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Milthm/스토리
1. 파트 1
감상 조건 | 몰입도 20.00% |
눈을 뜨기도 전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눈을 깜박였고, 시야는 조금 흐릿했고, 방은 조금 어두웠으며, 아침 햇빛도 예전과 다르게 커튼 틈새로 슬며시 들어오지 않았다. "비가 오나...?" 조용하고 소박하며 고요한 백색소음이 그녀에게 가장 편한 환경인데, 오늘은 유난히 평화롭고, 온도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한 것 같다. 완전한 정적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오버사이즈 티셔츠가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맨발이 바닥에 닿으니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발로 슬리퍼를 찾아봤더니 모두 침대 밑에 붙어 있는걸 보고, 자기 전에 슬리퍼를 정리해뒀는지, 아니면 침대 밑의 엘프가 몰래 장난을 친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솜이 발을 감싸줬고, 따뜻한 느낌이 발바닥부터 서서히 위로 퍼졌다. 소녀는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로 갔다. 거울에 비치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자고 일어난 탓에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는 하품을 하며 머리를 빗기 위해 빗을 들었다. 빗이 머리카락에 닿자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지자 소녀는 떨어진 머리카락 몇 가닥을 집어 들고 한숨을 쉬었다. 머리카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수도꼭지를 뜨거운쪽으로 틀었다. "아... 머리가 또 빠졌어." 소녀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최근 그녀의 수면의 질이 안좋아서 그럴 수 있다. 머리를 다듬고,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다듬은 뒤, 소녀는 "노트?" 라고 외친다. 대답이 없다. "노트...?" 여전히 대답이 없다. 평소 같았다면 노트는 그녀에게 달려와서 백허그를 하며 유쾌하게 아침 인사를 했을 것이다. 오늘의 유일한 반응은 빗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소녀는 약간 혼란스럽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와서 노트의 침실로 걸어갔다. 그녀는 문을 열었지만 비어있었다. 침실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했다. 그녀는 당황했다. 노트의 이름을 외치며 침실에 있는 짐들을 뒤적거렸다. 노트는 실제로 고양이도 숨을 수 없는 만큼 작은 찬장에 숨는 것을 좋아하는데, 차라리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아무도 없다. 침실에도 아무도 없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 소녀는 다시 찾으려고 나섰다. 집 전체가 뒤집어질 뻔했다. 없어. 없어. 없어. 그녀는 그 어디에서도 노트를 찾을 수 없었다. 침실 침대 밑도, 부엌 오븐 안도, 욕실 세면대 밑에도 없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에 있는걸까? 갑자기 그녀의 마음속 한 구석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집 안에 없다면 밖에 있는거 아닌가? 불안한 소녀는 다시 생각할 겨를 없이 현관에서 신발을 신은 다음, 문을 열고 쏟아지는 빗속을 아랑곳하지 않고 뛰쳐나갔다. 빗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쉴 새 없이 떨어진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방울이 소녀를 적시고, 그녀의 생각을 물웅덩이로 만들었다. |
2. 파트 2
감상 조건 | 몰입도 40.00% |
쿵쿵 거리는 소리가 나고, 주변은 어둡고, 비가 후두둑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몸에 떨어지면서 약간 따끔거렸고, 큰 빗방울이 그녀의 눈꺼풀에 떨어지자 소녀는 자신이 눈을 꽉 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 눈을 감은거지? 그녀의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가 눈을 다시 떴을 땐, 그녀가 본 건 소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물에 잠긴 강철 숲 같은 고층 건물과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갈대들이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건물들은 연못에 꽃힌 식물 같았지만, 온세상이 연못이 된 것 같다. 소녀는 그 광경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지만 땅 위에 있는 어떤 물체에 걸려 넘어졌다. 