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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11:45:35

간축객서


1. 개요2. 특징3. 전문4. 해석5. 요약6. 의의

1. 개요

諫逐客書
진나라의 정치가 이사 축객령을 반대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현대중국에서는 고등학교 고전문학시간에 배우는 작품이다.

2. 특징

이사의 문장은 화려하면서도 경박하지 않고, 다채롭게 글을 꾸몄음에도 논리정연함은 물론, 문장의 짜임과 구성이 간결하고 조화로워 글의 목적인 설득에도 충실함과 동시에 아름다움까지 지녀 옛 중국 최고의 명문으로 꼽힌다.

또한 그의 주장에 따른 국가들의 번영이 역사적으로 수차례나 증명됨으로써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이 이러한 방식으로 국가를 운용하여 지속 발전을 꾀하고 있다.[1]

3. 전문

臣聞吏議逐客 竊以爲過矣。昔穆公求士 西取由余於戎 東得百里奚於宛 迎蹇叔於宋 來邳豹 公孫支於晉。此五子者 不產於秦 而穆公用之 並國二十 遂霸西戎。孝公用商鞅之法 移風易俗 民以殷盛 國以富強 百姓樂用 諸侯親服 獲楚 魏之師 舉地千里 至今治強。惠王用張儀之計 拔三川之地 西並巴 蜀 北收上郡 南取漢中 包九夷 制鄢 郢 東據成皋之險 割膏腴之壤 遂散六國之衆 使之西面事秦 功施到今。昭王得范雎 廢穰侯。逐華陽 強公室 杜私門 蠶食諸侯 使秦成帝業。此四君者 皆以客之功。由此觀之 客何負於秦哉!向使四君卻客而不內 疏士而不用 是使國無富利之實 而秦無強大之名也。今陛下致崑山之玉 有隨和之寶 垂明月之珠 服太阿之 劍 乘纖離之馬 建翠鳳之旗 樹靈鼉之鼓。此數寶者 秦不生一焉 而陛下說之 何也?必秦國之所生然後可 則是夜光之璧 不飾朝廷 犀象之器 不爲玩好 鄭 衛之女不充後宮 而駿良駃騠不實外廄 江南金錫不爲用 西蜀丹青不爲採。所以飾後宮 充下陳 娛心意 說耳目者 必出於秦然後可 則是宛珠之簪 傅璣之珥 阿縞之衣 錦繡之飾不進於前 而隨俗雅化 佳冶窈窕 趙女不立於側也。夫擊甕叩缶彈箏搏髀 而歌呼嗚嗚快耳者 真秦之聲也 鄭, 衛, 桑間, 韶, 虞, 武, 象 者 異國之樂也。今棄擊甕叩缶而就 鄭, 衛 退彈箏而取 昭, 虞 若是者何也?快意當前 適觀而已矣。今取人則不然。不問可否 不論曲直 非秦者去 爲客者逐。然則是所重者在乎色樂珠玉 而所輕者在乎人民也。此非所以跨海內 制諸侯之術也。臣聞地廣者粟多 國大者人衆 兵強則士勇。是以太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王者不卻衆庶 故能明其德。是以地無四方 民無異國 時充美 鬼神降福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今乃棄黔首以資敵國卻賓客以業諸 使天下之士退而不敢西向。裹足不入秦 此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夫物不產於秦 可寶者多 士不產於秦 而願忠者衆。今逐客以資敵國 損民以益讎 內自虛而 外樹怨於諸侯 求國無危 不可得也。

