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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BEARER |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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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054b5>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본명 |
William Alvin Moody 윌리엄 앨빈 무디 |
별칭 |
Mr. X Dr.Rigor Mortis Percival Pringle III Percy Pringle III Paul Bearer |
출생일 | 1954년 4월 10일 |
사망일 | 2013년 3월 5일 (향년 58세) |
출생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앨라배마 모빌 |
가족 |
배우자 다이애나 맥돌[1] 슬하 2남[2] |
링크 | 공식 홈페이지 |
2. 개요
Ohhh yeah!
WWE, TNA에서 활동했던 프로레슬러 / 매니저. 특유의 진한 메이크업, 그리고 언더테이커와 케인의 매니저로 유명하다.
'폴 베어러'(Paul Bearer)라는 링네임은 운구를 하는 상두꾼, 즉 '관을 매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 pallbearer에서 유래하였다.
3. 커리어
3.1. WWF 입성 이전
그는 10대 시절부터 레슬링과 인연을 맺었다. 일찍이 레슬링 경기 사진 작가로 활동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미 공군에 입대, 4년간 복무했다. 군인 시절에도 레슬링을 잊지 못해 인디 단체에서 활동하던 그는 전역 후 1974년 프로레슬링 매니저로 입문했다.1976년에 잠깐 장의사로 일했다가 1978년, 퍼시벌 "퍼시" 프링글 (Percival "Percy" Pringle)이라는 링 네임을 달고 숀과 스티브 심슨의 매니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4년, 플로리다 선수권 대회에서 프링글 캐릭터를 사용하고 텍사스 월드 클래스 챔피언십에 매니저로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수 많은 선수들을 관리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는 스티브 오스틴이 있다.
3.2. WWF 입성
1990년 WWF에 입성했다. 빈스 맥맨은 장례 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경험을 살려 폴 베어러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3] 폴 베어러는 처음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였지만 이후 1991년, 언더테이커의 매니저 활동을 위해 턴힐하였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에 기괴하고 무서운 캐릭터로 바뀌었다. 눈을 희번떡하게 뜨며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감을 주는 언더테이커라는 장의사 기믹의 캐릭터에 언더테이커를 조종할 수 있는 유골함[4]을 들고 다니는 기괴한 화장을 한 폴 베어러까지 합쳐지니 두려움은 두 배가 되었고 큰 인기를 끌었다. 폴 베어러가 초창기 언더테이커의 흥행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5].
이후 각본상 베어러가 언더테이커의 친모와 바람을 피워 (...) 언더테이커의 동생, 케인이 탄생하게 된다[6]. 이 둘의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베어러가 언더테이커를 배신하고 아들인 케인의 매니저로도 활동했다. 이 시기에는 그 역시 케인의 아버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인 듯 특유의 기괴한 화장을 지우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활동했다. 1998년 케인을 배신하면서 턴힐, 언더테이커의 매니저인 폴 베어러로 다시 돌아간 뒤 1999년에 스테이블 '미니스트리 오브 다크니스'에도 가담했다. 그러면서 다시 과거의 기괴한 화장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언더테이커의 부상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된 그는 2000년, 케인의 매니저로 잠시 돌아왔다가 WWF 레슬매니아 2000 이후 매니저 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에이전트, 스테이지 매니저 등으로 활동하다 계약이 끝난 2002년에 WWF를 떠났다.
3.3. 짧은 TNA 활동, 그리고 WWE로 복귀
퍼시 프링글 3세 (Percy Pringle III)라는 링 네임으로 TNA에 복귀해 1년 정도 활동하다 2003년, 다시 WWE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 때 WWE의 중역인 짐 로스가 회사에 다시 돌아와 달라고 요청했지만 베어러는 이를 거절했다. 이 때 베어러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심각한 비만이였고, 이로 인해 온갖 질환과 우울증까지 앓고 있었던 그는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위 절제술을 받았고 WWE에 복귀해주면 수술비를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받고서야 WWE에 복귀할 수 있었다.2004년, 레슬메니아 XX에서 언더테이커와 케인의 경기에서 '데드맨'으로 돌아온 언더테이커의 매니저로 등장했다. 이후 매니저 활동을 지속하다 위 절제술의 부작용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기에 더들리 보이즈에 의해 납치당하는 각본을 수행했다. 이후 수행한 각본이 아주 압권인데, WWE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2004)에서 언더테이커와 더들리 보이즈의 대립 중 언더테이커가 자발적으로 패하지 않는다면 폴 베어러가 묶여 있는 유리관 안에는 계속 시멘트가 흘러내려서 시간을 지체할 경우 폴 베어러는 그대로 시멘트 속에 파묻히게 되는 상황이었다. 언더테이커는 그런 상황 속에서 더들리 보이즈와 맞섰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폴 헤이먼은 폴 베어러를 완전히 묻어버리려고 했지만 언더테이커가 벼락을 내려 그를 제지했다. 언더테이커는 폴 베어러를 구해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폴, 이게 최선이오. 고이 잠들기를..."이라는 말과 함께 시멘트 속으로 그를 묻어버렸다.
