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LP : 1986년 4월 23일 발매[1]
CD : 1986년 5월 10일 발매[2]
야마시타 타츠로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 야마시타의 앨범들 중에서 BIG WAVE 이후의 앨범들은 그 주목도가 다소 덜한 편인데, 계약 문제인지, 야마시타 본인의 의사인지 BIG WAVE 앨범 이후로는, 리마스터링이나 리이슈가 된 앨범들이 없다.[3] 그래서 본 앨범과 더불어 僕の中の少年 앨범의 LP버전은 레코드 시장에서도 비교적 BIG WAVE 이전 앨범들에 비하면 매물들이 대체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앨범은 제작당시에는 아날로그 장비에서 디지털 장비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1980년대 중반의 레코딩 환경은 기존의 2인치 테이프를 사용하는 아날로그 24트랙 멀티트랙 레코더에서, 디지털 멀티채널 레코더를 사용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었다. 또, 시퀀서가 SMPTE타임코드에 의한 동기 아래, 미디컨트롤에 의해 폴리포닉한 자동연주가 가능하게끔 진화해, 실용음악 제작 현장에 두고 사용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야마시타 주변에 있어서도, DASH포맷의 24채널 디지털 멀티레코더인 SONY PCM-3324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레코딩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디지털 음원이 넓은 다이나믹레인지를 최대한 활용하는데 가장 중점을 뒀던 시절이어서, 그 결과 이른바 음압이 낮아, 힘빠진 사운드가 되어 버려서, 많은 뮤지션이, 기존의 아날로그 레코딩 사이의 위화감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또, 당시의 디지털 장비에 탑재된 아날로그<->디지털 컨버터의 성능이 구려서 링잉[4]이 발생함에 따라, 수록한 음이 저질 음으로 변질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 상황 속에서, 디지털 장비를 활용해서 크게 성공한 음악은, 딱딱한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힙합과, 디지털 신스와 샘플러의 사운드를 음상 내에 배치한 음악[5]이었지만, 어느 쪽도 거기까지 야마시타가 제작해온 음악과는 취향이 상당히 달라서, 야마시타 자신도 '힙합같이 아무리 디지털한 곡'을 만들면, 지금까지 해온 사람들에게 필적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야마시타 자신은 이때까지 음악제작 스타일이 전부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고, 한때는 디지털 장비로의 이행을 포기하고, 잠시 동안은 시장에 나돌 법한 아날로그 장비를 가능한한 사들여서 보존하는 것을 검토했다. 하지만, 음악시장이 전면적으로 디지털 전제의 시스템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단 점을 고려해 야마시타 본인도 시류를 거스르지 않고, 디지털 장비로의 이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속에서, 본 앨범은, 야마시타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서도 극히 실험적인 색체가 강한 물건으로서 제작되었다. 야마시타는 당시 '이건 시제품이다.' 라고 이야기했고, 디지털한 환경과 스스로의 음악 사이의 위화감에 대해, 야마시타는 후속작 僕の中の少年까지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된다.
또, 기용한 뮤지션이 커리어가 쌓여, 다른 뮤지션의 레코딩 라이브 투어 등에 캐스팅될 기회가 늘어서, 이제까지의 연습 스튜디오에 세션을 모아서 리듬패턴을 연습해, 레코딩 스튜디오에 가져가서 녹음하는 제작방법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도 방해요소가 되었다. 이 앨범 이후, 야마시타는 스스로의 연주와 때려박는 다중녹음을 음악제작의 중심으로 삼게 되었다.
또, 본 앨범은 당초 1985년 발매예정이었지만, 야마시타 자신의 제작환경으로서도, Roland의 MC-4[6]부터, NEC PC-8801+Roland MPU-401+Roland MIF-PC8+Roland MCP-PC8 / MRC-PC8의 시스템을 거쳐, PC 9801+커먼뮤직 RCP-PC98에 이르는 과도기를 거쳐, 막대한 시행착오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 앨범의 제작 이전에 사용된 PC-8801을 베이스로 한 시스템에서는 소리가 나는 타이밍에 관한 충분한 디테일을 얻을 수 없었고, 소리가 나는 타이밍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인해 생기는 인간적인 느낌을 재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발매를 연기하게 된다. 그 결과 앨범 릴리즈에 맞춰 예정되어 있던 콘서트 투어 'PERFORMANCE '85-'86'도 연기되어, 이듬해 투어 타이틀을 'PERFORMANCE '86'으로 개칭하여 86년 5월에 개최하였다.
