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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5 17:39:57

PL학원고등학교

PL가쿠엔고등학교에서 넘어옴


1. 개요2. 야구부3. 여담4. 동문

1. 개요

PL学園高等学校

일본의 종교 교단인 퍼펙트 리버티(Perfect Liberrty)에서 설립한 고등학교로 오사카부 톤다바야시시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옆에 같은 재단내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 및 중학교도 있다. 킨테츠 나가노선 키시역에서 내려서 갈 수 있다.

2. 야구부

정식명칭은 PL학원 고등학교 경식 야구부(PL学園高等学校 硬式野球部).

이 학교 재단측에서 스포츠 동아리를 전폭 지원하기에 전통의 스포츠 강호교로 유명한데, 특히 야구부가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1956년에 만들어져 역사가 50년이 넘은곳으로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본선 진출 및 우승을 여러번 기록한 일본 고교야구 초명문. 통산 성적은 봄 대회 본선진출 20회 & 우승 3회(1981, 1982, 1987) / 여름대회 본선진출 17회 출전 & 우승 4회(1978, 1983, 1985, 1987). 프로선수 혹은 유명한 야구 지도자도 여럿 배출했는데, 키요하라 카즈히로, 타츠나미 카즈요시 등 수많은 스타들과 미국 내 학교에서도 2명 이상 배출하기 어렵다는 메이저리거를 쿠와타 마스미, 마츠이 카즈오, 후쿠도메 코스케, 마에다 켄타 4명이나 배출했으며 1977년~2001년까지 25년 연속으로 프로 선수를 배출한 진기록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수한 성적과는 달리 안좋은 사건으로 불명예스러운 유명세를 탄 야구부이기도 하다. 선배들이 똥군기를 부리며 후배들을 폭행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 공식전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도 여러번 받았고, 고교생 신분으로 담배를 피다 걸리는 등 부원들의 일탈행위가 걸려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전국적인 망신도 샀다. 결국 00년대 후반 부터 재발방지를 위해 재단은 야구부 운영방침을 야구실력 우선에서 학업 및 인성교육과의 병행으로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고가 발생했고, 2013년에 2학년생의 1학년생에 대한 폭행으로 6개월 출전정지 처분과 함께 감독이 사퇴하는 상황까지 닥치는 바람에 제대로 된 감독도 선임하지 못한 채 교장이 임시 감독을 맡고 선수들의 분투로 지역예선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그야말로 야구 만화에 나오는 시골학교 야구부스러운 상황을 연출했다. 결국 2015년부터 신입 부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 2016년 7월 15일 고시엔 오사카 대회 출장을 마지막으로 모든 부원이 은퇴하며 잠정 휴부 상태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7년엔 오사카 고교야구연맹을 탈퇴했다.[1]

그나마 남아있던 연식 야구부마저도 2024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휴부. #

현재까지 PL학원 야구부 출신으로 마지막으로 프로에 진출한 선수는 토요대학을 졸업한 뒤 2018년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버팔로즈에 지명된 나카가와 케이타이다.[2][3]

3. 여담

4. 동문

야구부 외에도 다른 스포츠부도 엄청 유명하여 PL출신 유명 운동선수들이 정말로 많다.

[1] 야구부원들의 행실이 문제라면 얼마든지 개선할 방법이 있을텐데, 야구부 존속을 바라는 내외부의 간청에도 아랑곳 없이 야구부가 해체되는 모습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교단의 태도 때문에 야구부가 일으킨 각종 사건사고는 야구부를 해체하기 위한 구실이고 사실은 교단 내부의 정치적 다툼에 야구부가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2] 나카가와 본인은 스스로를 최후의 PL 출신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자신이 프로 생활을 청산했을때 PL 학원 야구부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면 모교의 감독을 하고싶다는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3] 나카가와 케이타가 PL학원고교의 마지막 야구부원은 아니다. 현재 독립 리그 니가타의 굴라쟈니 네이선(1997년생이며 인도 혼혈이라 이름이 외국인스럽다.)처럼 NPB를 목표로 하는 나카가와의 후배 기수들이 아직 있다. 일본 위키를 찾아보면 1998년생들이 최후의 PL 야구부 기수라는 듯. [4] 정작 해당 경기는 PL학원이 졌다(...). PL학원은 징계를 먹어서 2년간 대외 경기 참여가 금지당했기 때문에 니시오카 츠요시가 진학한 토인고교와의 맞대결이 많지는 않았지만 니시오카가 재학하던 시절에는 전패를 당했다. [5] 여기 해당하는 프로야구 선수 중에 스타플레이어는 이마에 토시아키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 코사이 유스케, 사쿠라이 코다이, 아사이 유스케가 1군 물을 좀 먹어봤으나 만년백업 혹은 1-2년 플루크로 잘 한게 끝이었으니 그때 니시오카를 비웃었던 PL학원 선수들 중 니시오카만큼 성공했다고 비벼볼 만한 선수조차도 이마에 한 명 뿐이다. 그나마도 니시오카랑 다르게 메이저는 꿈도 꾸지 못했고.(대신 누적성적은 통산 1600안타와 100홈런을 기록한 이마에가 확실히 낫다. 니시오카는 메이저를 합쳐도 1200안타를 겨우 넘겼으니) [6] 이마에 토시아키, 마쓰이 카즈오, 타츠나미 카즈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