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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02:22:56

기욤 2세 드 에노

파일:기욤 2세 드 에노.png
성명 기욤 2세 드 에노
Guillaume II de Hainaut
생몰년도 1307년경 ~ 1345년 9월 26일
출생지 에노 백국 몽스
사망지 에노 백국 프리슬란트 워렌스
아버지 기욤 1세 드 에노
어머니 발루아의 잔
형제 장, 마르그리트, 필리파, 장, 아녜스, 이자벨, 루이
아내 잔 드 브라반트
자녀 기욤
직위 에노 백작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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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노 백국의 백작.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후 프랑스와 화해한 뒤 튜튼 기사단에 가담해 고대 프로이센을 향한 십자군을 수행했다. 그러나 프리슬란트 정복 전쟁에 착수했다가 워른스 전투에서 전사했다.

2. 생애

1307년경 에노 백국의 수도 몽스에서 에노 백작 기욤 1세 드 에노 발루아 백작 샤를의 딸이자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의 누이인 발루아의 잔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장[1], 마르그리트, 필리파, 아녜스[2], 잔[3], 이자벨[4]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예루살렘을 순례했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1337년 6월 7일 아버지가 사망한 뒤 에노 백작이 되었다. 아버지 기욤 1세는 죽기 직전에 사위인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를 위해 저지대 국가 내 반 프랑스 동맹을 조직했다.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프랑스의 가신인 입장에서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에 대적하길 꺼렸지만, 명목상 군주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가 잉글랜드를 도와 프랑스를 공격하라고 강력히 요구하자 결국 잉글랜드군에 합세했다. 1340년 투르네 공방전에 참여했고, 라 티에라슈의 오방통을 점령했으며, 마르시엔느를 약탈하고 거기에 있던 생아망드 수도원을 파괴했다.

이후 어머니 발루아의 잔의 중재로 프랑스와 잉글랜드간의 휴전 협약이 맺어지자, 프랑스 국왕과 화해한 뒤 1344년 1월 튜튼 기사단에 가담해 고대 프로이센으로의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 이후 돌아오는 길에 위트레흐트 주교 장 다르켈이 에노 백국의 지배에서 독립을 꾀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군대를 이끌고 위트레흐트를 포위해 굴복시켰다. 1345년 프리슬란트를 공략하기 위한 원정에 착수했지만 1345년 9월 26일 워렌스 전투에서 프리지아인들에게 참패해 목숨을 잃었다. 사후 프리지아의 블룸캠프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기욤 2세는 생전에 브라반트 공작 장 3세 드 브라반트의 딸 잔 드 브라반트와 결혼했고, 외아들 기욤을 낳았지만 유년기에 죽었다. 그래서 그가 사망했을 때 자녀가 없었고, 그의 누이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의 황후인 마르그리트가 에노 여백작이 되었다.


[1] ? ~ 1316, 요절 [2] ? ~ 1327 [3] 1315 ~ 1374, 율리히 백작 빌헬름 5세의 부인 [4] 1323 ~ 1361, 나무르 백작 장 1세의 아들인 로베르 드 나무르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