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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7 10:28:59

후안 카를로스 오비에도

후안 카를로스 오비에도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번호 43번
알렉시스 고메스
(2004)
레오 누녜스
(2005~2006)
라이언 셰일리
(2006~2008)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번호 46번
마이크 우드
(2004~2006)
레오 누녜스
(2007~2008)
루이스 에르난데스
(2009)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46번
조 넬슨
(2008)
후안 카를로스 오비에도
(2009~2011)
코이 힐
(2013)
탬파베이 레이스 등번호 46번
조 넬슨
(2009)
후안 카를로스 오비에도
(2014)
바비 윌슨
(2015)
}}} ||
파일:Juan Carlos Oviedo.webp
후안 카를로스 오비에도
Juan Carlos Oviedo
출생 1982년 3월 15일 ([age(1982-03-15)]세)
몬세뇨르노우엘 주 보나오
국적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미니카 공화국
신체 188cm / 88kg
포지션 중간계투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 PIT)
소속팀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5~2008)
플로리다 말린스 (2009~2011)
탬파베이 레이스 (2014)

1. 개요2. 선수 경력3. 연도별 성적4. 여담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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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미니카 공화국의 前 야구 선수. 현역시절 포지션은 투수였다.

신분 위조 적발 전에 사용했던 이름인 레오 누녜스(Leo Núñez)로도 잘 알려져있다.

2. 선수 경력

2.1. 마이너 리그 ~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0년 2월 16일 만 16세의 나이로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입단 후 싱글A까지 선발로 육성되었으나, 2004 시즌 후 베니토 산티아고와의 맞트레이드로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적한 이후로는 불펜으로만 나섰다.

2005 시즌 더블A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면서 5월에 처음 빅리그로 콜업되었고, 5월 9일 토론토 블루제이스 원정 경기에서 8회 말에 등판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추격조로 주로 나섰으나, 잘 던지다가 한 번씩 난타당하며 평균자책점을 다 까먹었다. 결국 41경기 53⅔이닝 3승 2패 2홀드 ERA 7.55의 초라한 성적으로 데뷔 시즌을 마감했다. 물론 100패팀 캔자스시티에서 쌩신인이던 누녜스가 할 수 있는건 없었지만.

2006년에 빅리그에서 불펜으로 13⅓이닝을 던진데 그친 누녜스는 선발 복귀를 준비하던 2007 시즌 중도에 밀튼 브래들리와의 맞트레이드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할 예정이었으나, 브래들리가 갑작스레 부상을 입어 트레이드가 무산되었다.

트레이드 무산 후 7월에 콜업된 누녜스는 7월 29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홈 경기에서 6이닝 3피안타 1볼넷 1K 무실점 호투로 첫 선발승을 수확했고, 첫 선발 4경기에서 19이닝 3실점으로 호투하며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이어진 두 경기에서 4이닝 4실점, 6⅓이닝 6실점으로 박살나고 9월에는 불펜으로 돌아갔다.

시즌 성적은 13경기(6선발) 43⅔이닝 2승 4패 ERA 3.92로 마무리. 선발로 나설 때와 불펜으로 나설 때 평균자책점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선발로 던지면서 피OPS .837을 기록한 반면 불펜으로 나서서는 .580에 그치면서 불펜 체질이라는 점만 다시 확인했다.

그 대신 2008 시즌에는 필승조로 승격, 시즌 초반부터 라몬 라미레즈와 함께 마무리 호아킴 소리아의 앞을 막는 셋업맨 역할을 했다. 그러나 1점대 ERA로 호투하던 5월 말 부상을 입어 두 달 가량 이탈했고, 복귀 후에는 구위가 많이 떨어지면서 추격조로 밀려났다. 부상 전까지 21경기 21이닝 7홀드 ERA 1.71로 좋았던 성적이 부상 복귀 후 기간만 따지면 24경기 27⅓이닝 0홀드 ERA 3.95로 확 나빠졌다.

시즌 성적은 45경기 48⅓이닝 4승 1패 7홀드 평균자책점 2.98로 마무리.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지만 부상 이후의 부진이 아쉬웠다.

2.2. 플로리다 말린스

파일:Leo Nunez.webp
2008 시즌을 끝으로 마이크 제이콥스와의 맞트레이드로 플로리다 말린스로 이적했다.