2. 수록곡
2.1. SIDE A
-
1. 土曜日の恋人
작사 : 야마시타 타츠로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야마시타 본인에 의하면, 곡의 모티브는 82년쯤부터 가지고 있던, 60년대의 스너프 가렛이 프로듀싱한 바비 비와 게리 루이스의 곡과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만든 곡이지만, 80년대의 디지털 미디어 속에서는 이미 시대를 역행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고, 여러가지 의미로 완성되기까지 시간도 걸리고 손이 여러번 갔다고 한다. 완성된 후, 후지테레비 프로인 '우리들은 익살족(효킨족)'에 엔딩 테마곡으로 사용되어[7] 본 앨범의 선행 싱글로 발매되었다.
-
2. ポケット・ミュージック
작사 : 야마시타 타츠로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포켓 뮤직이란 앨범 타이틀이 먼저 결정되어서, 그 타이틀로 뭔가 한곡 만들어보자고 85년 5월쯤에 작사 작곡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당초에는 드럼머신을 사용한 소위 '동기화'로 완성시키려 했었기 때문에, 스네어 드랍이 안들어간 변칙적인 드럼머신이 되었다. 야마시타 자신이 작사, 작곡, 편곡, 연주를 통틀어 매우 좋아하는 작품으로, 특히 뉴욕에서 녹음한 존 훠디스의 플뤼겔호른 솔로연주를 특히 마음에 들어한다고 한다. 본작 발매 당시 1986년 콘서트 투어 이후, 공연된 적은 없었지만, 2014년 콘서트 투어 'Maniac Tour ?PERFORMANCE 2014?'에서 28년만에 셋리스트에 추가되었다.
-
3. MERMAID
작사 : ALAN O'DAY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싱글 '토요일의 연인'의 커플링 곡[8] 으로 발매되었다. 야마시타 본인에 의하면, 곡 자체는 79년에 만들어졌지만, 베이스의 패턴에 약간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몇번 시도해봤지만 생각한 만큼 느낌이 나질 않아서, 85년에 컴퓨터를 사용해 겨우 완성했다고 한다. 앨범수록 당시에는 약간 리믹스가 가해졌는데, 당초 앨범에는 자신에 의한 일본어 가사로 수록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사를 써보긴 했지만. 가사의 내용이 후렴의 MERMAID와 맞질 않아서 결국엔 앨런 오데이에 의한 영어가사 버전인 채로 수록되기에 이르렀다.
-
4. 十字路
작사 : 야마시타 타츠로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당초, 도중에 듀엣으로 이뤄지는 4소절을 오오누키 타에코에게 부르게 하려고 했었지만, 스케쥴이 맞지 않아서 결국 아내인 타케우치 마리야가 맡게 되었다.
-
5. メロディー、君の為に
작사 : 야마시타 타츠로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곡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져, 녹음된 곡이다. 영화 'タンポポ(민들레)'의 주제가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요청이 크랭크 업 직전에 들어와서 시간이 딜레이되는 바람에, 결국 영화에 사용되지 않았다. 야마시타 자신에게 있어서, 곡 자체는 비교적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에, 가사만 아예 바꿔서 앨범에 수록했다.
2.2. SIDE B
-
1. THE WAR SONG
작사 : 야마시타 타츠로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당시 수상, 나카소네 야스히로에 의한 '불침공모' 발언[9]을 계기로 만들어진 곡. 뒷부분 블록코드를 연주하고 있는 건 세팅된 신스이지만, 이걸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접근시킬 목적으로 일렉기타 연주가 다중으로 녹음되어 있다.
-
2. シャンプー
작사 : 강진화[10]/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본래는 앤 루이스의 79년 앨범 'PINK PUSSYCAT'을 프로듀싱할 적에 써서 수록되었던 곡이며, 그것을 셀프커버했다. 처음부터 자신의 연주를 집어넣는 것으로 시뮬레이팅하는 것을 목표로 레코딩되었다. 후에 야마시타는 '지금 들으면 데이터 입력 등 조잡한 부분들도 있지만, 당시로서는 이것이 한계였다.'고 한다.
-
3. ムーンライト
작사 : 야마시타 타츠로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앨범의 레코딩을 시작한 단계에서는 아직 8비트 컴퓨터용 소프트밖에 없어서 그 디테일이 야마시타 본인이 요구하는 단계까지 쫓아올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완성까지는 약 1달 가까이 걸려서, 다른 패턴으로 7번이나 레코딩을 다시 했다고 한다.
-
4. LADY BLUE
작사 : ALAN O'DAY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이 곡은 가스펠 느낌의 대편성 코러스가 딱이라고 생각해, 뉴욕에서 녹음했지만, 코디네이터가 일처리를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스튜디오에 온 건 흔한 3인조 코러스 팀이었다. 코러스가 약해서 도쿄로 돌아와 혼자서 다중 코러스를 녹음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쪽이 야마시타 타츠로다운 작업방식이었다고 한다.
