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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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일시 | 4월 5일 | ||||||||
투표율 | 100% | ||||||||
선거 결과 | |||||||||
후보 |
[[민주공화당(프랑스)| 민주공화당 ]]알베르 르브룅 |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SFIO ]]알베르 베두스 |
[[프랑스 공산당| 프랑스 공산당 ]]마르셀 카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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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 |||||||||
56.00% 506표 |
16.70% 151표 |
8.20% 74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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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 | |||||||||
민주공화당 알베르 르브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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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9년 4월 5일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 간접선거로 치러졌으며 승리자는 알베르 르브룅이었다. 이전 선거는 1932년 대선으로 이 선거가 프랑스 제3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 선거가 되었다. 이후 선거는 프랑스 제4공화국으로 넘어가면서 1947년 대선이 된다.2. 배경
1932년 폴 두메르 대통령이 암살된 뒤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알베르 르브룅이 당선된다. 알베르 르브룅은 당선 이후 좌파와 우파 내각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의원내각제였기에 르브룅의 실권은 제한적이었고 총리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하였다.3. 선거 결과 : 4월 5일
4. 선거 이후
알베르 르브룅이 1939년 선거에서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하였다. 프랑스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여 마지노선을 구축하여 철저하게 대비하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프랑스를 침공하자 허망하게 무너진다. 알베르 르브룅은 나치 독일의 침공에 결사항전의 뜻을 밝혔으나, 막심 베이강의 압력으로 인해 실패하였다. 파리 함락 이후인 1940년 7월 10일, 비시 프랑스가 수립되고 프랑스 제3공화국은 붕괴하였다.파리 해방 이후 프랑스 임시정부에서는 1940년 7월 10일에 공표된 프랑스 헌법(일명 페탱 헌법)을 무효화하였고 알베르 르브룅이 1946년까지 재임한 것으로 허용하였다. 르브룅은 페탱 헌법의 무효와 동시에 자신은 사임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