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시대 중앙정치조직.고려 성종시기에 만들어졌다.
2. 상세
2.1. 2성 6부제를 만들기 이전의 중앙정치체제
그 전까지는 신라의 관제를 약간 변형한 태봉의 광평성 체계를 고려시대 초기에도 사용했다.2.2. 2성 6부제를 만들다
width=310]]| ▲2성 6부제 |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였지만 관습적으로 운영된 중서문하를 공식화하여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2성을 두고 그 하위로 이부, 예부, 공부, 형부, 호부, 병부(6부)를 두었다.
당과 조선, 발해와 달리 6부의 순서는 이·병·호·형·예·공이다.[1][2] 고려에서 이 순서대로 읽은 것은 재상의 등급과 관련이 있다. 수상부터 이·병·호·형·예·공의 순서로 판사직을 겸임하기 때문이다.[3]
2.3. 고려만의 운영 특색
중서문하성은 그동안 관습적으로 운영되어 온 중서성과 문하성의 합의기구인 중서문하를 명시된 기관으로 구체화 했다는 점에서 고려의 운영특색을 보여준다.[4]3. 2성 6부제를 최초로 주장한 사람
고려의 중앙정치조직이 2성 6부제라는 것은 1967년 변태섭이 최초로 주장한 것이다.이 주장은 한국사 개설서로 유명한 변태섭의 '한국사통론'에 실리고, 고려사 연구의 또 다른 권위자인 박용운도 2성 6부제를 수용하면서 정설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이후 국사 교과서에도 2성 6부제가 실리면서 고려의 중앙관제가 2성 6부제라는 것은 상식처럼 통용되게 된 것이다.
4. 3성 6부제설
한편 고려의 중앙정치조직이 2성 6부제가 아니라 3성 6부제라는 설도 존재한다.중서성과 문하성이 같이 운영되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통합된 기구인 중서문하성으로 운영된 것이 아니고 중서성과 문하성으로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려사, 고려도경을 비롯한 고려 관련 문헌들을 보면 '중서성', '문하성'처럼 따로 분리되어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서문하성'이라고 붙여서 기록된 경우들도 꽤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경북대 최정환 교수를 중심으로 3성 6부제가 맞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은 소수설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1]
당은 6부를 좌사와 우사로 나누어 좌사에 이부-호부-예부 순으로, 우사에 병부-형부-공부 순으로 배치하였다.
[2]
당과 조선에서 이·호·예·병·형·공으로 읽은 것은 좌사→우사 순서로 읽은 것이고, 고려에서 이·병·호·형·예·공으로 읽은 것은 좌·우사를 번갈아가며 읽은 것이다.
[3]
다만 판이부사, 판병부사를 제외한 나머지 부서의 판사직은 없거나 순서가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다.
[4]
단, 중서성과 문하성의 통합 운영 자체는 고려만의 실상이라기보다 3성 6부제 자체의 특징이다. 고려의 특징은 이런 관습적 운영을 제도에 최대한 반영하여 성문화하려는 시도에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