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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5 08:11:18

강덕재

<colbgcolor=#0047a0> 출생 1920년 10월 16일
함경북도 김책시 학성군 학남면
사망 1994년 3월 31일
미국 시카고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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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덕재는 1920년 10월 16일 함경북도 김책시 학성군 학남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로 건너가 공장 직공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일본인들이 한인들을 차별대우하는 것을 보고 반감을 품었다. 이후 정칙학원중학교(正則學園中學校) 야간부에 다녔다.

그러던 1941년 봄, 강덕재는 동료 정명천(鄭明天)의 "일인이 한인을 경멸하는 것은 참으로 분통한 일이나. 이 문제의 해결은 조국 독립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으니 민족의식을 높이고 독립운동을 위해 궐기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한인 학우들과 함께 일진회(日進會)를 조직했다. 일진회는 한인 학생들에게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한국 독립이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민족교육을 실시하다가 1943년 8월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그 후 1944년 6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 직후 출옥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정착했다가 1994년 3월 31일에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항공편으로 국내로 봉환되었고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강덕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