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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15:30:02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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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寶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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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4.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보물 제3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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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感恩寺址 西 三層石塔 舍利莊嚴具. 1959년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의 감은사지 서쪽 석탑에서 발견된 7세기 후반 통일신라 시대 사리장엄구 일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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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2월 감은사지의 서삼층석탑을 해체, 수리하던 중 3층 사리공(舍利孔)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사리장엄구로, 유물의 제작연대는 7세기 후반이다. 1996년에 건너편 동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거의 비슷한 양식이지만 보존상태는 서석탑 쪽 유물이 더 나쁘다.

두 탑에서 발견된 사리갖춤은 나란히 조성된 탑 안에 모신 것이라 사리갖춤의 형식이나 구성 또한 매우 유사하다. 사리를 담은 수정 사리병, 전각(殿閣)처럼 생긴 사리기, 상자처럼 생긴 사리외함으로 나눌 수 있는데, 조각기법이나 세부묘사 등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다. 동탑에서 발견된 사리갖춤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왼쪽에 있는 전각 모양의 사리기를 오른쪽에 있는 상자 모양 장방형 사리외함 안에 넣어 중첩시켰다. 또한 수정 사리병은 사리기 중앙에 놓은 후 보주와 연판으로 장식된 복발(覆鉢) 모양 뚜껑을 덮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사리외함의 네 면에는 안에 넣은 사리기를 지키는 사천왕상 부조를 붙였다. 수미산의 사방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은 사천왕은 각 방위를 지키는데, 북방 다문천왕은 대부분 손에 탑을 든 형상으로 나오므로 사천왕 중 누구를 묘사했는지 파악하는 한 가지 기준점이 된다. 서탑과 동탑의 사리외함은 형태와 크기가 비슷하지만 사천왕의 모습과 자세, 주변 구름무늬 장식, 모서리의 문양 등에 차이가 있다. 갑옷을 입은 사천왕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조각 기법이나 사천왕의 자연스러운 자세 등을 볼 때 당시 신라의 금속공예 기술이 매우 우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리구는 수정제 사리병과 금동제 사리기, 금동제 사리 외함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러한 3중 구조는 통일신라 사리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사리외함의 네 면에 부착된 사천왕상은 사천왕사터의 채유사천왕상전과 함께 통일신라 초기 조각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품인데, 툭 불거져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과 위로 솟아오른 눈썹, 마치 독일 황제의 콧수염을 연상시키는 좌우로 벌려진 콧수염의 얼굴은 영락없이 서역인의 모습 그대로이다. 통일신라 초기 서역과의 활발한 문화 교류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예이다.

일반적으로 사리장엄구는 부처 사리를 봉안하는 물품이므로, 지극한 신앙심을 갖고 최상의 재료와 기법을 선택하여 만드는 공예품이다. 특히 감은사지 서삼층탑 출토품은 신라 왕실의 후원에 힘입어, 당시 최고의 장인이 참여하여 제작했을 것이다. 실제 현존 유물도 황금이나 수정과 같은 고가의 재료를 사용하여 우수한 세공기술로 완성하였다. 따라서 통일신라 왕실미술과 불교공예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사리구에 등장하는 존상의 이국적인 외모와 여러 특징에서 국제 교류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점도 의미가 크다.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366호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感恩寺址 西三層石塔 舍利莊嚴具)는 경상북도 월성군 감은사터에 있는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 가운데 서쪽에 있는 석탑을 해체·수리하면서 3층 탑신에서 발견된 사리장치이다.

사리를 모시기 위한 청동제사각함과 그 안에 있던 사리기로 구성되었다. 사리기를 넣었던 사리감은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발견 당시 몹시 부식된 상태였다.

사각형의 상자의 윗면은 완만한 원뿔모양의 뚜껑이 있는 형태로, 전체 높이가 약 31㎝정도 된다. 사리함의 네 옆면에는 각각 사천왕상이 1구씩 별도로 주조되어 부착되었고, 그 양 옆에는 각각 동그란 고리가 달려 있다. 주위는 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이는 모두 동판에 따로 새겨 작은 못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가장자리에는 꽃과 잎무늬로 가득 메운 가는 장식판을 이용해 단을 돌렸는데, 뚜껑의 둘레에도 마찬가지로 단을 돌렸다.

네 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은 그 자세나 옷의 무늬가 중국 당나라의 조각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국적인 얼굴과 갑옷 등의 표현에서 오히려 중앙 아시아적인 요소가 많이 확인된다.

청동으로 만든 내부의 사리기는 정사각형의 기단과 사리병을 모셔 둔 몸체, 그리고 수정으로 만들어진 보주의 3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마치 목조 건축물을 연상케 한다. 사리기의 기단과 몸체 부분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나, 그 윗부분인 기둥과 전개 부분은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식되었다.

사리기의 기단은 안상을 새기고 신장상을 배치하였으며, 기둥을 세운 형식이다. 기단의 맨 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중앙에 안치된 사리병을 중심으로 4구 주악상을 배치하였고, 그 사이마다 4개 동자상을 따로 끼워 놓은 구성이지만 완벽하게 남아있지는 않다. 사리병은 다리가 달린 화염보주형의 청동호 안에 안치되었다. 사리병의 뚜껑은 은제로 투조하였다. 사리함 내부에는 사리를 집을때 사용한 작은 숟가락 집게도 함께 발견되었다. 그 위에는 수정으로 만든 보주를 올려 놓았다.

감은사터의 사리장치는 오랜 세월에 많이 부식되어 원형 그대로는 아니지만 각 부분에 나타난 섬세하고 조각이 아름다운 중요한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