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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7a0> 출생 | 1895년 2월 18일 |
러시아 제국 연해주 하연추 마을 | |
사망 | 1938년 5월 11일 |
소련 러시아 SFSR 극동지역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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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당시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재러 사회주의 계열의 한인 독립운동가. 2007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한성걸은 1895년 2월 18일 러시아 연해주의 하연추 마을에서 태어났다. 1915년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그는 러시아 군대에 징집되었으며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1918년 러시아군 소위로 군에서 제대한 후 그는 본격적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적백내전이 발발한 후 1919년 11월 시베리아 지역에서 일어난 반콜차크 반란에 참여하였다. 봉기가 진압된 후 그는 콜챠크가 지휘하는 백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당시 시베리아에 출병했던 일본군에게 넘겨졌다. 일본군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받은 한성걸은 이후 다른 적군 소속 빨치산 대원들의 구출작전 덕분에 풀려나게 되었다. 이후 고려혁명군과 군정위원 혈성단 부단장으로 무장투쟁을 벌이던 형인 한창걸이 이끌던 빨치산 부대에 입대하였고 시베리아 내전에 끝날 때까지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에 참가하였다.[출처]1926년부터는 수찬 구역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28년부터는 니콜스크우스리스크 전문학교의 주임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는 니콜스크우스리스크군 인민교육부에서 주임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던 1935년 한성걸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소련 당국에 의해서 체포되었고 6개월간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그 후 1937년 11월 1일 소련 내무인민위원부에 의해 친일 스파이 혐의로 또 한 번 체포되어 1938년 5월 11일 총살되었다. 1958년 6월 5일 연해주 지방재판소 간부회는 한성걸의 복권을 결정하였다.[출처]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리어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