그제서야 자신이 어떤 건물의 옥상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 걸려 넘어진 냉각 파이프는 이미 녹슬고 썩어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배관이 이미 터져 그 틈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조금 날카로운 삑삑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왔다. "여기가...어디야..." 비는 여전히 사정없이 그녀의 몸에 쏟아져 오는 아침에 막 꾸민 옷을 흠뻑 적셨다. 그녀는 빗속에 앉아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당긴 채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끼며 울고 싶어했다. "노타? 왜 비 속에 앉아 있어?" 소녀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녀를 안으며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라고 말했다. "아니...노트? 왜 여기 있어..." "어? 내가 여기 있는게 정상이 아니긴 하지? 일단 어서 일어나, 감기 걸리겠다!" 노트는 큰 우산을 펴고 두 사람을 비로부터 보호하도록 했다. 다행히도, 폭우가 그녀의 눈꼬리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을 가려서 노트는 그 눈물을 볼 수 없었다. 노트는 노타를 일으켰고, 두 사람은 서로를 보다가 서로의 옷이 모두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쯧쯧, 너 물에 빠진 쥐 같네, 하하하하!" 노트가 웃었다. "너도 마찬가지거든, 머리가 대걸레처럼 하얀데?" 노타는 조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반격했다. 두 사람은 그 덕분에 폭우마저도 부드러워진 듯 웃었다. 노트는 노타를 건물 안으로 데려가고 빗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뚝뚝거리는 소리가 바로 희미한 윙윙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난방기를 고치러 옥상에 갔을 때 너를 만날 줄은 몰랐어." "상상도 못했네...왜 여기 있었어? 아니...어디서 부터 말해야 하지... 여기가 어디야...?" 노타는 자신이 히터를 고장낸 범인일지도 모르기에 대화 주제를 바꿨다. "여기? 음... 일종의 무색의 세계인가. 나도 갑자기 여기에 오게 됐는데, 아마 직접 보고 나면 알게 될거야." 노타는 노트를 따라 2층으로 내려갔다. 복도는 거의 완전히 버려져 있었고, 온갖 잔해물이 쌓여 있었는데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부동산 가격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면 더 이상 집값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통로 맞은편에 놓은 플라스틱 꽃병을 바라보던 노타는 갑자기 자신이 보는 모든게 흑백으로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꽃병의 문양이 희미해지고 사라버렸지만, 그래도 검은색과 회색으로 변하진 않을 것이다. 근처에 있는 판지 상자에 쌓여 있는 풍경화를 바라보았다. 역시 흑백이다. "아니... 아니, 왜 이것들이... 모두 흑백이지?" "글쎄... 무색의 세계니까. 색이 없는게 정상 아닐까?" 하지만 두 사람은 처음으로 색이 없는 세계를 보았고, 노트는 이 황당한 광경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두 사람이 어느 집의 문으로 다가갔는데, 단순한 원형 금속 손잡이가 달린 지극히 평범한 나무 문이었다. 노타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게 건물에서 문이 닫힌 유일한 방인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 뒤의 풍경이 궁금하지?" 노트가 웃으며 물었다. "...무서운게 아니였으면 좋겠어..." "말은 안할게. 궁금하면 직접 문을 열어봐" 노트는 재빨리 노트의 뒤로 가서 그녀를 문쪽으로 밀었다. 둥근 손잡이는 돌려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노타는 침을 삼키고 초조하게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
3. 파트 3
감상 조건 | 몰입도 60.00% |
나무 문이 밀려 열리고, 문 뒤의 풍경이 드러났다. 하지만 풍경보다 먼저 느껴진 건 짙은 바람이었다. 집의 외벽은 유리 창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고, 가장자리는 불규칙하게 파손되어있고, 천장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마치 이 방의 가장자리가 특이한 것에 잡아 먹힌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방 안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한 소녀가 집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유리 창 같은걸로 막혀 있지 않아서 비가 집 가장자리에 직접적으로 떨어져 바닥을 젖게 했지만, 소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저 가장자리에 서 있고, 강풍이 그녀의 옷자락을 휘날리며 은밀하게 그녀를 흔들었고, 은은한 금발은 그대로 둔텁한 머릿결을 따라 흩날렸다. 