4. 해석

신이 듣기로 관리들이 객경[2]들을 내쫓기 위해 논의를 한다던데 생각해보면 이는 잘못된 일입니다. 옛날 목공께서는 인재를 구해 서쪽으로는 융에서 유여를 얻었고 동쪽으로는 완에서 백리해를 얻었으며, 송나라에서 건숙을 맞아 왔고 진[3]나라에서 비표 공손지가 왔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나라 출신이 아님에도 진 목공께서 그들을 등용하여 스무개의 나라를 합병하고 마침내 서융을 재패했습니다. 효공께서는 상앙의 변법을 채택해 풍속을 바꾸니 백성은 번성하고 나라는 부강해졌으며, 백성들은 부림당하는 것을 즐거이하고,  제후들은 친해지고 복종하며 초나라와 위나라의 군사를 사로잡아 점령한 땅이 천 리에 달하여 지금까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혜왕께서는 장의의 계책을 받아들여 삼천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 파촉을 합병하고 북쪽으로 상군을 거두고 남쪽으로 한중을 취하였으며, 아홉 오랑캐들을 포섭하여 언과 영을 제압하고 동쪽으로 성고의 험난함에 의지하여 좋은 땅을 떼어 받아 마침내 여섯 나라의 합종을 깨뜨려서 이들이 서면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하니 공적이 지금까지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소양왕 범수를 얻어 양후를 폐하고 화양군을 내쫓아 왕실을 강하게 하고 사사로운 가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았으며,  제후들을 잠식하여 진나라가 제업을 이루게 했습니다. 이 네(4) 군주는 모두 객경들의 공을 얻었습니다. 이런 일로 보건대 객경이 어찌 진나라에 부담이 되겠습니까! 만약 네 분의 군주가 객경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고, 선비들을 멀리 하고 중용하지 않았다면, 이는 부유한 나라를 만들거나 이익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였을 것이고, 진나라가 강대하다는 이름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옥[4] 화씨의 옥새를 가지고 명월 구슬[5]을 드리우고 태아를 차셨으며, 섬리말을 타시며 취봉의 깃발을 세우고 악어의 가죽으로 만든 북[6]까지 지녔습니다. 이 여러 보물들은 단 하나도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는 이를 좋아하시니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야 되는 것이어야 한다면 야광구슬로 조정을 꾸밀 수 없을 것이고 코뿔소의 뿔이나 상아로 만든 그릇들을 즐길 수 없으며, 정나라와 위나라의 미녀는 후궁에 채울 수 없고 결제[7]와 같은 뛰어난 말로 마구간을 채울 수 없으며, 강남의 주석도 사용할 수 없고, 서촉의 단청으로 채색할 수 없을 것입니다. 후궁을 꾸미고 진열해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기쁘게 하는 것도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면 완의 진주 비녀와 모난 구슬 귀고리, 아호의 옷과 촉의 장식 비단도 폐하의 앞에 바쳐지지 못하며, 풍속에 따라 우아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얌전한, 조나라 여자도 폐하 곁에 서지 못합니다. 무릇 물독을 치고 질그릇을 두드리며 [8]을 타고 넓적다리를 두드리면서 목청을 돋운 노래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진나라의 소리이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상간, 소, 우, 상, 무는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진나라 땅의 물독을 두드리고 질그릇을 치던 음악을 버리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탕하고 사치스러우며 듣기 좋은 음악을 가져다 쓰고, 진나라의 을 타는 것을 바라지 않고 소, 우를 취하는데,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외국의 음악이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사람을 쓰는데 있어서는 그렇지 아니합니다.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아니하고, 옳고 그름와 곧고 굽음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진나라 출신이 아니라면 제거하고 외국의 인사면 내쫓으려 합니다. 그렇다면 중히 여기는 것은 색과 음악과 주옥에 있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람들에 있는 것이니, 이는 천하를 지배하고 제후에 군림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신이 듣자하니 땅이 넓으면 생산되는 양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병졸이 용감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태산은 한 줌의 흙더미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으며 왕은 여러 무리를 버리지 아니하므로, 그의 덕행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땅을 동서남북으로 나누지 아니하고, 백성은 외국을 문제로 삼지 아니하고, 사시는 아름다운 것을 가득 채우고, 귀신은 복을 내리는데, 이것이 바로 다섯 제와 세 황[9]에게 적이 없는 까닭입니다. 지금 백성을 버리면 적국을 돕는 것이고 객경을 물리치면 제후들에게 종사할 것이며, 천하의 선비들을 물러나게 하면 감히 서쪽[진나라]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고, 발을 묶어서 진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바로 “외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는” 행동입니다.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 물건이라도 보배라 할 만한 것이 많고, 진나라 출신이 아닌 인재라도 충성하려는 자가 많습니다. 지금 객경을 축출하는 것은 적국을 돕는 것이고, 백성이 줄어들고 적국의 인구가 늘어나면, 안으로는 저절로 비게 되고 밖으로는 제후들의 원망을 사게 되어 나라를 구하고 위태로움을 없애려고 해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5. 요약

