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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21:04:56

페뉴어 호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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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발단3. 전개4. 절정5. 결말6. 사고 대처7. 여파

1. 개요


영어: Lake Peigneur Drilling Disaster

1980년 11월 20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작은 호수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석유 시추 중 호수 밑에서 채굴 작업 중인 지하 암염 광산을 뚫어 큰 인명피해가 날 뻔 했고 지리적으로도 큰 변화가 온 사건이다.

2. 발단

페뉴어 호수는 루이지애나 주의 해안가 근처에 있는 길이 2km 가량의 호수였다. 평균 수심 3미터의 담수호로 인기있는 레크리에이션 장소이자 관광 명소였다.

Wilson Brothers Corporation 은 석유시추 전문 업체로, Texaco 의 하청으로 휴스턴 및 뉴올리언스 등 멕시코만을 둘러싼 미 남부해안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형인 소금돔 (Salt Dome)의 옆구리에 고이는 석유를 탐사해 시추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미 100여년 전부터 미 남부의 소금돔 구조는 익히 알려져 있었기에 예전부터 암염광산이 활발히 개발되어 왔으며, 암염광산 특성상 채굴이 끝난 광산은 광도가 붕괴되지 않을 정도의 소금 기둥만 남겨두는게 보통이라 폭 수십미터 크기의 거대한 공동이 내부에 여러개 있었다.

1980년 11월 20일 오전 6시, Wilson Brothers 의 노련한 엔지니어들이 물에 떠 있는 석유 시추 플랫폼에서 주어진 좌표로 굴착을 하던 도중 14인치 (36cm) 직경의 시추공이 1,230 피트 (지하 370미터) 지점에서 갑자기 멈췄다. 평소라면 다른 시추공을 찾아 다시 팠을 테지만, 시추공에서는 평소와 다른 어마어마한 소음이 시추공 구멍을 통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상을 직감한 경험많은 엔지니어들은 즉시 대피 절차에 들어가 호수에 떠 있는 플랫폼에서 안전한 육지로 피난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대처는 이상적이었다. 고작 3미터 깊이의 호수에 떠 있던 십여미터 크기의 시추 플랫폼은 순식간에 생겨난 거대한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 귀신같이 사라지고, 주변의 10여척의 바지선도 얕은 호수물 속에 하나둘씩 침몰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한 척의 어선은 가까스로 육지에 닿아 대피하여 살아남았다.

시추공이 있던 장소에 발생한 수백미터짜리 거대한 소용돌이의 와류는 지구 바닥에 구멍이 난 듯 용트림을 하며 호수 중앙으로 돌출되어 있던 작은 섬 Jefferson Island 와 호수변의 시설까지 빨아들였다.

3. 전개

지하 460m 까지 최대 4개 층에서 채굴 작업 중이던 암염 광산의 광부들은 갑자기 들려온 커다란 파열음에 작업을 멈췄다.

Diamond Crystal Salt Company 의 암염 광산은 1919년부터 운영되었고 최대 460m 까지 4개층으로 나눠 채굴 중이었다. 각각의 광도는 가로세로 30미터 가량의 거대한 굴을 길게 파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최소 250m 에서 최대 450m 까지 거대한 직육면체 공동을 형성하고 있었다. 소금 특성상 습기에 매우 약하고 하필이면 호숫가 근처에서 채굴작업을 한 만큼, 광산 바로 위의 Jefferson Island 는 거듭된 채굴로 지반 침하를 겪었으나 해당 사건 이전까진 그 정도가 미미하여 안정적인 지반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사고 당시 광부들은 지하 3층과 4층에서 작업하고 있었으며, 4층에서 작업하던 광부는 소음을 듣고 이미 대피를 시작했지만 순식간에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결에 당황했다. 광산에서는 비교적 흔한 일인 지하수가 터진다 해도 이 정도로 빠르게 물이 차오르는 일은 없다. 덕분에 광부들은 광차에 타서 물을 거스르며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당시 엘리베이터는 광산을 통틀어 한 대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8인승에 매우 느릿한 속도로 움직였다. 55명의 광부는 참을성있게 8명씩 지상으로 인원을 탈출시켰고, 이 중 몇 명은 3층의 작업 현장으로 달려가 남은 인원까지 대피시켰다.

