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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비나수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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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포 비나수오르(Po Binasuor)
아답아자(阿答阿者 / A Đáp A Giả(아답아지아))
제봉아(制蓬峩 / Chế Bồng Nga(쩨봉응아))
생몰기간 ????년 ~ 1390년
재위기간 1360년 ~ 1390년

1. 개요2. 행적3. 평가

1. 개요

참파 제13왕조의 제3대 국왕. 베트남의 사서에서의 이름은 제봉아(制蓬峩, Chế Bồng Nga)이며, 명사에서의 다른 이름은 아답아자(阿答阿者, A Đáp A Giả). 베트남 대월( 쩐 왕조)을 수차례 공격하여 수도를 수차례 점령한 참파 최후의 명군이다.

제봉아가 즉위하기 이전에는 대월(베트남, 쩐조)은 참파를 밀어내고 중부 지역까지 진출했다. 제봉아는 1360년에 즉위하였고, 대월에게 반격을 시작하였다. 반격은 성공적이였고, 대월은 수도를 점령당하는 등 위기를 맞았으며 1377년, 쩐 왕조의 황제 예종(10대)은 참파를 공격하였으나 되려 패배하고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이후에 1390년 전쟁 중에 전사하였다.

2. 행적

전왕 마하 수와가 사망하자, 제봉아는 1360년에 그 뒤를 이어서 참파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즉위한 동시에 대월(베트남)으로 사절을 파견하여 베트남이 빼앗아간 옛 영토의 반환을 요구했고, 1361년~1390년에 걸쳐서 3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당시 베트남의 쩐 왕조를 공격하여 베트남을 크게 몰아붙였다.

특히 1371년에는 당시 왕도였던 탕롱 성(지금의 하노이에 위치함)을 불태워 버리는 등 엄청난 패기를 발산한다.

1377년에는 당시 친정에 나서 참파를 공격하였던 쩐 왕조의 황제 예종(睿宗)을 전사시킨 뒤, 또 다시 탕롱을 털었고, 그 이듬 해에도 또 탕롱을 털었다.

그러나 1390년에 전함 수백 척을 이끌고 베트남을 공격했을 때, 사전에 포 비나수오르가 녹색 배에 탑승해 있다는 정보를 안 베트남군이 포 비나수오르의 배에 일제히 총격을 가했다. 포 비나수오르는 어이없게 사망하였으며, 참파군이 혼란에 빠진 와중에 포 비나수오르의 머리는 잘려 베트남 황제에게 바쳐졌다.

포 비나수오르가 전사한 뒤, 카리스마적인 인물을 잃어버린 참파의 기세는 급속도로 수그러들게 된다. 이후 참파는 두번 다시 중흥하지 못하였다.

3. 평가

포 비나수오르 왕의 재위기간 중에 베트남의 수도 탕롱은 세 번에 걸쳐 약탈당했고, 현재의 베트남 중부 지역까지 내려왔던 베트남의 영토는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에서 갓 벗어났을 무렵 정도까지 북쪽으로 밀려나 수축될 정도였다. 또한 포 비나수르 왕은 무슬림으로 개종하여 참파에 이슬람이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현대 이슬람 참족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포 비나수오르 왕은 그야말로 참파 왕국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명군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포 비나수오르의 활약은 베트남사에서는 쩐 왕조의 위신을 크게 실추시켰고, 외척인 호꾸이리(호계리)가 대두하여 쩐 왕조를 찬탈하여 멸망시키고 호 왕조를 세우고, 그리고 명나라의 침공으로 호 왕조를 멸하여 베트남이 다시금 중국의 통치하 제2의 북속기로 전락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참파의 부흥뿐만 아니라 베트남 내부까지 뒤흔들어버린 일대 사건이었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의 설화에는 포 비나수오르를 아주 사악하고 악독한 남만의 대마왕급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록 베트남 중심주의적인 묘사이나 그만큼 그의 활동이 베트남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반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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