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피트나(Fitna, Fitnah, fitan; فتن)는 유혹, 시련, 선동, 내전, 분쟁 등의 뜻을 가지는 아랍어 단어이다. 말로써는 개인의 갈등, 혹은 그 갈등을 빚으려는 악의적인 유혹을 뜻하는 단어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이하의 분란을 피트나라고 지칭한다.2. 피트나 목록
2.1. 1차 피트나(656~661)
원인 : 우스만 피살 전개 : 무아위야 vs 알리 결과 : 우마이야 왕조 성립, 카와리지 출현 |
제3대 정통 칼리파 우스만의 암살 이후 벌어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아이샤 빈트 아비 바크르, 무아위야 1세 간의 내전을 말한다.
제4대 정통 칼리파 알리는 자신이 우스만 시해의 공범이라는 의혹에 대해 봉기한 두 세력 중 아이샤를 낙타 전투에서 제압했다. 이어진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와의 시핀 전투에서도 우세를 점했으나, 무아위야 측에서 요구한 협상에 응했다가 승리의 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에 실망한 알리 측의 주전파가 이탈하여 카와리지 세력이 되었고, 알리는 이들을 공격해 거의 괴멸시켰으나 그 잔당에서 파견한 자객에게 시해되었다. 무아위야에게도 자객이 보내졌으나 그는 살아남았고, 알리의 사후 칼리파로 추대된 하산 이븐 알리와 협상해 후자의 지위를 보장하는 대가로 자신이 단일 칼리파로 즉위했다. 이로써 최초의 세습 칼리파조인 우마이야 왕조가 세워졌다.
2.2. 2차 피트나(680~692)
원인 : 칼리파위 세습, 후세인 피살 전개 : 우마이야 조 vs 무크타르 vs 주바이르 조 vs 카와리지 결과 : 우마이야 조의 승리, 시리아 아랍인 중심 중앙집권화 |
무아위야 1세가 붕어하면서 선출이 아닌 아들 야지드에게 칼리파위를 물려주자, 이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란이다. 알리 지지파들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차남 후세인 이븐 알리를 초청했지만 그는 카르발라에서 전사했다.( 카르발라 참극) 한편 메디나의 이븐 주바이르도 반란을 일으켰으며, 칼리파를 칭하고 이라크와 이집트 등 제국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이 주바이르의 반란은 제5대 우마이야 칼리파 아브드 알 말리크의 대에 와서야 진압되었다.
2.3. 3차 피트나(744~750)
원인 : 우마이야 조의 부패, 이라크인 & 마왈리 차별 전개 : 우마이야 조 vs 쉬아, 카와리지, 아바스 가문 결과 : 우마이야 조 멸망, 아바스 조의 성립, 호라산 아랍인 정국 주도 |
우마이야 칼리파조 말에 일어난 대봉기로, 호라산의 아부 무슬림이 주도한 반란군이 우마이야 칼리파를 격파하고 아바스 왕조의 성립을 불러왔다. 이때 우마이야가와 사이가 나쁜 시아파와 카와리지 등도 참여했지만, 아바스 칼리파조 설립 이후 이들은 그대로 팽당했다.
2.4. 4차 피트나(811~827)
원인 : 알 아민과 알 마문 형제의 계승 분쟁 전개 : 우마이야 부흥군 vs 알 아민 vs 알 마문 결과 : 알 마문의 승리, 지방 분권화 심화[1], 이란 정체성 부활의 진전 |
아바스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가 붕어한 이후, 그의 두 아들이었던 알 아민과 알 마문 사이에 일어난 내전을 의미한다.
2.5. 5차 피트나(865~866)
원인 : 알 무스타인과 사마라 튀르크 군부 간의 갈등 전개 : 바그다드의 알 무스타인 vs 튀르크 군부와 알 무타즈 결과 : 튀르크 장군들의 실세 등극, 툴룬 왕조 성립 등 압바스 조의 쇠퇴 |
- 자세한 내용는 알 무스타인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