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브라질에서는 이전부터 외곽 도시들과 주요 도시를 연결하기 위해 다양한 기반 시설(도로, 철로)들을 설치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환경요인(도시 간의 거리, 정글, 강과 지류, 불안정한 날씨)으로 인해 육상 교통이 발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50년대부터 항공운송&여객 시장이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각 마을과 도시를 합해 335개의 공항이 존재했다. 이는 당시 규모로서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주던 브라질 항공업계는 얼마 안 가 큰 난관에 봉착했다.
늘어나는 항공수요에 맞추어서, 더 많은 승객을 태우기위해 투입한 최신 대형여객기들[1]은 모두 100 %수입품이었고, 이로인해 항공기 도입비용 자체도 비쌌지만, 유지&보수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편이었다. 더구나 당시 항공사들의 인수합병과 항공사 난립,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수익창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많은 항공사들이 소규모 노선을 폐지하고 수익이 확실한 주요 노선만을 유지하려 했다. 더구나 당시 대부분의 소형공항들은 비포장, 혹은 짧은 활주로로 구성됐기때문에 대형 항공기들은 취항조차 불가능했다.
아프리카의 비포장도로. 당시 브라질 소형공항들도 이정도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335개에 달했던 공항들은 68년 전후로 65%가량[2]이 폐쇄되어버렸다. 당시 항공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응할만한 항공기를 필요로 했고, 브라질 정부 또한 자국의 항공산업 역량 강화와 교통문제 해결을 목표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후 이 계획은 국산 항공기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다행히도 당시 브라질 항공업계는 충분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공군소속 항공기술센터 (CTA)[3] 산하의 항공기술전문연구소(ITA)[4] 와 대학소속 연구기관인 IPD[5] 가 존재했다. 1965년 브라질 정부는 IPD-6504 라는 이름으로 개발프로그램을 승인하였고, 두 연구기관의 협업아래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이들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1. 비포장 활주로 위주인 소형공항에서도 사용 가능하도록 제작하고 범용성을 갖출 것
2. 기체 신뢰성을 높이고, 정비 소요를 최대한 줄임으로써 유지비를 낮추도록 할 것.
3. 브라질 전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항속거리를 확보할 것
개발자들중 주도적인 역할을했던 Ozires Silva와 Max Holste[6]. 전자는 훗날
엠브라에르의 초대 사장이 된다
제작중인 항공기
마침내 완성된 공군 소속 IPD-6504. 일명 YC-95
여러 관계 기관과 300여명에 달하는 인력이 투입된 덕분에 개발시작 3년 4개월만인 1968년 10월 22일, 이들의 항공기는 YC-95 라는 이름으로 첫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에 고무된 프로그램 책임자 Paulo Victor da Silva 대령은 이 항공기에 반데이란치(Bandeirante : 무장탐험대) 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시험비행 중인 YC-95 와 기체의 완성을 기념하는 개발진. 그 별명만큼이나 기념비적인 기체였다.
비록 기체는 완성되었을지언정, 정작 당시 브라질에는 항공기 양산체제를 갖춘 업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양산은 점점 뒤로 밀리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개발자 중 한명이었던 Max Holste 는 팀원과의 불화로 인해 팀을 떠났다. 이에 Ozires Silva 를 비롯한 개발진들은 정부에게 국영항공기 제작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얼마 안 가 결실을 맺게 된다. 1969년 8월경, 국영 항공기 제작사인
엠브라에르가 창립되고, 이탈리아의
아에르마키사 의
MB-326 을 라이센스 생산하며 본격적인 항공기 양산라인을 갖추기 시작했다[7]. 이후 1971년 3월부터 양산이 시작되고 73년에는 첫 번째 고객인 브라질 공군에 8대를 납품하게 된다. 적절한 성능과 가격을 앞세워 세계시장에 도전하여 약 245대를 수출, 총 498대를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민간시장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판단한 개발진은 이후 더이상의 파생형 개발을 멈추고 EMB-120 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EMB-110 (C-95): 더욱 강력한 680마력(507kW)의 P&W 캐나다 PT6A-27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한 브라질 공군용 초기 생산분. 기존 프로토타입보다 더욱 길어진 동체, 엔진나셀과 객실,창문 등을 재설계하고 좌석또한 12석까지 늘렸다. 80대를 주문했지만 55대만이 제작되었다.