노타는 그 소녀를 좀더 자세히 봤는데, 놀랍게도 그 폭우가 그녀를 젖게 하지 않았다. "저 소녀...?" 노타가 말했다. "그녀 뿐만이 아니야, 주변을 더 자세히 봐. "노트의 말대로 노타는 주변을 둘러봤고, 방 구석에 또 다른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 소녀는 흑백 회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흰 머리카락 위에는 작은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보송보송한 귀가 높이 서 있었다. 소녀 옆에는 나무판자, 천, 철 조각, 그리고 테이프로 만들어진 작은 집이 놓여 있었다. "저 집은 내가 지은 거야, 멋지지?" 노타는 그 특이한 작은 집을 칭찬하려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녀의 관심은 다른 두 소녀에게 모두 집중되어 있었다. 노타는 그 앉아 있는 소녀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숙여 부드럽게 물었다. "그...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 알고 있니?" 상대방은 바닥을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음... 그럼... 네 이름 좀 알려줄래?" "키노." 이번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단호한 대답을 받았다. "키노... 정말 좋은 이름이네." 노타는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상대방은 원하지 않은 것 같았다. 노타가 무슨 말을 하든 키노는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막혀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노타는 다른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노타는 비 내리는 소녀 옆에 다가갔는데, 폭풍우가 포효하는 것 같아서 노타는 조금 겁이 나 있었다. 자칫 폭풍이 자신을 공중으로 날릴 것만 같았는데, 그 앞의 소녀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거기 계신 분! 이름이 뭐에요!?" 노타는 소리치지 않으면 자신의 목소리가 묻힐 것 같아서 소리를 크게 질렀다. 소녀는 돌아서서 노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없었다. 마치 인형처럼, 그녀의 푸른 눈으로 노타를 바라보았다. "뭐가... 이름이죠...?" 노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름... 이름은... 당신의 이름이 뭐에요..." "이해를 못하겠어요." 대화를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다. 노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한 듯했고, 곁에 서 있는 노트는 결국 그럴 줄 알았던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저것들을 찾았을 때 그런 질문을 했었는데 전혀 결과가 없었어! 음... 근데 아무 결과도 없었다는 건 아니야. 내가 이곳에 온 지... 1... 2... 3... 4... 5개월 동안의 관찰 결과, 이 세계의 중심 인물은 바로 저 키노야!" "아...에? 그게 왜 그런거지..." 노타는 고등학생처럼 수사와 추리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노트가 그런 말을 했을 땐 이미 답을 내놓은 것 같았다. "참, 너도 그 키노와 우리랑 어떤 점이 다른지 못 봤어?" "어떤... 다른 거?" "그녀를 다시 자세히 보라구. 그녀는 이 세계처럼 색깔이 없어!" "에...? 내가 생각했던 건..." "그녀가 저런 옷을 입는 건 그냥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았어? 당연히 아니잖아. 노타 너 정말 바보야." "으... 재채기 하려 했어... 아...에취!" 추위가 갑자기 몸을 스칠 때 노타는 이제야 자신이 방금 비를 맞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방금의 광경이 너무 초현실적이어서 다른 감각을 잊어버렸다. 감기에 걸릴 것 같다. "음...난 불 좀 피워야겠어, 몸 좀 말리고 올게. 옷이 이미 비로 젖었으니까." 노타는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자켓과 셔츠의 이중 보호로 인해 당연히 눈치챌 수 없는 곳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쨌든 노타는 옷을 조금 더 꼼꼼히 조정했다. |
4. 파트 4
감상 조건 | 몰입도 80.00% |
