군의 과를 포함해 모든 책임을 최대한 자신이 뒤집어써 정치생명을 스스로 끝내게 되어 실현되었다. [23] 아버지를 만난 순서는 오로지 상상 속의 영역이 되었다. [24] 언니인 전벽강과 전영과는 아버지인 전인제가 거의 죽기 직전에 얻은 늦둥이었던 탓에 촌수 상 본인의 아랫세대와 동갑내기 뻘의 나이차이가 있었고, 이 때문에 매우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 조선이 언니의 나라의 절반과 그에 비례한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 이전까지의 위상, 마지막으로 막내언니의 정치생명 등을 앗아가는 상황을 모두 눈 앞에서 보고만 있어야 했다. [25] 그 와중에 일어난 곡부 전투로, 이번에는 조선이 맏언니의 멘탈까지 날려버리는 상황에서 곁에 있어주지조차 못했다. [26] 작중 묘사상 정작 돌아왔을 때에는 그토록 보고 싶었을 언니들은 이미 천수를 다한 뒤였다. [27] 이제서야 동갑내기격이였던 조카들과 함께 거의 모든 것을 거는 노력 끝에 그 결실을 맺기 직전이었는데 너무 어처구니 없는 단 하나의 실수 때문에 모든 게 틀어져 여태까지의 축적된 실패가 기폭하기 직전의 도화선으로 화해버린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상처가 패여있었는데다 오랜 볼모 생활의 영향으로 조카들보다 국정 경험 및 국가에 대한 책임감 또한 부족했다. 결국 스스로가 그 심지에 옮겨붙을지도 모를 불꽃으로 입장이 변해버렸다. [28] 이 여파로 어머니 전영이 자신과 이모 전벽강에 돌아갈 책임 일부를 스스로 최대한 뒤집어쓰고 물러나 유폐되었다. [29] 선왕 전벽강의 죽음을 이유로 팔아가며 하남대전에 모인 합횡군에 참여하지 않고 결집시킨 영혼의 한타였다. [30] 심지어 상대는 삐걱대던 사이인 극신-진개의 지방군 콤비였다. [31] 이 지역은 후일 제나라 정규군 주축의 산적단을 후원하는 배후가 되었다. [32] 어차피 이 시점에서는 그의 실책이 가져온 결과들로 인해 사실만 퍼졌다간 역적과 종이 한장 차이까지로 그의 위상은 제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바닥이 될 판이었다. 그가 책정받은 능력치는 근거지에서의 수많은 식객들로 인한 특수한 보정이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은 셈이다. [33] 이러저러한 사정이 겹쳐 조선군 17만, 제군 15만에서 제군측의 총대장으로써 조옹을 상대하였다. 조선은 산동대전에서 공자의 입장이었기에 병력 또한 자연스럽게 가려 뽑은 것들이며, 수비측이 동일 규모였더라도 국력상의 부담 자체가 한 수 위인 상황이었다. [34] 무덤에 칼자루 모양의 돌이 있는데 그것이 광장의 보검이라 불리운다. 물론 실제론 아니고 장사치들이 무덤을 유명하게 만들어보려는 수작이었다. [35] 물론 전반의 최정예 부대였다. [36] 대초전선 [37] 원 역사 기준으로 전단은 제나라가 거와 즉묵만 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혜성같이 등장하면서 그 강역만큼은 확실히 원상복구시키는데 성공한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다른 결과. [38] 전기를 아예 생물체 취급조차 해주기 싫은지 '저거'라고 부르며, 전기와 밥을 먹느니 시체를 앞에 두고 밥을 먹겠다는 소리까지 했다. [39] 왜 '거의'냐면 진헌공 재위기에 진나라에 간 적이 있는데 마침 간만에 위나라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시기였는지라 진헌공 본인을 포함한 진나라 관료 전체가 축하 파티를 벌이고 있어서... [40] 전인제 본인의 성향도 있어 특유의 거친 태도 또한 대충 넘어간 편이기에 가능했다. [41] 말년에 장주와의 회담에서 자신이라는 옥을 사줄만한 사람들은 그 두사람뿐이었다고 답할정도로 존경하였다. [42] 대표적으로 맹자가 너무 이상적이다라며 비판하였다. [43] 그 전에 제왕 본인이 안된다면 차라리 태자를 보내 참석시키라는 조선 측의 통보 내지는 제안도 씹었다. 이것은 당시의 안건과도 겹쳐 태왕의 화를 머리끝까지 돋구게 된다. [44] 인덱스를 대리aa로 쓰는 모브 [45] 각각 송나라와 한나라로 공통적으로 무관의 부재에 시달리고 있어 나름 파격적인 조건을 주고 데려가려고 했었지만, 대기업 과장 -> 부장이 중소기업 임원보다 당연하게도 여러 모로 형편이 좋은 이치로 인하여(...) [46] 전단이 이를 이용해 고의적으로 염파를 깍아내려 염파가 분기로 전장의 판단력이 흐려지도록 의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