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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06:15:27

그레고리오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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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그레고리오 2.jpg
화려히 장식된 그레고리오 성가 악보
그레고리오 성가 소개
영어 Gregorian chant

1. 개요2. 역사
2.1. 성가와 그레고리오 1세2.2. 기존 성가
3. 음악적 특징
3.1. 선율 구성3.2. 선율 양식3.3. 리듬3.4. 교회 선법 사용
4. 부르는 방식5. 중요도
5.1. 전례에서의 위상5.2. 서양 음악사에서의 가치
6. 기타7. 여담

1. 개요

-그레고리오 성가로 봉헌되는 전통 라틴 미사

중세부터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던 단성 전례 음악. 오늘날의 가톨릭 교회에서도 아직까지 쓰이며, 모든 서양 음악의 기초라 할 만하다.

2. 역사

명칭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40년 출생 - 604년 선종)에서 유래하였다. 성가 3천 곡 이상이 전하는데, 당시 존재하던 다양한 성가들을 집대성해 정리한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 전에도 여러 지역에 비잔틴 성가, 암브로시오 성가, 모차라비아 성가 등 독자적인 성가들이 있었는데, 교회의 중앙 집권화를 위해 교황들은 당시 유럽의 전례음악들을 통합시키고자 성가를 수집, 통합하고 집대성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작업이 비로소 그레고리오 1세 때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도 성가 통합, 개혁작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2.1. 성가와 그레고리오 1세

그레고리오 성가는 위처럼 그레고리오 1세가 주도했다고 알려졌으나, 그레고리오 성가가 확립되는 과정은 로마가 아니라 프랑크 왕국이 주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카롤루스 왕조 치하에 영토를 대거 확장 중이었던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회를 밀어주고 종교적 지배력으로 영토를 다스리려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전례예식을 로마식으로 표준화하도록 하였다. 당시 교황이 제정하여 로마 교구를 중심으로 사용된 전례서인 『로마 예식서(ordo romanus)』를 프랑크 왕국에서 베끼는 과정에서 서문에 있는 '그레고리오가 성가를 작곡했다.'는 문구를 프랑크 학자들과 사제들이 그레고리오 1세로 착각하여 성가 전체에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1]

어쨌든 프랑크 왕국에서는 로마의 전례 예식이 점점 확대되고 성가들을 수정하고, 악보로 베끼는 과정을 수행하는 등 그레고리오 성가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하였지만 정작 로마 교회에서는 악보를 기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2.2. 기존 성가

3. 음악적 특징

그레고리오 성가는 반주 없는 단성음악(모노포니)으로, 합창단이 부르거나 독창자와 합창자가 교대로 불렀다. 선율은 제한된 음역안에서 되도록 순차진행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교회 선법 체계를 사용한다. 이 시기에는 흔히 '가사가 음악을 지배' 하였기 때문에 자유로운 리듬을 사용하였다. 단, 현존하는 성가들은 음 높이만 쓰고 시가는 나타나지 않는 네우마(neuma)라는 기보체계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리듬 해석은 지금까지 불분명한 게 많다.

3.1. 선율 구성

그레고리오 성가의 가장 오래된 선율 구성방식은 짜깁기라 불리는 것으로 짧은 모티브를 기본으로 비슷한 선율적 형태들로 음악을 진행하는 것이다. 특히 각 악구의 시작이나 끝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동일한 선법의 곡들에 같은 모티브가 사용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짜깁기 기법은 11세기부터 기보법이 발달함에 따라 쇠퇴했다.

3.2. 선율 양식

가사의 음절에 붙여지는 음표에 따라 단음적, 다음적, 과음적으로 분류한다. 단음적 선율은 가사의 각 음절에 한 음씩 붙이는 양식으로, 부속가나 같은 평신도들이 노래하는 음악에 사용하였고,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같은 긴 가사도 단음적 선율을 사용한다. 가사에 한 음절에 다른 음이 둘 또는 세 개가 붙으면 과음적이라고 하며 이것이 성가의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선율 양식이다. 또한 가사의 한 음절에 여러 음이 붙는 경우가 다음적선율이라고 하며 보통은 할렐루야에서 보이듯 찬미하는 가사에 사용되었다.

3.3. 리듬

12세기부터 악보로 리듬 보는 법이 발전하였다. 이전의 성가들이 어떤 리듬 형태였는가는 의견이 분분하다.

3.4. 교회 선법 사용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교회 선법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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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성가 통일정책은 성가를 체계적으로 분류할 필요가 생겨 9세기부터 교회선법을 발전시키기 시작하였다. 고대 그리스 선법의 이름을 불려 둘씩 결합하여 옥타브 유형을 갖추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선법은 완성되기까지 2세기가 더 걸렸는데, 성가 자체는 그리스가 아닌 레반트 지역과 동로마 제국의 성가에 기초하였기 때문이다. 이론 초기에는 그리스 선법보다는 비잔틴 선법을 고려하였다는 증거들도 있다.

4. 부르는 방식

두 그룹의 합창단이 교대로 부르는 경우는 교창식(antiphonal)이라고 하며 암브로시오가 처음 교회에 도입했다고 한다. 독창자가 앞서 노래하고 그 뒤를 합창단이 이어받는 경우를 응창식(responsorial)이라고 한다.

5. 중요도

5.1. 전례에서의 위상

노래는 똑같이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로마 전례에 고유한 그레고리오 성가가 첫자리를 차지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1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회의 전례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통하여 한층 더 거룩해질 수 있고,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5.2. 서양 음악사에서의 가치

대표적인 단선음악이자 그리스도교 신앙이 제1의 가치였던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다. 서양음악사를 공부한다면 그 시작점을 그레고리오 성가로 잡아도 크게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음악사적 가치가 매우 매우 막대하다. 특히 가톨릭 음악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는 팔레스트리나의 음악 이상으로 중요시되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 자체가 일종의 규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6. 기타

당시에는 악보 기보도 잘 되지 않아서 성가대원들은 성가 대부분을 외워서 불러야 했다. 악보가 있더라도 현대와는 형태가 많이 다른 네우마라는 표기법을 이용했다. 박자도 없고 (시대가 시대라) 남자만 부르는 음악이었다. 교황 실베스테르 1세는 교황청의 성가대원을 양성하기 위해 로마에 스콜라 칸토룸(scoola cantorum)이라는 교육기관을 창설하였고 이곳의 가수들은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였다.

7. 여담



[1] stanley sadie, Gregorius presul composuit junc libellum musicae artis,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2001) 중 'Gregorian Ch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