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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36:55

후원하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후원하이.jpg
이름 후원하이(胡文海 )
출생 1954년 11월 11일
중화인민공화국 산시성 위츠구, 다위커우촌
사망 2002년 1월 25일 (향년 47세)
중화인민공화국
직업 탄광 경영자
1. 개요2. 전개3. 발단4. 진술5. 판결6. 여담

1. 개요

중화인민공화국의 범죄자.

마을 농촌 간부들의 부패에 대해 따지고 고소를 했으나 일이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작당하고 농촌 간부들을 포함해 명절인 춘절을 보내던 민간인들에게도 총기 난사를 벌여 14명을 죽이고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보복살인의 혐의로 체포되어 2002년 1월 25일에 총살형에 처해졌다.

2. 전개

1993년, 후건성이 촌 지부 서기 직책을 맡고 있었을 때 후원하이는 일찍이 촌락의 탄광에 계약을 해서 3년간 일을 했었다. 몇 농민들의 말에 의하면 후원하이는 열심히 일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5년 후인 1998년 초, 그가 살던 다우커우촌에서 그의 탄광을 새로 운영할 입찰자를 채용하려 했었다. 다른 농민들은 이 비싼 입찰가격을 낼 수 없었고, 결국 농촌의 간부들은 이 탄광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운영하기로 결정을 내렸었다. 후원하이는 이러한 결론에 대해 인정 하지 못하고 자기의 의견을 내었으나 농촌의 간부 중 한명인 후건셩이 그의 요구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일로 후원하이는 후건셩에게 앙심을 품었다.

1999년, 한 석탄 매매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인 구룬취안은 후원하이를 찾아 와 후원하이에게 알려주는 바, 다우커우촌 탄광에서 3년간 5만톤의 석탄을 생산했으며 간부들이 100만 위안이나 되는 탈세를 했으나 겨우 25만 위안만 관리비 명목 상 준다고 자신이 상부에 고발 했었다고 했다. 결국 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안에서 5~6번 감찰원을 보냈으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이 사건에 대해 일처리도 흐지부지 끝났다. 그리고 이 고발로 구룬취안은 또 다른 석탄 관련업계 소장에게 두 대 얻어 맞았다고 말했다. 후원하이는 이런 소식들을 들어가며 농촌의 부패를 더욱 파고 들었다.

1999년 6월 19일, 후원하이가 밭에 물을 대고 있을 때 농촌의 가오옌수, 가오옌당 형제와 언쟁이 벌어졌고 언쟁 도중에 가오씨 형제들이 삽으로 후원하이를 때려서 후원하이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날 저녁 가오씨 형제와 네 식구는 후원하이의 보복이 두려워 밤에 이사를 갔다. 둘째 날, 후원하이는 병원에서 퇴원해 다시 집에 돌아왔고 지부 서기였던 후건셩이 그의 집에 찾아와 촌 지부 서기는 가오옌당의 형부인 리리셩이 인계 받았고 저번 사건은 잘 해결 되었으니 중재비로 2만 위안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후원하이는 가오씨 형제들이 자기를 해한 것에 분명히 배후가 있다고 생각했다.

후원하이는 그 때의 일을 곰곰히 생각하며 자기는 어릴때부터 동네에서 알아주는 한 성깔에 힘도 세고 지금은 부자인데 대체 왜 그것도 원래 이 동네 토박이도 아닌 허베이성에서 이사 와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자기와도 딱히 문제가 없는데 왜 갑자기 찾아와 미치지 않고서야 언쟁을 벌여 사태를 벌인 가오씨 형제들의 태도가 말이 안돼서 배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후원하이는 이에 대해 누군가 가오씨 형제를 시켜 자신을 암살 해 입을 막으려 했다고 짐작했다. 그래서 후원하이가 가오씨 형제 중 한명인 가오옌수를 찾아가 3~4대 때리며 배후가 누구냐고 물었으나 가오옌수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후원하이의 농촌 간부들인 후건셩, 리리촌, 류하이셩 등이 배후라고 생각했다. 후원하이는 이에 복수하기로 결심을 했고 류하이왕[1]이라는 사람에게 사례금을 주며 뇌관 5개, 폭탄 3.7kg을 구해오게 했다[2]. 거사일은 중국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춘절이고 거사일을 기다리는 동안 증거를 모으고 기회를 기다렸다. 이때부터 사실 상 후원하이는 위험도가 극에 달했다.

