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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2 10:27:17

G. K. 체스터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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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
Gilbert Keith Chesterton
파일:GK-Chesterton.webp
출생 1874년 5월 29일
런던 켄징턴
사망 1936년 6월 14일 (향년 62세)
버킹엄셔 비콘스필드
종교 성공회[명목상] 가톨릭
직업 저널리스트, 소설가
활동 1900년 ~ 1936년
주요 저서 브라운 신부 시리즈

1. 개요2. 생애3. 브라운 신부 시리즈4. 체스터튼의 울타리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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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추리 작가이며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하다.

2. 생애

1874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성 폴 학원에서 《트렌트 최후의 사건》을 쓴 E.C. 벤트리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다시 런던 대학 부속인 슬레이드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화가에 뜻을 두었으나 대성하지 못하고 그 대학에 재학 중이던 21살에 평론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수없이 많은 정기 간행물에 건필을 휘둘러 정치론, 수필, 시, 문학평론 등의 영역에 걸쳐 활약했다. 그의 문학평론가로서의 면목은 《브라우닝 전》 《디킨즈 론》 《스티븐슨 론》 등에서 볼 수 있어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얻었는데, 한편 1천 페이지로 엮어진 길고 짧은 시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자신은 시인으로서 가장 자신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추리소설적 작품으로는 1905년의 《기괴한 장사꾼 클럽 The Club of Queer Trades》, 1908년의 《목요일이었던 남자》 #가 있고 브라운 신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은 《브라운 신부의 동심(1911년)》을 비롯하여 《브라운 신부의 지혜》 《불신》 《비밀》 《추문》 등 5권의 51편이 있다. 그리고 1927년의 《시인과 광인들》, 1936년 세상을 떠난 해에 간행된 《폰드 씨의 역설》 등이 있다. 통렬한 풍자와 가톨리시즘의 인생관을 그 바탕에 둔 브라운 신부 이야기는 추리소설의 시조인 포의 작품과 나란히 가장 문학적이고도 추리소설의 특징을 고도로 발휘하고 있다.

3. 브라운 신부 시리즈

브라운 신부 항목 참조

4. 체스터튼의 울타리

Chesterton Fence
...이러한 경우 어떤 특정한 제도나 법률이 존재한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어떤 울타리나 문이 도로를 가로질러서 세워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요즘 같은 개혁가들은 쾌활하게 다가가서 "이게 어디에 쓰는 건지 모르겠군, 치워 버리자" 라고 말한다. 반면 좀 더 지적인 축에 드는 개혁가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용도를 모르겠다면, 난 네가 이것을 치우지 못하게 할 거다. 저리 가서 (용도를) 생각하도록 해.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와 이것의 용도가 무엇인지 내게 알려준다면, 그때 나도 네가 이걸 없애도록 할 거야."
(There exists in such a case a certain institution or law; let us say, for the sake of simplicity, a fence or gate erected across a road. The more modern type of reformer goes gaily up to it and says, "I don’t see the use of this; let us clear it away." To which the more intelligent type of reformer will do well to answer: "If you don’t see the use of it, I certainly won’t let you clear it away. Go away and think. Then, when you can come back and tell me that you do see the use of it, I may allow you to destroy it.")
G. K. Chesterton, 1929, 《The Thing》



