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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9년 |
충청남도
아산군 신창면 읍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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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7년 |
충청남도 아산군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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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순화는 1889년생이며, 경상북도 아산군 신창면 읍내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4월 1일 오후 8시경 마을 주민 200명과 함께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이덕균(李悳均) 등과 함께 마을 사람들에게 신창면사무소와 주재소, 공립보통학교로 갈 것을 독려했으며, 공립보통학교 앞에서 박태화(朴秦和) 등과 함께 앞장서서 돌을 던지고 유리창을 부쉈다. 그러다가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2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하여 "나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따른 의사 표현으로 범죄가 아니다. 그러므로 유죄 판결은 부당하다."며 공소 및 상고했으나 모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자택에서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7년경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강순화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