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5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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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 칠성산 871호 · 계루부 · 소노부 | ||
기타 | 해씨 고구려설 |
桂婁部
1. 개요
고구려 초기, 나라를 이끈 5부(五部)[1] 중 하나로, 비류나부(沸流那部), 연나부(椽那部), 관나부(貫那部), 환나부(桓那部)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9대 고국천왕이 지방 행정적인 방위명 부로 바꾼 뒤엔 중부(中部), 내부(內部), 황부(黃部)로 불렸다. 계루부의 핵심 영역은 국내성이 위치했던 지안(集安)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2. 상세
고구려의 창업군주이자 계루부 집단의 초대 수장으로 여겨지는 동명성왕이 부여 출신임을 고려할 때, '계루'는 동명성왕을 중심으로 고구려를 세운 부여계 집단의 명칭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여기서 더 나가면 《삼국지》 〈동이전〉 기록[2] 등에 의거해 소노부 출신인 제5대 모본왕이 시해되고, 계루부 출신인 제6대 태조대왕이 등극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것은 해씨 고구려설과도 연관되어 있는데, 해씨를 쓰는 제2대 유리명왕부터 제5대 모본왕까진 해씨이고, 그후의 왕인 제6대 태조대왕은 고씨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비정상적으로 긴 태조대왕의 생몰연도나 태조라는 명칭부터가 묘하긴 하다. 허나 왕계는 건국 시기부터 계루부가 가지고 있었으며, 해씨와 고씨의 차이는 그저 표기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 여러 데이터를 고려하는 학계에선 더 우세한 설이긴 하다.
계루부는 고구려 왕실의 부로, 고구려 초기의 5부 중 유일하게 《 삼국사기》나 중국측 사료에서 동일한 이름으로 나와 있다. 이는 계루부가 고구려 왕실의 부로서 그만큼 강력하고 중심적 역할을 하였기에 외국인에게도 정확히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