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없이 할머니와 단둘이 울산에서 살았다. 중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서울로 올라와 돈을 벌었다.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학벌은 짧지만, 감성은 풍부한 대책 없는 낭만파. 풀 한 포기, 들꽃 하나에도 흔들린다.
대학교 우유배달 시절 진숙을 만났을 때, 삶의 이유를 찾았다. 사랑하면 닮아가야 하는데, 무식한 자신을 바꾸기 위해 몰래 책을 읽는다. 자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자신보다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자식 셋을 대학에 보내고, 아파트를 사고(융자포함), 꿈에 그리던 자가 트럭을(융자포함) 샀다. 트럭운전만 25년. 운전한 거리를 합치면 지구를 몇 바퀴는 될 거다. 하필이면 명절, 연말연시, 휴가철이 성수기다. 그래서 가족들끼리 보내는 그 시기를 아주 잠깐 얼굴만 비췄다. 그때마다 외로웠다. 가족들은 이미 자신과 멀어져 있다.
50이 넘어서부터 말이 없어졌다. 산이 좋아졌다. 최근에는 밤 산행의 매력을 알았다. 평생 일만 했는데, 일이 줄어 취미 생활을 조금 많이 한다고, 돈을 조금 못 벌어온다고, 아내가 졸혼을 요구했다.
가족들, 특히 아내인 진숙에게 매정하게 굴었던 남편이자 아버지였지만 사고를 계기로 기억을 잃고 청년 시절의 기억으로 회귀한다. 12화에서 그 이유가 드러났는데, 진숙이 보던 책에 그어진 줄을 보고 지금까지도 은주의 친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고 오해했던 것이었다. 그 책도 하필이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였기에 더더욱 오해할 수 밖에 없었다.
명문여대를 나와 최근까지 변리사로 일하다 퇴사했다. 자신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자존심이 강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어머니, 여동생, 남동생을 포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차갑고 냉정하다. 단, 아버지 상식에게는 예외다. 유일하게 아버지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노동을 하는 아버지의 정직한 삶을 응원한다.
태형과 결혼 후, 평범한 삶을 꿈꿨다. 임신을 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40대가 가까이 되면서 포기했다고 선언했지만, 사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번번이 임신에 실패하고, 태형은 점점 멀어졌다. 10년 후의 자신과 태형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우리는 여전히 부부일까? 그것조차 답할 수 없다.
첫째와 셋째 사이의 둘째. 내 마음보다 남의 마음을 살피는 데 더 익숙하다. 가족 모두와 1:1 놀이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와 코인노래방, 어머니와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보기, 막내와는 온라인 게임하기 등. 단, 큰언니 은주는 예외다.
이과생인 언니와 문과생인 자신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생각한다. 잘나가는 언니와 달리, 서울 근교 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와 백수를 전전하다가 겨우 출판사에 취직했다.
배려왕이란 별명답게 출판사 안에서는 고민 상담가가 되기도 한다. 자기의 시간을 선뜻 내준다. 양보하는 게 편하고, 웬만한 일은 호탕하게 웃어넘기고, 진짜 원하는 건 내 것이 아니라고 미리 포기하며 살았다. 마음이 약해서 사람을 잘 믿고, 잘 휘둘린다.
그러던 중 출판사에 새로 부임한 부대표 임건주를 만난다. 잊고 살았던 연애 감성을 깨워준 사람. 문제는 이런저런 소문으로 가득한 미스터리의 남자란 것. 그래도 은희는 건주를 잡고 싶다. 남사친 찬혁의 연애코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 이때, 아버지 기억은 왜? 22살 청년이 되어 있는가?
부부 교사 밑에서 자라 스스로 혼자 컸다고 말한다. 부부 교사라 아버지, 어머니 역할이 모호했다. 그때그때 시간이 날 때마다, 아버지가 어머니 역할을 하기도 했고, 어머니가 아버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영향인지 남녀의 구분이 없고, 고정관념, 관습, 차별 등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이다.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사진작가가 꿈이었다. 관찰을 좋아해서 사진을 찍게 된 건지, 사진을 좋아해서 관찰을 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잘 관찰하고 그 사람이 숨기는 마음도 잘 알아차린다. SNS, 포털에 광고 영상을 찍어주며 번 돈으로 마침내 ‘황금거위’ 회사를 차렸다.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은희의 연애코치까지 맡게 됐다.
“은희 너 바람둥이 수업 진심이야?”
연애코치를 빙자해서 은희와 멀어져 버린 4년을 연결하려고 하는 걸까? 사물은 카메라를 갖다 대면 선명하게 보인다. 찬혁은 지금까지 꽤 선명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은희와 관계는 대학 시절에도, 지금도 단 한 번도 선명한 적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