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 FIFA 월드컵 칠레 | ||
조별 라운드 | 1조, 2조 | 3조, 4조 |
결승 토너먼트 | 8강 이후 |
[clearfix]
1. 1조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비 | 승점 | |
1 | 소련 | 3 | 2 | 1 | 0 | 8 | 5 | 1.600 | 5 | |
2 | 유고슬라비아 | 3 | 2 | 0 | 1 | 8 | 3 | 2.667 | 4 | |
3 | 우루과이 | 3 | 1 | 0 | 2 | 4 | 6 | 0.667 | 2 | |
4 | 콜롬비아 | 3 | 0 | 1 | 2 | 5 | 11 | 0.455 | 1 |
1.1. 1경기 우루과이 2 vs 1 콜롬비아
경기장 |
카를로스 디트보른 경기장 아리카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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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5월 30일 15:00 | |
국 가 | 우루과이 | 콜롬비아 |
득 점 | 2 | 1 |
득점자 |
쿠비야 (56') 사시아 (75') |
술루아가 (19')(PK) |
지난 대회 예선 탈락을 만회하고 8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한 우루과이는 월드컵 본선이 처음인 콜롬비아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먼저 실점했으나 후반 사시아와 쿠비야의 동점골과 역전골로 역전승했다.
1.2. 2경기 소련 2 vs 0 유고슬라비아
경기장 |
카를로스 디트보른 경기장 아리카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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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5월 31일 15:00 | |
국 가 | 소련 | 유고슬라비아 |
득 점 | 2 | 0 |
득점자 |
이바노프 (51') 포네델니크 (83') |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0 결승전의 리턴매치. 소련은 후반 6분 포네델니크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은 뒤 이바노프가 리바운드 헤딩골로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 38분에는 포네델니크가 직접 추가골을 득점했다. 한편 소련의 에두아르드 두빈스키는 유고의 무하메드 무이치의 살인태클로 인해 야신과 카네프스키의 도움을 받아 경기장을 떠나야했고 무이치는 퇴장당하지는 않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자국 축구협회로부터 자체 징계를 받으며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편 두빈스키는 이 부상이 원인이 되어 7년 뒤 골육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3. 3경기 유고슬라비아 3 vs 1 우루과이
경기장 |
카를로스 디트보른 경기장 아리카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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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6월 2일 15:00 | |
국 가 | 유고슬라비아 | 우루과이 |
득 점 | 3 | 1 |
득점자 |
스코블라르 (25')(PK) 갈리치 (29') 예르코비치 (49') |
카브레라 (19') |
1차전 소련에 2점차로 패한 유고슬라비아는 반드시 승리해야 했던 우루과이와의 대결에서 먼저 실점했음에도 3대1로 역전승을 거두며 8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1.4. 4경기 소련 4 vs 4 콜롬비아
경기장 |
카를로스 디트보른 경기장 아리카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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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6월 3일 15:00 | |
국 가 | 소련 | 콜롬비아 |
득 점 | 4 | 4 |
득점자 |
이바노프 (8', 11') 치슬렌코 (10') 포네델니크 (56') |
아케로스 (21') 콜 (68') 라다 (72') 클링헤르 (86') |
소련은 전반에만 3골을 퍼부으며 후반 23분까지 4대1로 이기고 있었으나 이후 3골을 연달아 실점하며 4대 4로 비겼고 세계 최고의 골키퍼 레프 야신은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5] 특히 콜롬비아의 두 번째 득점은 마르코스 콜의 코너킥이 직접 들어간 것이었다.[6] 극적인 무승부를 거둔 콜롬비아는 월드컵 본선 첫 승점을 기록했고, 당대 최강 팀 중 하나던 소련을 상대로 4득점이나 기록했다는 의미있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7][8]
1.5. 5경기 소련 2 vs 1 우루과이
경기장 |
카를로스 디트보른 경기장 아리카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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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6월 6일 15:00 | |
국 가 | 소련 | 우루과이 |
득 점 | 2 | 1 |
득점자 |
마미킨 (38') 이바노프 (89') |
사시아 (54') |
약체 콜롬비아전에서 다 잡은 승리를 놓인 소련은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을 2대 1 승리로 장식하며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반면 우루과이는 1승 2패를 기록하고 최소한의 체면치레만 한 채 13위로 탈락했다. 그 후 우루과이 팀은 한동안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1.6. 6경기 유고슬라비아 5 vs 0 콜롬비아
경기장 |
카를로스 디트보른 경기장 아리카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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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6월 7일 15:00 | |
국 가 | 유고슬라비아 | 콜롬비아 |
득 점 | 5 | 0 |
득점자 |
갈리치 (20', 61') 예르코비치 (25', 87') 멜리치 (82') |
허망하게 동점까지 허용한 소련과 달리 유고슬라비아는 콜롬비아를 상대로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붙였고 결국 5대 0이라는 스코어로 털어버렸다. 그렇게 유고슬라비아는 조 2위로 8강에 합류했고, 콜롬비아는 소련을 상대로 한 선전이 무색하게 이 대회에서 14위로 퇴장해야 했다.