-
5. 風の回廊(コリドー)
작사 : 야마시타 타츠로 / 작곡 : 야마시타 타츠로
혼다 인테그라의 CM송으로 제작되었다. 야마시타 본인에 의하면, 이 곡으로 그려지는 '지나간 사랑속의 현실도 환상도 아닌 여성상'은 자신의 가사의 중요한 테마들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이 곡은 야마시타에게 있어 처음으로 디지털 레코딩을 진행한 곡이어서, 당시에는 처음으로 컴퓨터 뮤직을 도입한, 레코드 제작상의 일대 분기점이었다고 한다. CM버전은 악기편성과 보컬이 각자 조금씩 달라서, 믹싱도 다르다. 그 후 풀사이즈로 만들기 위해 악기를 더 채우는 작업을 하는 동안에 스케쥴이 지연된 결과, 엔지니어 요시다 타모츠[11]가 다음 스케쥴로 하와이로 가버리는 바람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 믹싱을 진행했다고 한다. 엔지니어라는 직업에 대해 이상하게 프로페셔널한 것이라는 직업적 리스펙이 있어서, 아무리 이런저런 요구는 해도 기본적으로 그 영역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야마시타에게 있어서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단 한번뿐인 엔지니어 경험이었다고 한다.
3. 기타
초판 발매 당시에는 첫 디지털 레코딩 작업이어서 트랙다운 등이 야마시타 본인에게 있어서는 심하게 불만이었던 탓에, 본인 감수하에 요시다 타모츠에 의한 리믹스가[12] 진행되어 보너스 트랙으로 'MY BABY QUEEN'을 추가한 뉴 리믹스반이 91년에 재발매되었다.
[1]
이후 2020년 11월 25일에 僕の中の少年앨범과 함께 리마스터링 하여 180g 중량반 2LP 사양으로 재발매되었다.
[2]
이후 1999년에 재발매되었으며, 2020년 11월 25일에 僕の中の少年앨범과 함께 리마스터링 하여 재발매되었다.
[3]
일설에 따르면, 야마시타 본인이 아무리 해도 그 때 그 시절의 사운드가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다는 이유로 여러 번 재판 제의가 들어왔지만, 번번이 거절했다고 한다.
[4]
원래 파형에는 없는 고주파
[5]
당시의 야마시타는 그 예로서 스크리티 폴리티의 이름을 자주 거론했다.
[6]
'風の回廊'의 시퀀스는 당초 이걸로 진행하고 있었다.
[7]
85년과 86년 사이에 사용되었다. 그 이전에도 야마시타의 곡인 パレ?ド도 83년에 사용된 바 있다.
[8]
7인치 도넛판으로 발매되는 싱글의 B면에 수록된 곡.
[9]
워싱턴 포스트의 외교기자 도널드 오버도퍼에 의하면 83년 1월에 워싱턴 포스트 회장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 자택에서 진행된 아침 식사자리에서, 오버도퍼의 질문에 대해 나카소네 수상이, '일본 방위의 컨셉들 중에는 해협과 해상교통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본열도의 상공을 커버해 소련의 백파이어 폭격기의 침입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백파이어의 성능은 강력하고, 만약 이것이 유사시에 일본열도와 태평양 상공에서 세력을 발휘한다면 일본과 미국의 방위협력체제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일 유사시에는 일본 열도를 적 항공기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게끔 주변에 높은 벽을 친 선박처럼 만든다.'고 대답을 한 것을 통역사가 'Unsinkable Aircraft Carrier' 즉, '불침공모'라고 의역했다. 훗날 오버도퍼가 나카소네의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녹음테이프를 다시 확인했지만, '불침공모'라는 단어는 없었다. 사용한 말은 '커다란 배'였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본의 외무성이 공개한 외교문서에는 1983년의 인터뷰에서 나카소네가 확실히 일본 열도에 대해서 '불침공모처럼 강력히 방위한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다.
[10]
재일교포 2세 작사가. 참고로 이 곡이 데뷔작이며, 주로 작곡가 하야시 테츠지와 작사작곡 콤비로 다수의 히트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森田 記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는듯.
[11]
吉田 保. 야마시타 타츠로의 앨범에 상당히 오랫동안 참여한 사운드 엔지니어이며, 야마시타 타츠로의 커리어 초반에 작사 겸 코러스로 상당부분 참여한
요시다 미나코의 오빠이기도 하다.
[12]
사실 말이 리믹스지, 곡의 템포를 조금 조절한다거나 곡의 길이조절이나, 세션이 한두개 추가되거나 빠지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