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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성의(聖儀) / 송헌(松軒) |
본관 | 청주 한씨[1] |
출생 | 1881년 8월 28일 |
경기도
광주유수부 돌마면 율리 (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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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0년 10월 30일[2] |
경기도 광주군 | |
묘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율동공원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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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한백봉은 1881년 8월 28일 경기도 광주유수부 돌마면 율리(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서 아버지 한영회(韓榮會, 1846. 11. 14 ~ 1900. 1. 17)와 어머니 김해 김씨(1847. 5. 13 ~ 1912. 5. 25) 김형식(金亨植)의 딸 사이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1919년 3.1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발발하자, 그는 이에 호응하여 동리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권유했다. 그는 1919년 3월 28일부터 29일까지 돌마면의 각 마을을 순회하면서 수백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와 횃불을 들고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밤에는 횃불, 낮에는 태극기와 횃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다 결국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 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7월 9일 경성복심법원과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광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0년 10월 30일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한백봉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의 유해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공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