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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7:28:46

강기형(1868)

<colbgcolor=#0047a0> 출생 1868년 1월 25일
충청도 직산현 이동면 양대리
(現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
사망 1919년 이후(향년 51세 이상)
사망지 미상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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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 생애

1868년 1월 25일 충청도 직산현 이동면 양대리(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3.1 운동이 벌어질 때 광명학교(光明學校) 교사였다. 1919년 3월 20일, 그는 학생, 주민들을 이끌고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지도했다. 어전에 양대리에서 시작한 시위 행렬은 하장리 입장시장으로 향하다가 천안헌병대와 충돌해 남자 40명, 여자 10명이 체포되었다. 시위대는 입장시장에 이르러 700여 명으로 불어났고,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계속하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해산되었다. 이후 강기형은 체포되어 1919년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강기형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