무색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타닥거리고, 타는 나무와 단백질섬유 천이 불쾌한 냄새를 풍겼지만, 그래도 옷은 말려주었다. 노타는 불 옆에 앉아 모닥불을 바라보며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노타도 옆에 앉아 타닥거리는 모닥불을 바라봤다. "노트, 우리는 언제까지 이 세상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나도 몰라, 평생 갇혀있어야 할지도 몰라!"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넌 그걸 또 믿냐. 문제의 원인이 해결되면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래... 뭐... 근데 너도 모르면서!" "어쨌든...그렇겠지! 항상 희망을 걸어야지!" "맞아...아오! 생각하기도 싫어! 하루종일 이상한 일만 너무 많아! 배도 고프다! 요리할게!" 노타는 그들의 식사를 책임지기 위해 나섰다. 근데 그 말을 하자마자 고민이 생겼다. 이 버려진 건물에서 어떻게 재료를 찾을 수 있을까? 어디서든 신선한 재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모서리 틈새를 보니 콘크리트 위에 이끼가 자라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여전히 흑백이지만 울퉁불퉁하고 거친 모습으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옆에 있는 소녀는 여전히 조용히 서서 먼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녀는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고 노타가 콘크리트 위에서 자라는 이끼를 모으는 것을 보았다. 노타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를 발견했다. "...나, 나는 음식을 모으고 있어." "음식? 그게 뭔데?" "그냥... 그냥 뱃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 "그럼 이건 먹어도 되냐?" 소녀가 벽돌을 집어들며 물었다. "그건...아마도...불가능 할거야...그렇지?" 노타는 노트가 정말 벽돌 한 개를 입에 넣으려는 것 같아서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말리며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노타는 이끼를 자신이 발견한 스테인리스 병에 넣었는데, 그 표면에 있는 녹 방지 코팅이 벗겨지고 곳곳에 철적색의 녹 얼룩이 드러났다. 그녀는 병을 들고 다른 방을 돌아다니며 더 따왔다. 버섯을 가장 많이 따왔는데, 색깔을 알 수 없어서 언뜻 보기에는 독버섯만 골라낸 게 아닌가 싶다. 모닥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노타는 노트에게 제안을 했다. 이 곳에서 부족하지 않은 것은 아마 물일거기 때문에 빗물을 병에 담아 음식을 씻자고 한 것이다. 병을 선반 위에 올려놓으면 모닥불의 불이 물을 데우고, 물 표면을 휘저으며 부글부글 끓고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것을 본 노타는 조심스럽게 병을 꺼내서 익힌 음식을 네 개의 그릇에 담았다. 그릇을 넣고 그 안에 숟가락을 넣었다. 비록 디저트 숟가락일 뿐이다. 노트는 국물을 충분히 덜어 맛있게 먹었다. 빗속의 소녀는 국그릇을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빗방울이 국에 떨어져 조금씩 튀었다. 노타는 이걸 먹는 방법과 숟가락 사용법을 설명해야 했다. 마침내 노타는 수프를 가지고 키노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무릎을 꿇고 수프 한 그릇을 키노의 손에 올려주었다. 키노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고, 노타는 미소를 지으며 아직 뜨거울 때 맛보라고 손짓했다. 키노는 그릇을 조심스럽게 들고 고개를 숙이고 한 모금 마셨다. "...너무 따뜻해..." 키노의 귀가 움찔거렸다. "하하, 그렇지. 맛있어?" 노타는 귀를 비비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말했다. "……음." "어... 괜찮아... 마시기 힘들까봐 걱정했는데..." "...맛있어...이런 건 처음 먹어봤는데...오랜만에..." "그래...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어?" "...모르겠어...오랜만이야..." "그게..." 키노는 말을 멈추고 손에 든 뜨거운 국물을 조용히 마셨다. 비록 아직 실질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제 키노는 기꺼이 말 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 노타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밖에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바람도 쉴 새 없이 불고 있었지만, 모닥불과 뜨거운 국 한 그릇으로 방은 따뜻해졌다. 노타는 모닥불로 돌아와 냄비에서 수프 한 그릇을 떠서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노트가 노타를 방 밖으로 끌고 나갔다. "야, 방금 키노의 변화를 눈치챘어?" "어? 무슨 변화?" "넌 정말 눈치가 느리다. 넌 분명히 그녀 바로 앞에 있었어. 너 혹시 팬이야?" "빨리 말하기나 해. 정확히 어떤 변화가 있었는데?" "너가 그녀에게 수프를 먹일 때 그녀 주변에서 번쩍였던 색을 정말로 눈치채지 못한거야?" "정말...?