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명칭은 대사계 진언밀교(大帥系真言密教) 광언종(光言宗)
1. 개요
데드 프린세스에 등장하는 가상의 일본 불교 종단으로, 작중인물 중 인간은 대다수가 여기 소속이다.[1] 광언종은 설정상 구카이(空海)대사[2]의 계보를 이은 진언종 계열 종단으로, '히노와 타이쥬(光輪太樹)'라는 승려가 창종했다고 한다.[3] 작중에서 광언종 역사가 1100년이라고 하므로 대략 서기 900년 무렵에 창종되었다는 설정인 듯. '광언종'이란 이름은 아무래도 광명진언(光明眞言)을 줄인 듯하다. 본산은 아이치현 야마(山磨)시에 있다.[4]2. 구성원
광언종 개조에게는 제자 10명이 있었는데, 제자의 후손들은 저마다 가문의 시조가 되어 광언종 내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개조의 제자들, 또는 그 후손 10개 가문을 작중에서는 위가십성(偉家十聖)이라고 부르는데 '위대한 가문의 10성인(聖人)'이란 뜻이다. 작중 광언종의 중요인사들은 대부분 위가십성 출신이다. 위가십성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카미우(神生)ㆍ시오(紫央)ㆍ타카미네(高峰)ㆍ아라가미(荒神)ㆍ츠치카도(土門)ㆍ아오이(葵)ㆍ아케마키(総角)ㆍ시루베(標)ㆍ쿠미야(宮宮)ㆍ호시무라(星村) |
광언종 교단은 시귀와 싸우고자 승병과 시희를 한 쌍으로 짝을 지어 일종의 전투부대를 만들었다. 대승정 아래에 권대승정을 비롯한 승정들을 지휘부가 되고 그 아래로 승병들이 존재한다. 물론 시귀와 싸우는 주력은 시희지만, 시희와 계약을 맺은 승려가 사망하면 시희는 힘을 상실하고야 만다. 그래서 승병들도 최소한 시귀로부터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더 나아가서는 시귀와 싸울 수 있도록 몇 가지 주술적인 무기를 사용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좌단(座壇)'이다. 승병들은 저마다 종자자 만다라에 결연관정을 행하여[5] 인연을 맺은 불보살에 따라 저마다 신통력을 부릴 수 있다.
신도 수 6백만 명에 달한다고 하지만....... 작중에서는 여러 가지로 삽질을 했다.
3. 행적
최정예부대를 편성해서 적진 한가운데 내던져 버리듯이 투입하는 짓을 저지르지만, 위가십성 출신이라는 이유로 '의 하나독자 입장에서는 전략상의 실책이라 볼 수 있지만, 광언종 입장에선 옳은 판단이었다.
'본산 밖에 진을 치고 있다가 적의 본진에 역관광을 당한다.' 이 부분에 대한 반박으로, 광언종 본산은 그들에겐 성지이자 일본 전국의 지맥을 관장하는 곳으로, 본산에 시귀가 들어오도록 놔둔다는 건 어불성설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화실을 만들어 본산의 결계를 쳐서 시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뒤, 계약승정도되는 인재들을 전국각지로 보낼 수 있었다.
또한 '대승정 중심으로 본산에 모여서 농성을 한다.'는 성립될 수가 없다. 먼저 대승정은 옥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교주 칼리가 본산결계가 깨지지 않은 상태에서 침입한 것을 고려한다면, 결계가 깨진 상황에서 옥실을 비우고 본산밖에서 적들과 싸울 수가 없으며, 대승정이 스가미 마엔과 대등하게나마 싸울 수 있었음은 옥실에서만 발동할 수 있는 성강 덕분이다.(물론 돌비 정도는 옥실 없이도 가능하지만, 카가세오에게 신통력을 부여하고 아음속에 달하는 유성우를 떨어트림은 진지가 펼쳐진 옥실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권대승정이 패배하고 본산의 승병들이 학살을 당하는데도 옥실에서 불존에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좁아터진 옥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마엔의 군단을 맞이했으면 물론 승률이 조금 더 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건 본산을 대신할 거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산에 침입하도록 내둘 수 없었다는 자존심 문제도 있었겠지만. 구문지회가 열리던 유서 깊은 회의실에 교주 칼리가 침입했단 이유만으로 폐기한다는 결정을 했다. 그런데 마엔과 교주들, 시귀 무리들을 전부 본산에 들여놓으면 본산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전략상 실책을 제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부정한 무리에 비해 전투력 평균치가 심하게 낮다. 아무래도 부정한 무리는 일반 총알받이도 시귀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수련을 해봤자 어차피 평범한 인간인 일반 승병들 여럿을 가볍게 압도한다. 결국 평범한 듣보잡 시귀조차 나름 정예병력인 계약승이 나서지 않으면 처치할 수 없는 꼴인 셈이다. 그렇다고 부정한 무리에 속한 잡시귀들의 숫자가 적냐 하면... 왕이 깨어난 이후로 폭발적으로 숫자가 늘어난 탓에 그런 것도 아니다. 물론 시희가 전반적으로 부정한 무리의 시귀보다 강력하긴 하다. 왕을 암살하기 위한 어령봉신 정예가 부정한 무리의 아집트에 침입할 때 보면 경비에 있던 칠성이나 교주 정도쯤 되는 시귀가 아닌 보통 시귀는 그냥 쓸려나간다.
