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표영각(表永珏) |
생몰 | 1869년 ~ ? |
출생지 | 평안남도 순천시 순천면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표영각은 1869년경 평안남도 순천시 순천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천도교구장 김기수(金基洙)의 주동으로 은산면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일으키자, 순천읍내 헌병대는 읍내 천도교구장 최단봉(崔丹鳳)과 기독교의 표영각, 김점환(金占煥),유응진(劉應鎭) 외 7~8명을 불러 만세시위를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표영각 등은 오히려 거사를 서둘러 단행하기로 결심했다.3월 6일,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합세한 2천여 명의 군중이 대회를 열고 만세시위를 벌이면서 가두행진을 했다. 그러나 일본군 수비대가 출동하여 군중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이 과정에서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후 차철수(車喆洙)를 비롯한 6명의 천도교인과 표영각을 비롯한 5명의 기독교인이 체포되었다. 표영각은 1919년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가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표영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