EMB-110A (EC-95): 기존 EC-47를 대체하기 위해서 C-95에 각종 항법장치를 장착한 형식으로 당시 공군기들의 장거리 항법지원 업무[8]를 담당한 항공기. 3대 제작
EMB-110B (R-95):
자이스사의 카메라를 장착한 브라질 공군용 항공정찰기. 6대 제작
EMB-110B1: 기존 형식을 개수해서 최대 14명의 승객을 태우거나 원래 기능인 항공촬영이 가능하도록 한 형식. 우루과이 공군 밎 브라질 국내 민간항공사에 각 1대씩 제작하여 총 2대 제작
EMB-110P : 브라질 국내 항공사들을 위해 EMB-110C를 개량(엔진교체)한 형식 최대 18명 탑승가능. 20대 제작.
EMB-110P/A: 수출형. 기존과 차이점은 없음.
EMB-110P1: C-95A 를 민간용으로 개조한 형식. 특별한 절차없이도 용도 변경[9]이 가능한 형식. 제일 많이 팔려나갔다. 약 200대 제작
EMB-110P1K (C-95B): P1을 기반으로 만든 군용기.성능은 C-95A 와 비슷하나, 이 형식은 소음저감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31대 제작.
EC-95B: C-95B 동체를 사용한 항법지원 및 검사기. 3대 제작
EMB-110P1/A (C-95C): P1의 후방 출입구를 더욱 확대하고 꼬리날개를 재설계한 개량형 12대 제작
EC-95C: C-95C 동체를 사용한 항법지원 및 검사기. 3대 제작
EMB-110P1/41
EMB-110P1K SAR (SC-95B) : 기존에 브라질 공군이 사용하던
그루먼사의 SA-16 알바트로스 항공기를 대체하기위한 탐색구조용 항공기. 최대 6명의 환자를 수용할수있고 후방출입구를 통해 구명정을 살포할수있으며, 물방울형 관측창을 신설해 내부에서 경계가 가능하도록 함. 총 5대 제작.
EMB-111 (P-95) Bandeirante Patrulha : EMB-110을 바탕으로 제작한 해상초계기 형식. 전방에 AN/APG-128 레이더를 장착하였으며, 우측날개에 서치라이트를 장비, 초계임무뿐만 탐색구조임무 또한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무장은 HVAR 로켓 12발, 혹은 70mm
히드라 70 로켓, 폭뢰, 일반 폭탄. 칠레와 가봉에도 판매되었으며,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군이 브라질 공군으로부터 두 대를 임대받아 운용한 뒤 반환하였다.
P-95A: 각종 전자장비(ECM, ESM, FLIR)를 장착하고 서치라이트 제거한 개량형. 모든 P-95가 이 형식으로 개량되었다.
P-95B: C-95C의 동체를 이용해 제작한 형식. 성능은 P-95A와 동일하다.
P-95M: 2015년 부터 도입된 현대화 개량형. 레이더를 시 스프레이 5000E 로 교체하여 임무수행능력을 강화했다.
1970년대 초반, EMB-110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엠브라에르 사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판단했다. 특히 여압장치 같은 기술이 없었던 만큼, 민간여객기 시장에 진출하기에는 기술적으로 많은 부분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엠브라에르는 여압계통 전반에 대한 기술습득 + 민간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기체 개발 을 목표로 기체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
시험비행 중인 프로토타입 PP-ZXI 와 2호기 PP-ZCT
다행히 이들은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10]와의 협업을 통해 여러가지 기술, 특히 여압화된 동체제작에 필수적인 재료가공 및 화학공정 전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수 있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EMB-110의 동체를 이용하여 개발을 시작, 1976년 10월 10일, 시제기를 띄울수 있었다.
1977년부터 양산을 시작해 10년이 지난 1987년 3월경, 106호기를 마지막으로 생산을 종료했다. 다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신통치 않아서 판매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귀중한 기술을 습득할수 있던 계기가 되었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EMB 120의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현재는 프랑스군이 40대 가량을 운영하며 최대 운용국이다.
[1]
위에 소개한 항공기들 말고도
사브 90,
빅커스 비스카운트, 등 다양한 항공기들을 운영했다.
[2]
약 220곳
[3]
Centro Técnico de Aeronáutica
[4]
Instituto Tecnológico de Aeronáutica
[5]
Instituto de Pesquisa e Desenvolvimento
[6]
프랑스인으로 브라질에 비행기 팔러 왔다가 설계를 의뢰받는다
[7]
기존에 제작한 프로토타입 2대는 엠브라에르에 소유권이 이전되고 사내명 EMB-100 으로 불리게된다.
[8]
직접 항공기를 이용해 공항을 순회하며 공항의 항법유도, 관제시스템 전반을 검사하고 진단하는 역할
[9]
좌석을 설치하면 여객기고, 좌석을 제거하면 후방 출입문을 통해 화물을 실을수있었다.
[10]
현재
보잉과
프랫&휘트니 같은 대기업을 소유한 거대 복합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