2007년, 위 절제 수술 후 체중을 감량한 모습. 화장을 안 했을 때에는 기괴함은 어디가고 평범하고 후덕한 동네 아저씨다.
이후 WWE에 간간히 얼굴을 비추다 ROH 등 인디 단체에서 활동하던 그는 2010년, 케인과 언더테이커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경기에서 다시 한 번 폴 베어러 기믹으로 등장했다. 이후 2010 헬 인 어 셀에서 다시 언더테이커를 배신하고 케인의 매니저로 활동하다 2010년 12월 10일, 스맥다운에서 에지에 의해 추락사하게 된다. 2012년에도 이벤트성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4. 사망
2013년 3월 5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3일 전에는 사교 클럽에서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호흡 곤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사실 이 외에도 베어러의 건강은 딱 봐도 매우 좋지 않았는데, 몸무게가 심각했을 때에는 238kg 였다. 그나마 심한 비만으로 인해 온갖 합병증과 우울증까지 겹쳐 위 절제술 이후 100kg나 감량했지만 이미 합병증이 그를 삼키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망 이후에도 각본으로 계속해서 등장했다. CM 펑크와 언더테이커의 대립 중에 사망했는데, CM 펑크가 베어러를 조롱하거나 그의 유골함을 던지면서 놀거나 언더테이커에게 베어러의 분골을 쏟아붓는 등 그야말로 고인드립 + 도발을 시전했다[7]
이후 레슬메니아 29에서 언더테이커가 CM 펑크를 꺾고 21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언더테이커는 고인이 된 그를 추모했다.
이후 2014년, 명예의 전당에 추대되었다.
2020년 11월 22일에 열린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열린 언더테이커의 은퇴 세그먼트에서 언더테이커의 연설이 끝나고 언더테이커의 완전한 은퇴를 알리는 종이 경기장에 울릴 때 유골함을 들고 있는 생전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등장한다.
5. 여담
- 2016년, 전당포 사나이들에 폴 베어러의 명예의 전당 입성 반지가 매물로 등장한 적이 있다. 그런데 유족들은 그 반지는 가짜라고 주장했다.
- 살이 어마무시하다.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갔을 때는 238kg나 나갔고, 위 절제술을 통해 100kg 정도를 감량했다. 군 복무 시절과 장례 관련 업종에 복무했을 때와 레슬링에 몸 담을 때의 모습을 비교하면 갑작스럽게 살이 엄청나게 불어난 것을 알 수 있다.
6. 둘러보기
2014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
1978 - 2009
[2]
장남 마이클 무디는 2014년 사망, 차남 다니엘 무디는 인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3]
이 캐릭터 철자가 Paul Bearer인데, 1글자만 바꿔서 Pallbearer라고 하면 상여꾼, 장례식에서 관을 들어주는 사람을 뜻한다.
관짝밈에서 관 짊어지고 신나게 스텝을 밟는 그 청년들도 공식적으로는 Pallbearer다.
[4]
데뷔 초기에는 언더테이커를 조종하는 미스테리한 힘이 봉인된 특템 정도의 위치에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언더테이커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고정화 되었다.
[5]
초창기 언더테이커가 침묵의 캐릭터일때는 언더테이커의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6]
일단 폴 베어러가 언더테이커에 등을 돌린 각본은 1996년 섬머슬램 당시 맨카인드와 언더테이커 간의 WWF 역사상 최초의 보일러룸 매치에서였고 여기서 베어러가 언더테이커를 배신하고 맨카인드와 합세하면서 대립각이 세워지게 된다.
[7]
당연히 유족의 동의 하에 진행된 각본이었지만
랜디 오턴의 에디 지옥드립급으로 엄청난 비판을 들었다. 펑크 역시 해당 각본을 수행하는 것을 크게 불편해했다고
[8]
카이리 같은 경우 요트 선수 출신이라는 이력을 해적이라는 기믹으로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