마침내 지상으로 전부 대피한 광부들은 지상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4. 절정

고작 3미터 깊이의 호수 중심에 생겨난 거대한 소용돌이는 십수미터 크기의 석유 시추 플랫폼은 물론 10여척의 바지선까지 깔아들인 것만으로 부족해 수십미터 크기의 Jefferson Island 까지 빨아들였다. 폭발적인 소용돌이는 수면이 낮아지면서 점차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마침내 바닥을 보였을 땐, 2km 짜리 호수의 바닥은 3미터에서 60미터까지 깊어져 있었다. 이 때 시추공을 통해 암염 광산으로 빨려들어간 물의 양은 1300만 톤으로 추산되며 국내 소양강댐 최대 방류량의 두 시간 분량에 달한다.

묵시록적인 광경의 마지막은 지하 광산에 침투한 물에 갖혀 압축되어 있던 공기가 광부들이 빠져나온 광도를 통해 120m 높이로 간헐천을 쏘아내는 광경이었다. 호수 바닥의 진흙이 섞인 간헐천은 주변을 황토로 뒤덮었다.

페뉴어 호수는 멕시코만과 인접해 있었고 평소 수로를 통해 담수를 배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호수 바닥이 60미터까지 꺼지자 역으로 수로를 통해 멕시코만의 바닷물이 역류했고, 그 결과 루이지애나 역사상 가장 높고 거대한 폭포가 일시적으로 형성되었다.

깊어진 호수가 다시 채워지기까지 며칠이 걸렸고, 물이 안정되자 침몰한 바지선 11척 중 9 척이 다시 물에 떴으나 석유 시추 플랫폼과 그 근처에 있던 바지선 2척은 떠오르지 않았다.

5. 결말

지형이 격변하는 대사건이 벌어졌지만 기적적으로 인명피해는 한 명도 없었고 호수가의 동물 몇 마리만 죽었다. 55명의 광부 전부 구조되었으며 이 중 6명은 영웅적인 행위로 회사로부터 부상을 받았다.

얕은 담수호였던 페뉴어 호수는 수십미터 깊이의 기수호가 되면서 오늘날 생태계적으로 크게 풍성한 호수가 되었다.

6. 사고 대처

암염 광산 광부들이 침착하게 대응하고 대피 설비도 충분했던 건 지난 100 여년 간 미국 광산이 피로 얼룩진 초대형 광산 사고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869 애번데일 광산 참사 당시에는 단 하나의 출입구만 두다가 통로 중간에 화재가 발생하여 내부의 광부 110여명이 유독가스로 사망했으며, 1896년 트윈 샤프트 참사에서는 광도를 중구난방으로 뚫고 버팀목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다가 지반이 통째로 붕괴하여 58명의 시체도 건지지 못했다. 각각의 대형참사는 최초의 국제적 구호 노력을 성사시키거나 수많은 안전 규정을 기본으로 적용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본가들이 깡패를 고용하여 피해자 및 유족을 구타하여 강제로 해산시키거나 고의로 새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으나 오랜 세월 속에 안전 규칙의 일상화에 성공했다. 따라서 사건 당시 암염 광산 광부들도 사전에 안전 교육을 충분히 받았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7. 여파

1981년 사고 조사 위원회는 시추 플랫폼의 시추공이 호수 밑 암염 광산에 구멍을 뚫은게 사건의 이유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에 1983년 Texaco 와 Wilson Brothers 는 Diamond Crystal 에 피해보상을 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양 회사는 지상에 있다가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간 식물원 등의 시설에 대해서도 배상액을 공동으로 지불했다. 다만 어째서 거기에 구멍을 파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Diamond Crystal 은 1986년 공식적으로 페뉴어 암염 광산을 닫았다.

이후 AGL Resources 에서 1994년부터 페뉴어 호수 밑의 소금돔을 천연가스 가압 저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2009년 지역 주민들은 페뉴어 호수에서 거품이 솟아오른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