2001년 후원하이가 경영하는 탄광이 본격적으로 경쟁적인 입찰에 들어갔지만 그는 이것에 대해 농촌 간부들이 음모를 계획하고 뒤에서 수작 부리는것이라 여겼다. 2001년 1월에 후원하이는 1992~1993년간 탄광에서 일했던 봉급을 받게 된다. 그는 이 봉급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농촌 간부들이 몰래 500만 위안을 횡령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후원하이는 더더욱 분노감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동네 집집을 방방곡곡 뛰어다니며 121명의 일반인은 물론 간부, 당원들의 사인도 받고 그것을 등에 업어 8월에 부패한 농촌 간부들을 고발했다. 그러나 내용에 대한 자료와 사인의 출처가 불분명했고 8월이 지나가면서 이 일처리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3. 발단

2001년 10월 26일 저녁 7시. 후원하이는 류하이왕에게 후건셩과 전 탄광 회계원인 리지를 자기 집으로 꾀어내라고 사주했다. 결국 후건셩과 리지는 류하이왕에게 속아 그의 집에 갔다가 후원하이와 그의 동생 후원칭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뒤 그 동안 벌였던 부패행위를 손수 적으라며 협박 당했다. 그래도 끝까지 따르지 않자 후원하이는 산탄총을 들고 류하이왕은 소방도끼를 든 채 둘을 대문 밖으로 끌어냈다. 그들을 데리고 동네 서쪽에 있는 후원하이의 아버지, 후광즈의 집에 데려가는 도중에 근처에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듣고 끌려가던 리지가 갑자기 저항을 했다. 그래서 후원하이는 리지를 쏴 죽이고 후건셩에게 총을 조준했으나 불발 되자 후건셩이 그의 총을 빼앗으려 했다. 류하이왕이 빠르게 소방도끼로 후건셩을 찍어 상황을 모면하며 다시 그에게 한 발 쏘았다. 후건셩은 이 때 죽지 않았지만 죽은척을 했다.

후원하이는 계획대로 류하이왕에게 수고비로 1000위안을 건네 줬고 돈을 받은 류하이왕은 현장을 떴다. 홀로 남은 후원하이는 더더욱 흥분해서 산탄총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마을의 회계일을 담당하는 장칭린의 집을 찾아가 그와 그의 아내, 막내 딸을 쏴 죽이고 가오옌수의 집도 찾아가 그도 죽이고 전에 촌장을 했던 지진당의 집에도 가서 그를 죽이고 지진당의 아내에겐 부상을 입혔다. 그리고 일반인인 후푸롱의 집에 가서 둘 부부도 쏴죽이고 후산지[3]도 찾아가 죽이고 후산지의 며느리, 그 며느리의 매부 둘도 쏴 죽였다. 탄광의 소장이던 류하이셩에게는 부상을 입히고 리리셩의 가족들도 찾아가 죽였다. 그렇게 3시간도 안되는 시간 동안 14명이 죽고 3명이 부상당했다. 희생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71세이고 어린 사람은 10살 이였으며 그 중 두명은 농촌의 간부였다.

그렇게 살인행각을 벌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동생인 후원칭이게 이러저러해서 사람들을 죽였다고 알렸고 그의 동생과 같이 준비해 둔 폭탄가방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외진 길을 따라 타이위안까지 갔다. 타이위안에 도착해서 택시로 갈아 탔지만 이동 도중에 공안의 단속반에 걸려 결국 체포되며 살인행각은 완전히 끝이 났다.

4. 진술

후원하이의 계획
1. 거사를 벌이기 전에 누가 배후인지 조사를 한다.
2. 1997년에 위조 신분증을 샀는데 거사 후에 그 신분증을 이용해 도망친다.
3. 류하이왕에게 부탁해 뇌관과 폭탄을 준비한다. 만약을 대비해 자살용으로 두는것이다.
4. 소방도끼를 구매한다.
5. 그 동안 모은 돈을 다 써버리기. 어차피 죽으면 쓸모도 없어지니 그 동안 성매매도 하고 먹고 마시고 했다고 한다.
그에게 간부들의 부패를 알렸었던 구룬취앤이 후원하이에게 했던 조언
1. 그들을 상대로 고발하기 전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2. 감정적으로 고발 하지 않는다.
3. 자금이 필요하다. (생활하면서 지낼 돈 등등)
4. 자신처럼 조급하기 고발하다가 일을 망치지 말라.
"한명을 죽이나 여러명을 죽이나 어차피 죽는다. 상황이 이러한데 기회가 왔으니 부패하고 타락한 놈들을 제거했다."
"그들이 몇년동안 해 쳐먹은 500만 위안을 보며 부패가 심하다 느꼈다. 하지만 원래는 죽일 생각이 없었고. 적당한 시기에 여러 방면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경찰 : "네가 왜 체포된줄 아냐?"
후원하이 : "그렇다. 사람을 좀 죽였다"
경찰 : "조금이라니 14명이나 죽었다"
후원하이 : "응? 분명히 17명일텐데, 누가 안죽었는지 알거같아 총 두개만 줘. 확실하게 처리할테니"
기자와의 대화 중
"원래는 거사를 마치고 자살하려 했다. 자살도 좋지만 사형을 받아 죽는건 더 좋다. 처음 한 명을 죽였을 때는 살짝 무서웠지만 괜찮았다. 거사를 치를 때 내 정신은 아주 맑았다"

5. 판결

법원은 후원하이와 류하이왕에게 사형(총살)을 선고했고 동생 후원칭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래서 후원하이와 류하이왕은 총살형에 처해졌고 후원칭은 교도소에 복역중이다.

6. 여담

해당 사건을 배경으로 천주정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사건들까지 합쳐 4가지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구성으로 다루고 있다.

[1] 공범 [2] 자살용 [3] 후원하이의 큰아버지 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