기존의 무언가가 만들어진 이유를 알기 전에는 그것을 함부로 바꾸거나 없애지 말라는 의미의 경구로, 체스터튼의 1929년 작 《The Thing》 에 등장하는 비유이다. 체스터튼은 "이게 뭐야?" → "없애 버려!" 의 순으로 이어지는 사고방식이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계한다. 길 위에 울타리가 세워져 있다면 그것은 그 울타리가 마치 식물처럼 저 혼자 땅에서 솟아올라와 자란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심심해서 혹은 별 생각 없이 그것을 수고스럽게 세워놓은 것도 아니다. 울타리는 명백한 기능적 목적을 갖고 세워지는 것이므로, 그 울타리를 세운 사람도 명확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것을 세웠으리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 비유를 통해 보면, 어떤 제도나 법률, 체제가 만들어진 이유를 모르겠다면 그것은 자신의 지식이 부족한 것이므로 더 많은 탐구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의미이지, 그것이 쓸모가 없으니 바꾸거나 없애도 무방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사고방식은 우리의 선배들과 선조들이 우리에 비해서 몽매하다거나 비합리적이었을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제도가 생겨난 이유를 따져보면 그 시대의 가장 현명했던 사람들이 다양한 시행착오와 논쟁 끝에 어렵사리 이룩했던 성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체스터튼의 울타리가 가장 흔히 적용되는 분야가 바로 경영학의 조직혁신이다. 흔히 관료제가 단점만 많고 비용이 많이 발생하며 시대에 뒤처진 제도라고 여겨지곤 하지만, 막상 제 조직이나 심지어는 만장일치식과 같은 수평적 조직으로 개편을 시도해 본 관리자들은 어째서 관료제가 아직까지 살아남아 왔는지를 뒤늦게 실감하는 경우가 많다. 즉 관료제는 막스 베버와 같은 뛰어난 지성에 의해서 진지하게 제안되고 실제로도 많은 조직적 문제를 해결하며 그 효능을 입증해 왔지만, 이걸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관료제를 해체시켰다가 크게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 외에도 개인의 자기계발에도 체스터튼의 울타리를 적용할 수 있다. 자기계발류 서적들을 보면 인생의 도약을 위해서 지금까지 안주해 왔던 습관들을 과감히 바꿀 것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체스터튼의 울타리를 통해 본다면 그 습관들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므로, 함부로 없애기 전에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유익을 주는지도 살필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여러 루틴들은 개인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있을지라도 한편으로는 플러스가 되기도 하며,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더 많은데도 습관으로 굳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종래의 자기계발은 플러스를 성찰하기 전에 마이너스부터 이 잡듯 뒤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

자연계에도 체스터튼의 울타리가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진화론의 성 선택 이론에서 즐겨 소개되는 공작의 화려하고 거대한 꼬리깃이 대표적인 사례로, 초기 학자들은 '저게 왜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런 게 어째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지만 곧 그것이 짝짓기에서 우수한 유전자를 암시하는 신호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학자들이 엄청난 말라리아 사망자 수에도 불구하고 모기를 멸종시키자는 제안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모기가 생태계에서 갖는 역할과 기능을 아직 충분히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뜻 의미를 모를 것 같아도, 이미 존재하는 것에는 다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유의할 점으로, 체스터튼의 울타리 비유는 변화나 개혁을 무조건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체스터튼의 울타리는 잘 모르는 것을 무작정 없애지 말라는 의미이지, 없애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거나, 개혁이 무조건 무지의 소산이라는 식의 의미가 아니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지적인 개혁가가 '일단 충분히 이해하고 난 이후라면 울타리를 치우는 데 동의할 것' 을 전제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전 세대에서 아무리 고민하고 지혜를 짜내어서 어떤 제도를 만들었다 해도,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이 유효하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가 충분히 확인된다면 그때는 제 용도를 다한 울타리를 치우는 게 바람직하다.

중국에서는 실제로 체스터튼의 울타리 비유를 현실로 옮긴 황당한 사례도 있다. 지름길을 만들겠다면서 그냥 울타리도 아니고 무려 만리장성을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한 것. #

5. 여담

작가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변증론가로도 활동했다.


[명목상] 성공회 신자였지 실제로는 불가지론자에 가까웠다고 한다. 십대 시절에 기독교에 환멸을 느껴 오컬트에 심취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니체, 볼테르, 토머스 하디, 월트 휘트먼 등의 무신론ㆍ이신론ㆍ범신론 작가들의 책을 탐독하며 역설적으로 완전한 회심을 체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