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물이 설립한 브랜드에 대한 내용은 발망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피에르 발망 Pierre Balm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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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피에르 알렉상드르 클로디위 발망 Pierre Alexandre Claudius Balmain |
출생 | 1914년 5월 18일 |
[[프랑스 제3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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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2년 6월 29일 (향년 68세)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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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패션 디자이너 |
학력 | 에콜 데 보자르 ( 건축 / 중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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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자신의 이름을 딴 명품 패션 브랜드 발망의 설립자이다.단연 20세기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특히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더불어 고급 여성복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2. 생애
1914년 프랑스 사부아에서 태어난 피에르 발망은 어렸을 적부터 옷에 큰 관심을 보였고 패션계에 진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심하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1933년 파리로 상경해 에콜 데 보자르 건축학으로 진학한다. 하지만 여전히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접지 않은 그는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의상에 대해 공부했고, 1934년 당시 유명 디자이너 에두아르 몰리뉴의 작업실을 방문한 발망은 우연치 않게 몰리뉴의 눈에 띄게 되었다. 이로써 발망은 학교를 그만두고 1934년부터 몰리뉴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이후 5년 간 몰리뉴의 밑에서 일하던 발망은 그 실력을 인정받아 1939년부터 뤼시앵 를롱과 함께 일하게 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2년 간의 군복무를 했다. 시간이 흘러 제대 후 를롱의 패션 하우스로 복귀한 발망은 그 유명한 크리스티앙 디오르과 함께 컬렉션의 책임자로 훌륭한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이후 둘이 같이 부티크를 개점하고자 했지만 결국 1945년 발망이 먼저 자신의 작업실을 설립함으로써 둘은 자연스레 결별했다. 발망은 자신의 이름을 딴 피에르 발망이라는 브랜드를 내걸어 패션업뿐만 아니라 소피아 로렌, 브리지트 바르도, 비비안 리 등 많은 여배우들의 영화, 연극 의상들을 제작해 명성을 널리 떨치게 되었고, 1951년 기성복 라인을 확장해 광폭적인 사업을 펼쳐나갔다.
이후 12년 간 열심히 활동하던 피에르 발망은 가을 컬렉션을 준비하던 중 간암으로 인해 1982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