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進党 | 개진당 (かいしんと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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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명칭 | Reformist Party | |
한글 명칭 | 개진당 | |
창당일 | 1952년 2월 8일 | |
해산일 | 1954년 11월 24일 | |
전신 | 일본민주당, 국민민주당 | |
후신 | 일본민주당 | |
이념 | 보수주의, 중도주의, 개헌(재무장 지지) | |
스펙트럼 | 중도~ 우파 | |
총재 | 시게미쓰 마모루 (重光葵) | |
의 석 수 |
참의원 | 15석 / 250석 (17.0%) |
중의원 | 76석 / 466석 (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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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2년 구 일본민주당계 의원들이 요시다 시게루의 자유당에 반발해 세운 정당. 창당 직후 전직 외무대신이자 공직추방에서 해제된 시게미쓰 마모루를 초대 총재로 옹립했고, 창당 과정에서 중도주의, 협동주의를 모토로 걸고있던 미키 다케오의 국민민주당, 전전 입헌주의를 내세웠던 마츠무라 겐조의 신정 클럽을 합병했다. 그리고 당이 창당하며 국민민주당계인 미키 다케오는 개진당의 초대 간사장에 취임하였다.그러나 민주당에서 합류한 전직 내각총리대신 아시다 히토시는 개헌, 재무장론을 꾸준히 주장하며 전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를 총재로 세우자는 발언을 했고, 당 내 좌파인 미키 다케오 등은 이에 반발해 계파 갈등이 일어났다.
그리고 개진당은 1952년 제2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과반석 확보에 실패하는 패배를 당했다. 이 상황에서 시게미츠는 당내 좌파인 미키 다케오를 간사장에서 해임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미키는 이에 반발했지만, 1952년 6월 당 지도부가 시게미츠를 총재로 유지시키고, 미키를 간사장으로 유임시키는 안을 유지하며 타협을 맺었다.
1953년 제2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전 총선보다 12석을 더 잃으면서 참패했고, 이어진 참의원 선거에서도 부진한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개진당은 요시다 총리에 불만을 품고있던 하토야마 이치로 계열 인사들 (하토야마 자유당)을 끌어들여 보수 야당의 결속력을 다지고자 도모했고, 1954년 분당파 자유당과 개진당이 합당하여 일본민주당이 탄생. 개진당은 최종적으로 해산되었다.
2. 역대 선거 결과
2.1.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연도(회차) | 후보자 수 | 개선 의석 |
비개선 의석 |
총 의석 | ||||
지역구 | 전국구 | 합계 | 지방구 | 전국구 | 합계 | |||
1953(3회) | 불명 | 5 | 3 | 8 | 7 | 15 |
2.2.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의석 증감은 선거 공시 당일 의석 수와의 비교임.연도(회차) | 후보자 | 당선자 | 득표 | |
1952(25회) | 200 | 85[▲8] | 6,453,028 | 18.26% |
1953(26회) | 208 | 76 [▼12] | 6,186,232 | 17.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