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기의 이탈리아군 화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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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이탈리아군의 화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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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사포 | <colbgcolor=#fefefe,#393b42> 105/28 Mod. 1916, 149/19 Mod. 37, Cannone da 149/28, 149/35 Mod. 1901. 안살도 149/40 Mod. 1935, 안살도 210/22 Mod. 1935 | |||
보병포 | 65/17 Mod. 1908/1913, 75/27 Mod. 1911, Obice da 75/13, 75/18 Mod. 34/35, 75/27 Mod. 1906, 100/17 Mod. 14 | |||
대전차포 | 블레르 47mm 대전차포, 75/32 Mod 37, 75/34 Mod. S.F. | |||
대공포 | 브레다 20/65, 브레다 37/54, 75/27 C.K, 75/46 C.A. Mod 34, 90/53 Mod.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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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37 화포 운반 트럭에 실려가는 75/32 Mod 37
1. 제원
사용국가 | 이탈리아 왕국 |
제작 | 안살도 |
중량 | 1.160kg (포차 포함), 69.3kg (본체) |
전장 | 2.574m |
구경 | 75 밀리미터 |
상하각도 | −10° 에서 +45° |
좌우각도 | 50° |
포구초속 | 624m/s |
관통력 | 철갑탄: 300m 에서 88mm 대전차고폭탄: 120mm |
사용 탄종 | 철갑탄, 고폭탄, 점착유탄탄 |
최대사거리 | 11500 m |
발사속도 | 분당 6~8 발 |
2. 개요
이탈리아 왕국군은 Obice da 75/18 곡사포의 부족한 사거리에 대한 불만과 대전차전을 수행할 새로운 무기에 필요성으로 인해서 75/18 곡사포의 포신을 늘리는 것으로 계획을 시작하였고 1937년 나폴리의 병기창에서 첫 번째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새로운 대전차포는 75/34 Mod. S.F.라는 이름으로 육군에 의해 채택되었고 이 신형 대전차포를 단축하고 소염기를 후추통 모양으로 변경한 것이 75/32 Mod 37이다. 포방패는 12mm의 두께로 장갑차와 교전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리고 화포는 트럭인 TL37이 견인을 한다.1938년에 생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미 이탈리아의 한심한 공업력으로는 신형 화포를 대량생산하기 힘들었고 1943년까지 542문만이 생산되었다. 일부 생산품은 P26/40와 세모벤테 M42에 실험적으로 장착되지만 75/34 Mod. S.F.보다 부족한 관통력 때문에 선택 받지 못한다.
3. 운영
화포는 제201차량화포병연대에 의해서 동부전선에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1943년에 소련의 천왕성 작전으로 포병대는 모든 대포를 잃게 되었다.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아리에테 II 기갑사단에 부속 연대인 포병 연대가 사용하고 있었다.이탈리아 항복 후에는 7,5cm FK 248(i)라는 이름으로 독일군이 사용하였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이탈리아군의 화포로써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