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18-08-26 16:23:44

평론가 이유식 문학 여정

나의 작품 어디까지 왔나
세 장르 평론 넘나들기 그리고 수필 쓰기
이유식
나는 비평가로서 문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이른바 강단비평가가 아니다. 그리고 문학사를 연구하는 문학사가도 아니다. 궁색하지만 이름을 대보면 현장비평가요 실천비평가다. 당대에 살아있는 작가나 시인들 그리고 수필가들의 작품세계를 논한 작가론이나 시인론 그리고 수필가론을 쓰거나 작품론을 주로 썼다. 이 과정에서 현장소설론이나 수필론도 써봤다.또 바로 '지금'이란 생생한 작품현장에 참여한다는 각오나 사명감으로 월평이나 계간평에도 오랫동안 참여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하나는 마치 의사처럼 '오늘'의 문학현상을 진단하고 올바른 방향이나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는 생각에서 문학세미나에도 의뢰가 오면 기꺼이 참여했다. 다른 비평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참여하여 주제발표도 꽤 많이도 한 셈이다.그러고 보면 나는 결코 제2선 비평가일 수는 없다. 비유해서 말해 평생을 1선에서 맴돌았다고나 할까. 이런 면은 단적으로 나의 비평집 몇몇 제명에서도 쉽게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오늘과 내일의 우리문학' '전환기의 새로운 길 찾기' '한국문학의 전망과 새로운 세기' '변화하는 시대 우리문학 엿보기' '새로운 시대 수필이론 다섯 마당'등이 바로 그런 경우다.여기까지는 곧 나의 비평활동의 요약 총론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를 참고하여 이 글의 제목이 '나의 작품 어디까지 왔나'이니 만큼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는 각론식 접근을 해보기로 하겠다.시대별로 비평의 주종 대상을 무엇을 했는가를 알아본다.주로 60년대에는 시에, 70년대와 80년대는 소설에 그리고 90년대와 그 이후는 수필을 비평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물론 필요시는 다른 장르의 글도 썼다. 거시적으로 보아 세 장르 비평을 해온 셈이다.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도 있고 그 동기부여도 있었다. 60년대의 시비평은 나의 초회 추천작이 '현대적 시인형'이었던만큼 시론이나 시작품을 제법 많이 읽어두고 공부를 했던만큼 이것이 바로 계기였다. 시론과 시인론을 합해 '현대문학'지에 10여 편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시론이라면 '시의 앙가쥬망론'(63), '전후의 한국 풍자시론(63), '시와 과학'(64)이 있고, 내 스스로가 최초로 길게 심층분석 했다고 자위하고 있는 시인론에는 '아웃사이더적 인간상-윤동주론'(63)이 있고, 최초의 박두진 본격 시인론급인 '변모한 시의 지평-박두진론'(65)이 있다.이렇게 시에 집중하다 보니 진력이 나 차츰 소설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많은 단편소설 작품을 읽고 메모해 두었기에 현장소설론을 써본다는 객기로 70년도에 '현대문학'에 몇 편을 연재해 보았고, 그뒤 2~3편을 더 보충도 했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소설제명을 통한 소설사의 흐름 파악, 소설의 시간성 문제, 전전소설과 대비되는 전후소설의 문장 변천, 소설의 시작과 끝부분의 소설론적 유형화, 기법문제, 주인공의 이름 문제와 그 상징성, 종결부 처리와 주인공의 죽음의 문제, 작품속에 나타난 여러 행태의 구조적 아이러니 양상 등을 다루어 보았다.발표가 되자 동아일보 그리고 그 뒤는 조선일보에서 내용이나 주제 중심이 아닌 새로운 접근이라 인정되어 문화면에 소개도 되었다. 한편으로는 큰 용기도 얻었고 소설가들로부터는 뜻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칭찬과 격려도 제법 들었다. 이 글들은 다른 소설관련 글들과 함께 '한국소설의 위상'이란 이름으로 1982년도에 나의 첫 평론집으로 나왔다.그리고 이런 소설비평이 계기가 되어 70년대는 물론 80년대에도 소설월평이나 계간평에도 적극 참여하여 이른바 '소설전문평론가'란 소리도 들었다. 계간평이야 시간에 여유가 있었지만 특히 월평인 경우는 늘 시간에 쫓기고 있구나, 참 귀찮구나 싶은 생각도 많이도 해봤지만 그래도 20여 년간 여러 문학지에 70여 편을 써보았다. 