진나라 선대의 명군들께서는 모두 동방 육국 출신의 재상들을 기용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했습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들을 배척했다면 진나라가 지금처럼 강대해질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나라가 현재 즐거이 누리는 여러 보물들과 말, 기녀, 음악 등은 거의 모두가 외국에서 온 것들입니다. 진왕께서는 이렇듯 외국의 산물들은 마음을 즐겁게 한다며 기꺼이 가져다 쓰시면서 사람을 쓸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않고, 옳고 그름과 곧고 굽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진나라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쫓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나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색과 음악과 보물이고, 가볍게 여기는 것은 사람들이니, 이래서는 천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황하가 작은 지류의 물줄기들도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에 큰 강이 되었듯이, 왕은 여러 무리들을 버리지 않으므로 덕을 밝힙니다. 지금 외국 출신 신하들을 쫓아내는 것은 외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진나라의 산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보물이 많듯이, 진나라 출신이 아니더라도 진에 충성하는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기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국 적을 돕게 될 것이니 나라를 위태롭게 할 뿐입니다.

6. 의의

간축객서는 비단 진나라 뿐 아니라 춘추시대의 특징과 그 나라의 발전을 함축한 말이다. 이름이 남은 이 시대 인물들은 자신의 나라가 고국에서 쓰이지 못하면 쓰일 대까지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했고 특히 국가간의 멸망전이 시작된 전국시대, 특히 초기에는 이런 일이 활발했다. 그리고 이중에 가장 타국 인재를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던 나라가 진나라로 간축객서에서 언급이 안 되었지 장양왕을 왕으로 만든 킹메이커 여불위도 조나라 출신이다.

진나라와 육국의 차이점은 이 개방성 유지 정도에 있는데 진나라는 이 시기까지도 타국의 인재들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라서 이사만이 아니라 울료나 요가 같은 이들도 타국 출신들이다. 반면이 육국은 이런 인재들이 유출될 정도로 자국 내의 인적 자원도 제대로 못 써먹었고 이런 식이니 외국 인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 힘들었다.

문제는 이런 외국서 온 인재들이 재능이 없는게 아니라는 것. 물론 정도에 따라 다를 순 있겠지만 보통 남의 나라로 들어가 벼슬을 할 정도라면 기존 토착세력과 경쟁이 될 정도의 재능은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저들 중에서 이사가 언급한 이들은 물론 언급되지 않았지만 자기가 정착한 나라에 도움 준 인재들은 많다. 하지만 육국은 점점 이런 인재들을 잘 안 쓰게 되었고 결국 인재들은 진나라로 가거나 식객이 되어 세력가에게 빌붙는 지경에 이르렀다.
[1] 다만 진시황은 정작 천하통일 이후에는 감싸줘야 할 6국의 백성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차별했고, 이사 본인 또한 천하통일로 만인지하 일인지상의 지위에 오른 뒤에는 권력과 재물에 눈이 멀어 이런 행태를 묵인함으로써 본인의 죽음과 국가의 멸망을 자초했다. [2] 다른 나라 출신으로서 진나라의 관직에 종사하는 사람. [3] 晉,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과는 다르다. [4] 곤륜산에 위치한 우전(지금의 호탄خوتەن)에서 생산된 옥은 춘추시대부터 청나라 이전까지 일대의 옥 중 최상급이었다. [5] 명월 구슬은 춘추시대 수나라의 임금인 수후가 가지고 있던 진귀한 구슬이다. [6] 진나라 땅에는 악어가 살지 않는다. [7] 駃騠, 옛 중국의 마종으로 버새와는 다르다. [8] 금琴이나 슬瑟에 비해 소박한 현악기. [9] 참고로 시황제 이전에 황(皇)과 제(帝)는 개념이 분리되어 있었다. 자세한 것은 황제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