말린스에서 누녜스는 마무리 맷 린드스트롬의 앞에서 셋업맨으로 활약했는데, 중간중간 통타당하는 경기가 있어 성적이 다소 들쭉날쭉해 3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했다. 그러다 린드스트롬이 5점대 ERA로 부진을 겪다가 6월 말에 부상으로 이탈했고, 누녜스에게 마무리 자리가 넘어오게 된다. 마무리 전환 후에는 세이브 상황에선 그럭저럭 괜찮게 던졌지만, 동점이거나 큰 점수차일때 실점하거나 가끔 한 번 대량실점으로 블론세이브를 해서 안정감은 그닥 좋지 않았다.

그렇게 2009 시즌 누녜스는 75경기 68⅔이닝 4승 6패 26세이브(7블론) 14홀드 ERA 4.06을 기록하며 마무리했다. 캔자스시티 시절 고질적 문제였던 많은 피홈런이 지난해 드디어 교정되나 싶더니 다시 롤백되면서 롤러코스터 릴리버의 면모를 더욱 키워줬다. 완전히 마무리로 전환한 이후 성적만 보면 37경기 35이닝 2승 3패 24세이브(4블론) ERA 4.11이다.

시즌 종료 후 처음으로 연봉조정 대상자가 되었고, $2M 달러의 연봉에 합의했다.

2010 시즌은 시즌 첫 등판부터 장렬한 볼질과 함께 블론 세이브로 시작했지만, 그 후로는 안정감을 찾으며 5월까지 2점대 초반의 ERA를 유지했다. 6월 말에 잠시 흔들렸으나 금세 페이스를 되찾은 누녜스는 7월 한 달간 10세이브를 수확하며 맹활약, 말린스의 확실한 마무리로 자리잡는 듯 했다.

그러나 8월 들어 세이브 없이 2연속 블론으로 불안감을 노출한 누녜스는, 마지막 4차례의 등판에서 연속으로 실점하더니 8월 2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원정 경기에서는 2피홈런 3실점으로 장렬히 산화하며 블론+패전을 기록했다. 이때까지 29세이브를 기록한 누녜스의 블론 갯수는 8개. 결국 9월 한달간 클레이 헨슬리에게 마무리 자리를 넘겨주고 셋업맨으로 강등된 채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성적은 68경기 65이닝 4승 3패 30세이브(8블론) 5홀드 ERA 3.46. 이해 누녜스는 높아도 7 중후반대였던 K/9을 9.8까지 끌어올린 반면, 약점이던 피홈런을 크게 줄이면서 드디어 마무리로 안착하는 듯 했다. 그러나 8월 한 달간 10경기 9⅔이닝 12실점 3세이브 3블론이라는 파멸적인 성적으로 시즌을 망쳤다. 셋업맨 전환 후 다시 안정세를 찾긴 했으나 참 용두사미라고 하기 좋은 성적이다.

그래도 발전을 인정받아 연봉 협상에서 $3.65M의 연봉에 합의했다.

2011년에는 다시 롤러코스터 마무리로 돌아갔다. 사실 5월까지 19세이브 1블론으로 세이브 성공률 자체는 흠잡을 데 없는데, 이상한 데서 실점해서 경기를 똥줄타게 만들거나 한 번에 대량실점하는 문제가 또 나오면서 ERA는 3점대 밑으로 내려가지를 못하는 중.

6월에 한 차례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7월 한 달간 8세이브 노블론으로 안정감을 되찾는 듯 하더니 귀신같이 약속의 8월이 찾아오자 와르르 무너졌다. 누녜스는 8월 한달간 9경기 8⅔이닝 11실점 3세이브 3블론으로 지난 시즌의 판박이같은 성적을 냈고, ERA도 4점대 중반으로 치솟았다. 그나마 이번에는 마무리에서 쫓겨나지는 않고 9월에 호투하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1 시즌 성적은 68경기 64⅓이닝 1승 4패 36세이브(6블론) ERA 4.06을 기록했는데, ERA 뿐만 아니라 K/9, HR/9, BB/9 등 세부지표가 모두 지난 시즌에 비해 나빠졌다. 여기에 두 해 연속으로 8월에 대참사를 일으키며 명백한 체력 문제를 드러내고 또 다시 용두사미 시즌을 만든건 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시즌이 말미로 접어들던 2011년 9월 22일, 갑작스럽게 누녜스가 제한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 사정으로 급하게 귀국해야 한다는 설명만 있어서 사람들이 의아해했는데, 신분 위조 사실이 확인되었다.

