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한영돌(韓永乭) |
생몰 | 1910년 9월 7일 ~ 1943년 5월 12일 |
출생지 |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구래리 |
사망지 | 경기도 인천부 화리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한영돌은 1910년 9월 7일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구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1년간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을 뿐, 그 후 18세 경까지 인천에서 제승업(製繩業)·정미업 또는 부두에서 노동에 종사하였다. 1932년 1월 12일, 그는 인천 자택에서 안문식(安文植) 등과 함께 조국독립 및 신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인천노동조합(仁川勞動組合)’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9월 10일 자신의 집에서 정태옥과 노동조합 조직운동 및 공청재건운동의 제휴 활동에 대해 협의하고, 같은 달 13일 정태옥·신수복(愼壽福) 등과 함께 ‘조선공산청년회재건 인천조직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활동방법에 대해 협의하는 한편, 9월 15일부터 10월 중순 경까지 위원회를 개최하여 활동방침, 교양방법 등을 논의하였다.그러나 1931년 제2차 태평양노동조합 사건과 1932년 제2차 조선공산청년동맹재건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5년 10월 2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 200일 통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인천부에서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43년 5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한영돌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