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글쎄,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넌 몰랐을거야. 내게 아이디어가 있는데, 너가 내가 이런 재료를 수집하도록 도와주어야 해..." 노트는 노타에게 긴 목록들을 말했는데, 너무 많아서 노트가 그걸 받아 적을 수 있는 종이 한 장을 가져가야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노타가 요청한 재료를 모두 찾았고, 노타가 그것들로 가득찬 무거운 가방을 들고 노타에게 건네주었을 때, 노타는 이미 도구들을 집어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오, 생각보다 빨리 찾았는데! 나뭇가지 따는거에 재능 있는 것 같구먼!" "그렇게 칭찬해할거야? 색깔도 구분 못하잖아. 정말 곤란해." "그래도 다 갖고 왔잖아." 노트는 가방을 들고 그 안의 온갖 이상한 재료들을 꺼낸 뒤 일을 시작했다. "가서 좀 쉬어. 하루 종일 바빴잖아." "아... 응." 노타는 방 안의 깨끗한 곳을 찾아 벽에 기대어 앉았다. 빗소리가 계속 들렸고, 모닥불의 온기가 온몸에 퍼지더니 졸음이 몰려왔다. |
5. 파트 5
감상 조건 | 몰입도 100.00% |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노타는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 "내가 해냈어!" 라는 노트의 목소리였다. "흠...? 왜..." 노타 앞으로 커다란 상자가 밀려왔다. "바로 이거야. 진짜 엄청 힘들게 노력했어." 노타는 물건이 담긴 상자를 바라보며 "정말 쓸모가 있을까...?" 라고 말했다. "해보기 전엔 어떻게 알아? 너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은 여기에 계속 갇혀 있는거야" "완전히 극단적인 것 같은데..." "알았어 알았어 정말 쓸모없으면 까마귀 입 탓으로 돌릴게. 빨리 옥상으로 가져가서 장식해 주면 내가 키노와 그 소녀를 데려갈게."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나?" "물론 생각해봤어. 뭐 젖어도 안 아프겠지!" "괜찮은건가……" 상자가 너무 커서 노타는 들을 수도, 잡을 수도 없어서 옥상까지 밀어서 가야 했다. 우산을 펴고 상자를 야외 공간으로 밀어냈다. 그때 다른 세 사람도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게 다야-" 노트가 노타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정말 가능한가..." 노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문제는 이렇게 됐다. 해보기 전엔 어떻게 알겠는가. 노타는 라이터를 꺼내고 위에 있는 퓨즈에 불을 붙였다. 쉿, 조용... 연료가 소진됐다. 회색 연기 기둥이 피어오르고 뒤이어 비가 쏟아졌다. "어? 고장났나...? 말도 안 돼! 내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노타가 몸을 굽혀 상황을 확인하자, 상자에서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왔다. 피——웅!! 노타는 순간 너무 놀라서 땅에 쓰러졌다. 공중에서 불꽃이 터졌다. 노타와 노트 모두 키노에게 집중했다. "..." 키노는 고개를 들어 공중에 떠 터지고 있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탁탁거리는 소리가 계속 울리더니 하늘에 불꽃놀이가 나타났다. "불꽃놀이..." 키노가 부드럽게 말했다. "너무 아름다워..." 하늘의 불꽃놀이가 갑자기 색을 되찾았다. 찬란한 색이 하늘에 피어나는 꽃처럼 차례차례 나타나는 것은, 네 사람만의 풍경이었다. 키노의 손에 들려 있던 우산이 땅에 떨어졌다. 노트가 그것을 다시 잡으려고 했을 때 비가 점점 가늘어지는 것을 알아차렸고 손을 뻗어 확인해봤는데 차가운 빗방울이 봄 이슬처럼 따뜻해졌다. "노타, 봐봐, 식물의 색깔이 돌아왔어!" 노타는 건물 옆에 있는 덩굴을 가리켰다. "성공한 것 같은데?" "흠! 아...몸이 투명해졌네!" "아... 너도 마찬가지야. 우리 죽는 거야? 여기 사는 게 거의 익숙해졌어." "그냥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하하, 농담이거든. 여튼 남은 두 사람이랑 작별 인사를 해야 하나?" "응……!" 노타와 노트는 키노와 다른 소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노타는 집 앞 거리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위에서 노트가 누르고 있었다. "넌 나를 짓밟아 죽일 셈이냐! 일어나 임마!" 노타가 소리쳤다. "아, 미안해. 내가 하려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옷이...또 젖었어..." "들어가서 빨리 옷 갈아 입어. 안 그러면 감기 걸린다." 샤워 헤드에서 뜨거운 물이 흘러 몸 뿐만 아니라 추위와 피로도 씻겨주었다. 노타는 이제서야 그 수프 한 그릇의 맛을 결국 맛도 못봤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하지만 키노의 마지막 미소를 보면 꽤 괜찮을지도? 비가 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