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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21:08:31

궁재

1. 개요2. 역사3. 기타4. 관련 문서

1. 개요

궁재(宮宰)는 일반적으로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 시기의 중앙 관직 '마이오르 도무스(Maior domus)'에 대한 번역명이다. 궁재 외에 ' 집사', ' 청지기'로도 번역된다.

프랑스어로는 'Maire du palais'라고 불리며, 영어로는 'Mayor of the palace'라고 한다.[1]

아래에 서술하듯이 본래 왕의 비서였지 재상은 아니었다는 이유로 '집사장'으로 번역하려는 연구자도 있다. 다만 서구 봉건제 국가의 직책이 중국식 관료제에 1대1 대응이 되지는 않으므로 궁재나 재상도 틀린 번역은 아니다.

2. 역사

초창기엔 세금 징수, 성 관리 감독 같은 일을 맡는 평범한 직책이었으나[2], 어느샌가 업무가 늘기 시작하더니 메로빙거 왕조 후기에 가서는 중국의 상국처럼 그 권위와 권한이 매우 막강해진다. 초창기엔 유능하고 왕의 명령을 잘 따르는 이들[3]을 배치해 큰 효율을 발휘하기도 하였으나 봉건제와 초창기 게르만 왕조 특성상 직위가 세습되기 시작하더니 왕이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즉각 무력화시키고 제멋대로 나라를 다스릴 정도로 왕조차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실세가 되었다. 그리고 카롤루스 대제로 유명한 카롤링거 가문이 메로빙거를 무너뜨리고 독자 세력을 구축한 것도 궁재직 세습을 통한 수대에 걸친 왕국 장악이 컸다.

600년 이후부터, 대다수 궁재는 한 귀족 가문의 수장이었고, 왕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정치적 노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왕이 완전히 권력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고, 치열한 정쟁을 통해 기존의 권위를 되찾으려 노력했다. 에브로인(Ebroin), 그리모알트(Grimoald), 윌포알트(Wulfoald) 궁재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왕과의 정쟁에서 패배한 궁재들이 암살당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751년 카롤루스 왕조가 세워진 이후 궁재에 대한 더 이상 어떠한 기록도 남지 않아 사실상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3. 기타

얼음과 불의 노래 티렐 가문도 원래 가드너 가문의 궁재 가문이었으나 아에곤의 정복 당시 가드너 왕조가 대가 끊기자 대신 리치 대영주로 임명받았다.

4. 관련 문서



[1] 여기서 유래한 궁재를 의미하는 또다른 영단어가 Majordomo. [2] 오늘날로 치면 비서실장+국세청장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3] 오스만 제국 예니체리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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