2. 2조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비 | 승점 | |
1 | 서독 | 3 | 2 | 1 | 0 | 4 | 1 | 4.000 | 5 | |
2 | 칠레 | 3 | 2 | 0 | 1 | 5 | 3 | 1.667 | 4 | |
3 | 이탈리아 | 3 | 1 | 1 | 1 | 3 | 2 | 1.500 | 3 | |
4 | 스위스 | 3 | 0 | 0 | 3 | 2 | 8 | 0.250 | 0 |
2.1. 1경기 칠레 3 vs 1 스위스
경기장 |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산티아고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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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5월 30일 15:00 | |
국 가 | 칠레 | 스위스 |
득 점 | 3 | 1 |
득점자 |
산체스 (44', 55') 라미레스 (51') |
뷔트리히 (6') |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한 개최국 칠레는 전반 6분 만에 뷔트리히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어렵게 출발했다. 그러나 전반 종료 직전 레오넬 산체스가 동점골을 넣었고, 후반 시작 후 6분 뒤 하이메 라미레스가 역전골을 성공하며 페이스를 찾았다. 그리고 4분 뒤에는 레오넬 산체스가 추가골로 쐐기를 박으며 3대 1 승리를 거뒀다.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칠레는 개최국 첫 경기 무패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2.2. 2경기 서독 0 vs 0 이탈리아
경기장 |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산티아고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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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5월 31일 15:00 | |
국 가 | 서독 | 이탈리아 |
득 점 | 0 | 0 |
득점자 |
전통강호인 독일과 이탈리아가 한 조로 묶이며 역대 월드컵 우승팀[13]들 끼리의 첫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그렇지만 소문난 잔치엔 먹을 것이 없듯 경기 자체는 허무하게 무득점 무승부로 종료되었다. 서독의 우베 젤러가 전반전에 골대를 맞추고 독일의 브륄스와 이탈리아의 시보리가 각각 기회를 얻었던 것을 빼면 경기 내용 자체가 지루했다.
한편 독일 팀에게 있어서 이 경기는 좋지 않은 징조였는데,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자신들을 괴롭히는 징크스가 바로 이 경기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독일은 국제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처음으로 이기기까지 무려 60년이 걸렸다.
2.3. 3경기 칠레 2 vs 0 이탈리아
자세한 내용은 산티아고의 전투 문서 참고하십시오.2.4. 4경기 서독 2 vs 1 스위스
경기장 |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산티아고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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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6월 3일 15:00 | |
국 가 | 서독 | 스위스 |
득 점 | 2 | 1 |
득점자 |
브륄스 (45') 우베 젤러 (59') |
슈나이터 (73') |
스위스 팀은 경기 초반 노베르트 에쉬만이 스키마니아크의 태클에 의해 발목 부상으로 실려나가 수적 열세에 처했다.[15] 그리고 이 기회를 크게 살려 서독은 브륄스와 젤러의 득점으로 승기를 잡았다. 스위스 팀은 악조건 속에서도 한 골을 만회하며 분투했지만 패배를 막지는 못했고, 그렇게 2패로 조기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2.5. 5경기 서독 2 vs 0 칠레
경기장 |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산티아고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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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6월 6일 15:00 | |
국 가 | 서독 | 칠레 |
득 점 | 2 | 0 |
득점자 |
스치마니아크 (21')(PK) 우베 젤러 (82') |
일찌감치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은 개최국 칠레가 다소 힘을 빼고 나왔고 서독은 이런 칠레를 상대로 두 골을 넣어 가볍게 승리했고 조 1위를 꿰찼다. 그리고 이 결과로 인해 이탈리아가 한 끗 차이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6. 6경기 이탈리아 3 vs 0 스위스
경기장 |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산티아고 -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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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A] | 1962년 6월 7일 15:00 | |
국 가 | 이탈리아 | 스위스 |
득 점 | 3 | 0 |
득점자 |
모라 (1') 불가렐리 (65', 87') |
이탈리아 팀은 8년 전 개최국으로서 자신들을 탈락시켰던 스위스 팀에 복수하며 뒤늦게 1승을 올려봤지만 칠레전 패배의 치명타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회 9위로 마감하여 토너먼트행은 실패하고 말았다. 스위스는 대회에서 유일하게 승점 1점조차 건지지 못하며 3전 전패 대회 최하위로 마감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다음 대회에서도 이 경기의 득점자였던 불가렐리가 부상을 당하는 불운 끝에 북한에 일격을 얻어맞고 또 대회 9위로 조별리그에서 두 대회 연속 광탈하는 등 좀처럼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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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막판 클링헤르의 골은 본인의 실책으로 먹힌 것이다.
[6]
2022년까지도 월드컵 역사상 유일무이한 코너킥 골로 남아있다.
[7]
2020년대 시점으로 치자면, 파나마가 월드컵 본선에서 독일을 상대로 다득점 무승부를 거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성과였다.
[8]
다만 레프 야신 골키퍼가 이러한 실책과 실점을 했던 원인이 경기도중 있던 뇌진탕이 원인이라고 뒤늦게 밝혀졌다. 뇌진탕 증세가 있음에도 교체되지 않고 경기에 나섰지만 경기에 집중할수 없어서 무려 4골이나 먹힐수밖에 없을정도로 이경기서 선방능력이 상당히 떨어졌고 이는 62년 리그에서 까지 영향을 미쳤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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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당시 기준으로 역대 월드컵 우승 국가들은 우루과이[18], 이탈리아[19], 서독[20], 브라질[21] 뿐이었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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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962년 당시에는 선수교체 제도가 없었다. 부상을 당해서 실려나간 선수가 있으면 한 명이 부족한 상태로 경기를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A]
괄호 안은 한국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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