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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0년 4월 23일 |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면 부산리 | |
사망 | 1986년 4월 26일 (향년 66세) |
경상남도 거창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854호 |
가족 | 배우자 김옥인 |
서훈 |
대통령표창 수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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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1920년 4월 23일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면 부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불교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4년 1월 20일에 일본군 대구 24부대에 강제 징병되었다. 이때 대구 24부대에 모집된 600여명의 학병은 입대한지 10여일 후 3대대 3중대 소속의 27명만 남기고 중국으로 떠났다. 그는 27명 중 한 사람으로 김이현(金而鉉)·문한우(文漢雨)· 권혁조 등과 함께 탈출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먼저 탄약고 폭파 및 무기탈취와 독극물에 의한 일본군의 몰살, 그리고 집단 탈출 후 국외로 나가 독립투쟁의 대열에 참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하지만 이 계획은 실행하기에 어려웠기에 일단 집단탈출을 하기로 하고 1944년 8월 8일 동지들과 함께 하수구를 통하여 탈출에 성공한 뒤 대구 팔공산에 입산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탈출을 탐지한 일본 군경의 추격으로 인하여 그는 신녕 뒷산에서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3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4년 12월에 일군 임시군법회의에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대창(大倉)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 광복 직후 출옥했다. 이후 거창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6년 4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권태용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