참고로 60년대와 80년대 이후까지를 합해 보니 100여 편은 되는 것 같다.편지자들의 말에 의하면 첫째 시에 비해 소설은 읽어내기가 부담이 되어 월평가를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하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지라 은연중 사명감으로 총대를 메워보았다고나 할까. 사실 그랬다. 관행적으로 시인이 월평에 참여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소설가가 월평에 참여한 경우는 거의 없지 않는가. 오로지 평론가의 몫이었다. 97년도에 이를 모아 네번 째 평론집으로 '흘겨보기와 예쁘게 보기'를 내보냈다.그 다음, 나이에서 오는 약간의 피로감에다 지루함도 있고 해서 소설비평을 잠시 접어두고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수필비평에 적극 참여했다. '월간문학'에 '수필명칭 정착과정고'(1981년 8월호)란 글이 우선 시초의 계기였다, 수필문학이 그동안 문학저널리즘에서 '서자'처럼 취급을 받아오다 80년대에 비로소 대접을 받기 시작해 90년대엔 중흥기를 맞이 했다. 이런 중흥기에 여러 수필단체의 세미나에 꽤 많은 주제발표를 했다. 그런 글에다 일부 수필 관련 글을 모아 2009년도에 '새로운 시대 수필이론 다섯 마당'을 제9 평론집으로 세상에 선보였다.그럼 이제부터는 평론이야기를 접고 제목에 예시되어 있듯 나의 수필쓰기 활동을 말해 보기로 하겠다. 수필은 내 문학활동의 쌍생아요, 평론과 같이 달려온 쌍두마차인 셈이다. 그래서 12권의 수필집을 갖게도 되었다. 만약 내가 평론가가 아니고 수필 전문가라 할지라도 과산급에는 속하지 않으리라 본다. 이것은 곧 후배 수필가들이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사실 나는 평론가로서 수필을 써온만큼 스스로 많은 정신적 압박도 받고 있었고 받고 있다. 내 자신도 간혹 사수필 내지 개인수필도 쓰긴 했지만 자짓 그 내용이 그 내용이라는 동음반복성 내지 천편일률성이란 소리를 들을까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개발하고 개척해 본 장르가 테마수필 쪽이었다. 내 글의 삼분의 이가 그쪽이다.가령 개인경험과 시대상을 곁들여 써본 자전수필, 한국인의 습관이나 사고방식을 다루어본 이른바 민족생활수필, 유행가를 통해본 세태수필, 여성들 이야기, 자연과 인문학을 융합시켜본 지적 자연수필, 나와 관련이 있었던 문단인 이야기. 문단풍속사 이야기, 직계 선조나 선대 이야기에서 자료를 찾아내 써본 '가계수필' 등등이 그동안 내가 써온 테마수필의 소재요 주제였다. 이런 수필은 모두 신문이나 문학지의 연재물이었는데, 연재물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이었고 동시에 보람도 느끼곤 했다.이젠 이 글의 내 문학열차가 현재로선 종착역에 다다랐다. 글의 진행으로 보아 처음에는 시열차도 타보았고, 다음은 소설열차도 타보았으며, 그 다음은 수필열차도 타본 셈이다. 그러고 보면 내 문학여행의 첫 차가 바로 시열차인데 이 열차, 저 열차를 갈아 타다 보니 시에 대해 좀 무관심했다 싶다. 오래전부터 연재했던 현존 시인들의 시작품을 골라 평설했던 것이라도 있어서 작년에 제10 평론집에 해당하는 '우리 시대 대표시 50선 평설'집을 선보여 주었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긴 하다.후회를 말자. 아쉽다 싶은 일이 왜 없으랴. 오늘에 만족하자. 지방 부산대 출신인 내가 그나마 끝까지 서울에서 버티고 살면서 문필활동과 문단활동도 웬만큼 해왔으니 그것도 축복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현장비평가 내지 실천비평가'란 소리도 들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 평론과 수필 신인들도 웬만큼 문단에 내보며 그들이 이젠 중견이나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또다른 즐거움도 느껴보기도 한다.기차는 또 떠날 것이다. 이 종착역을 간이역이라 생각하며 또 내일을 향해 떠나 볼 것이다. 기약은 할 순 없지만 다행히 아직은 건강하니 계속 글은 써볼 생각이다. 힘에 겨운 평론활동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수필만은 끝까지 매달려 볼 것이다.우리 시인들, 우리 소설가들, 우리 수필가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좋은 글 쓰도록 서로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