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2. 정사 삼국지
태사승을 지내 220년 10월 9일에 위나라가 한나라를 대신해야 한다는 내용의 표를 조비에게 올려 참위인 당도고를 통해 위나라가 한나라를 대신하는 것의 정당성을 설파하면서 선양을 권했다.옛날 백마의 수령이 이운이 말했다면서 허 땅이 창성할 기운이 당도고[1]에 나타났다고 당도고가 허 땅에서 창성하는 것이 당연하며, 길을 가로막고 우뚝해 높이 솟았다고 해서 그 뜻을 가진 위나라를 상징하며, 그 의미는 국가 권력의 상징인 궐과도 통해 위나라를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한나라의 대를 잇는 것이 마땅하고 위나라의 기틀이 허 땅에서 한나라가 허도에서 끝날 징조라면서 당도는 천하의 권력, 고는 위나라이니, 위나라가 한나라를 대신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허지가 표를 올린 후에는 유엽, 부손, 환계, 진교, 소림, 동파(董巴) 등이 허지가 말한 것을 인용해 표를 올렸으며, 11일에는 사마의, 정혼, 양훈, 포훈, 무주, 13일에는 유이, 위진, 25일에는 화흠, 가후, 왕랑 등이 허지가 말한 것을 인용해서 표를 올렸다.
223년에는 태사령을 지내면서 화흠, 왕랑, 진군, 제갈장과 함께 각기 제갈량에게 천명과 인간사를 진술하면서 나라를 들어 번국이 되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으며, 제갈량은 이에 답장을 보내지 않고 정의라는 글을 지었다.
3. 삼국지연의
조조가 병에 걸리면서 《 주역》으로 점을 쳐보게 하자 관로를 부를 것을 권하면서 그의 재능을 설명해주며, 화흠이 헌제에게 조비를 선양시키도록 할 때 이복과 함께 동행하며, 헌제에게 한나라의 기운이 다해 폐하의 별이 밝지 않다면서 조비에게 빨리 선양할 것을 권한다.
[1]
길을 당해 높고 크다는 뜻이자 고대의 궁문 바깥 양쪽에 높이 솟은 누각과 관대인 위궐(魏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