부정한 무리의 왕조차 압도하는 최초의 시희 카가세오가 선보였지만,[6] 전쟁은 혼자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 최강을 보조해줄 만한 다른 실력자들이 없으니까.
사실상 대승정과 그 파트너인 최초의 시희, 카가세오가 단 둘이서 왕 & 교주 하나 & 부활한 왕의 군대의 시귀를 전부 와해시키다시피 하면서 거진 혼자 다해먹었다. 그 외의 전과는 시희 정예부대가 침입해서 도륙한 부정한 무리의 시귀들과, 초반 요격에서 권대승정과 승정과 그 시희가 도륙한 왕의 시귀부대의 선봉대 몇 쓰러뜨린 게 전부. 이뭐병(...)
전투 초반엔 잘 나가는 듯했다. 옥실로 밀람의 '희생의 비'를 멈추게 하여 '왕'을 소멸시키려 했으나 왕이 신에서 죽음, 아니, 죽음의 소용돌이 그 자체로 바꿔버린 뒤 15권에선 대승정이 사망한다.(만샹륜은 타카미네 승정에게 전달되어 권대승정에게 이동)
근데 이때 카가세오의 정체가 나왔다. "카가세오는 살아있는 좌단 그 자체. 그 육체의 절반은 법구로 이루어져 있지. 살은 신철 혈액의 절반은 수은."이란 대사와 함께 좌단을 개방하자 몸이 거의 반토막나있던 카가세오가 재생하고(!) 팔이 녹으면서 검의 형태를 취한다.
왕은 어찌어찌 격퇴했으나 광언종은 아예 작중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전멸했다고 표현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그럴 만한 게 지도자급 인물은 싸그리다 죽었으며 시희의 진실을 알고 배신하는 사람까지 나와서 남은 전력이라곤 호시무라 마키나와 몇몇밖에 없을 정도다.
본디 미륵 신앙을 기초로 말세를 지향하는 종단이다. 그 때문에 이들은 미륵을 섬기며 기다리는데, 56억 7천만 년은 인간에게 너무나 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세를 인위적으로 조장하면 미륵이 강림하리라 판단하여 말세를 유도하고자 시희를 만들었다. 시희를 비롯해서 위가십성 최고위층 소수를 제외한 모두에게 거대한 사기극을 친 셈이다.
작중에서 광언종 내부에는 크게 수법파(修法派)와 중생파(衆生派), 두 계파가 나온다. 작중 시점에서는 수법파가 선역으로 나오지만, 설정이나 이야기를 따져보면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선/악으로 나눌 수는 없다. 위가십성에서 처음 수법파가 나올 때에는 이름 그대로 수법(修法), 즉 밀교의 술법[7]에 매혹된 부류였다. 호시무라가가 과거에 칠성 호쿠토 실험을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고, 술법으로 미륵을 강세시키겠다는 염원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중생파는 중생(衆生), 즉 모든 생물을 생각한다는 대의에 따라 술법으로 미륵을 일찍 강림시키겠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근대 이후로 술법에 집중하는 수법파보다 조직관리에 충실한 중생파가 내부 정치싸움에서 우위에 서자, 수법파는 방향을 전환하여 시귀를 때려잡기 시작했다. 시귀를 쉽게 때려잡은 것도 수법파가 술법에 몰두했으므로, 너무나도 당연히 시법희교전에 대해서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수법파의 생각이 맞아들어서 호시무라 코하쿠가 미륵불로 강림하였으나 호시무라 코하쿠는 개개인의 구원을 부정하고 광언종의 교리 또한 부정하면서 광언종 대승정들을 몰살시켜버린다.
[1]
등장 캐릭터 중 승려로만 한정하면 전부 광언종 소속이거나 광언종이었다.
[2]
생몰년 774~835. 일본 밀교의 시조. 어릴 때부터 학문에 뛰어났다. 798년에 출가하여 승려가 됐으며 804년에 불교를 더 깊이 있게 배우고자
당나라로 건너갔다. 장안에 있는 청룡사(靑龍寺)에서 당시 당나라 밀교의 고승 혜과(惠果)를 만나 수제자가 되었다. 806년에 혜과로부터 관정을 받아 밀교승으로 인정받고 고국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후 고향
시코쿠 등을 돌며 사찰을 세우거나, 혹은 중창했으며 835년에 고야산에서 입적했다. 사후에 일본 조정으로부터 코보(弘法/홍법)대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서예의 달인으로서도 유명하여 일본에는 "코보대사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3]
원작 19권에서 딱 한 번 '히노와 타이쥬'라고 이름이 나오고, 그 외에는 몽땅 개조(開祖)라고만 썼다. 그래서 일본의 시희 관련 위키에서도 대부분 '개조'라고만 쓸 정도.
[4]
실제로는 아이치현에 '야마시'란 도시는 없다.
[5]
실제로 일본 진언종 교단에서 행하는 밀교 술법이다. 각 불보살을 상징하는 글자(종자자)를 모아 만든
만다라에 꽃잎을 던져, 꽃잎이 떨어진 종자자가 상징하는 불보살과 사람이 서로 인연이 맺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인연을 맺는다.'는 뜻으로 '결연'이란 말을 붙인 것이다.
[6]
다른 시희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서 성별도 남성형이다.
[7]
수법(修法)이란 단어가 정격 한문에서는 '법에 따라 행동한다' 또는 '법률을 준수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교용어로서는 가지기도 등 밀교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술법을 가리키고, 일본에서도 이런 의미로 통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