누녜스의 본래 이름은 '후안 카를로스 오비에도'로, 당초 1983년 8월 14일생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한 살 많은 1982년 3월 15일생이었다. 누녜스, 아니, 오비에도와 절친하던 팀 동료 에드워드 무히카의 증언에 의하면, 피츠버그와 협상하던 당시 나이를 어리게 속여 계약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절친한 친구이던 레오 누녜스의 신원을 도용했다고 한다. 대놓고 계약금을 노리고 사기를 친 것이다.

오비에도는 현지 경찰 조사에서 신분 위조 사실을 인정했고, 2012년 오비에도는 제한 선수 명단에서 해제됨과 함께 MLB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총 14주에 해당하는 징계를 받았다. 비자 발급도 취소되어 재발급받아야했다.

그리고 신구장 입주와 함께 팀 이름까지 마이애미로 바꾸며 공격적인 투자로 2012 시즌을 준비하려던 말린스는 졸지에 마무리 투수가 사라지는 날벼락을 맞았고, 결국 FA 시장에서 마무리 투수에 3년 $27M이라는 거금을 투자하는 결단을 내린다. 문제는 그렇게 데려온 마무리가 말린스 최악의 FA 먹튀를 뽑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 히스 벨이었다.

그나마 오비에도가 징계 기간 후 잘 던졌으면 모르겠는데, 징계 규정상 허용된 트리플A 리햅 등판을 갖다가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부상을 당했다. 얄짤없이 토미 존 수술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말린스는 멸망했다. 어차피 오비에도가 아니었어도 이래저래 망할만한 상황이긴 했다만, 오비에도 건은 말린스가 해도해도 안풀리는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참고로 징계와 부상으로 한 경기도 안 던진 오비에도의 2012년 연봉은 무려 $6M이었다. 실제로는 징계로 인해 절반 가량만 수령했지만.

결국 시즌 종료 후 IL 해제와 함께 논텐더 방출되었다.

2.3. 탬파베이 레이스

2013년 1월 22일, 탬파베이 레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1년 $2M의 클럽 옵션과 옵션 포기시 지급되는 3만 달러의 바이아웃이 포함되어있다.

3월 31일에 메이저 계약으로 전환되었고, 곧바로 60일 DL에 등재된 채로 재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시즌 중에 복귀하지 못하고 계약이 만료되었다.

레이스는 클럽 옵션을 실행하지 않았지만 오비에도와 재계약 협상을 진행했고, 1년 $1.5M에 재계약했다. 재계약 후에도 재활을 이어가다가 2014년 4월 21일에 드디어 빅리그 로스터에 등록되었다.

4월 24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탬파베이 유니폼을 입고 첫 등판을 가졌고, 이후 패전조로 주로 등판했다. 꽤 괜찮은 투구 내용을 보여주었으나 6월 중순부터 실점하는 경기가 늘어났고, 7월 7일 캔자스시티전에서 0:2로 지던 경기를 8회 초에 나와 2이닝 7피안타 4실점으로 터뜨려버린 후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이후 ⅔이닝을 더 던지는데 그쳤고, 7월 19일 미네소타 원정에서 ⅓이닝 1실점한 것을 끝으로 한동안 등판하지 않았다.

그리고 7월 26일, 제레미 헬릭슨의 콜업과 함께 DFA되었다. 클레임 없이 웨이버를 통과했고, 8월 3일 최종 방출 처리되었다.

2.4. 이후

레이스에서 방출된 이후 자국 윈터 리그에서 아길라스 시바에냐스 소속으로 몸을 만들었고, 2015년 1월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빅리그 진입에 실패해 3월 28일 방출되었다.

이후 도미니카에서만 두 시즌 더 공을 던진 후 조용히 은퇴했다.

3. 연도별 성적

4. 여담

5.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