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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15:47:37

강대순

파일:강대순.jpg
<colbgcolor=#0047a0> 출생 1892년 1월 16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사망 1944년 8월 23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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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대순은 1892년 1월 16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한휘(趙漢輝), 한종순, 이찬영(李讚榮), 조병흠(趙丙欽), 박건병(朴建秉)[1], 강기수(姜琪秀), 한관렬(韓灌烈) 등이 기획한 3월 19일 함안읍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전해듣고 적극 찬성했으며, 3월 19일 정오 함안읍내 봉성동에서 수백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그는 오후 2시에 3천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과 함께 경찰주재소로 나아갔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마산 경찰대가 무력을 행사하자, 시위 군중을 격분해 도끼, 몽둥이, 돌을 들고 주재소로 난입해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했다. 또한 한인으로서 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던 이들을 끌어내 독립선언서를 주고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했고, 그들이 이를 거부하자 구타했다. 이어 군중은 폐쇄해 놓은 군청 문을 부수고 청사 안으로 들어가 군수 민인호(閔麟鎬)를 붙잡아 제복과 모자를 벗기고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며 구타했으며, 등기소, 우편소, 일본인 소학교로 행진해 건물을 파괴했다. 그동안 일본군 수비대는 조한국(趙漢國), 강상중(姜相中)이 전화선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후 5시 40분경 전화가 불통되자 비상사태가 일어난 걸 알게 된 마산 중포병대대 병력 16명이 도착해 현지 경찰과 합세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군중을 진압했다. 이때 시위대를 이끌던 강대순도 체포되었으며, 그해 5월 19일 부산 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은거하다가 1944년 8월 2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강대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철원군의 독립운동가 박건병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